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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지 Mar 20. 2021

여백에 선 사람,
이유 없이 아름다운 풍경

<정말 먼 곳> 이 우리에게 남긴 것들



<정말 먼 곳> 

정말 먼 곳 A Distant Place, 2020

개봉: 2021.3.18

감독: 박근영 

출연: 강길우, 홍경, 이상희. 기주봉, 기도영, 최금순, 김시하 등

제작: 영화사 행방, 찰나, 봄내필름

배급: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전주국제영화제 공동제공: 그린나래미디어


*줄거리

진우는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는 딸 설과 함께 서울을 떠나 강원도 화천의 한 농장에 5년째 자리 잡고 있다. 목장에는 목장 주인 가족인 중만, 문경, 명순이 있다. 그들은 가족은 아니지만 적어도 식구인 채로 함께 생활한다. 고요한 목장 생활은 진우가 떠나온 곳으로부터 방문한 두 사람으로 인해 요동친다. 진우의 오랜 연인인 현민은 화천으로 내려와 성당에서 시 강의를 시작하고, 진우의 동생 은영은 5년 만에 찾아와 자신의 딸을 데려가고자 한다. 



"시 같다."는 것은 무엇일까? 2021년이 되어서야 다짐하듯 시를 읽기 시작한 나에게는 대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답해보자면 나에게 시는 '여백'이다. 어느 날 시집을 읽다가 시가 그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열이 바뀌고 행이 바뀌면 하얀 종이도 그에 따라 늘어나고 줄어들었다. 예상과 다르게 열이 바뀌고, 붙어있어야 할 단어들이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면, 나는 글이 아니라 여백을 본다. 그때마다 '글이 종이에 놓여 있는 모양새가 시구나.'생각했다. 검은 글자보다 비어있는 하얀 종이가 더 무겁고 커 보인다. 쓰인 말보다 쓰지 못한 마음을 떠올린다. 적어도 나에게 시는 그런 거다. 가끔씩 구석에 가만히 서있는 여백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 그런 의미에서 <정말 먼 곳>도 나에게 시처럼 다가왔다. 


<정말 먼 곳>의 인물들은 자주 중심이 아니라 외곽에 서 있다. 조금 가까이 다가가는 듯 보이다가도 어김없이 실루엣만 겨우 보일 정도로 어둡거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있다. 그와 대비하여 강원도 화천의 풍광은 어찌할 도리없이 아름답다. 그만큼 아름다운 장면이라면 그곳에 눈과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들여다보게 되는 것은 어쩐지 구석에 서있는 사람이다. 은행나무가 바람에 휘날리고, 윤슬이 반짝일수록 내 마음은 계속해서 '그곳'이 아닌 '그들'에게 쏠린다. 그들의 작은 움직임에 더 집중하게 된다. 


그들에게 집중하다 보면 침묵이나 뒷모습, 어설픈 몸짓과 엉뚱한 대답에서 많은 것이 들린다. 명순이 설이에게 은영을 두고 "저 사람이 네 엄마냐"라고 물었을 때, 설이의 대답은 왜 "아니."가 아니라 "몰라."였는지. 현민이 더 먼 곳을 떠올리며 미래를 상상할 때, 옆에 누운 진우는 왜 그런 표정으로 그런 침묵을 유지했는지. 머금은 장면들에는 낯설게 거리를 둔 시어들처럼 쉬이 넘어갈 수 없는 감정들이 고요하게 깔려있다. 



사라지고, 나타나고, 죽고, 태어나고. 

목장의 삶이란 생사와 멀지 않다. <정말 먼 곳>은 나이 든 양 한 마리의 죽음과 함께 시작한다. 그 죽음은 지나치게 무겁거나 가볍지 않게 삶의 일부로 다뤄진다. 죽고 사라지면서 생기는 부재는 계속해서 어떤 방식으로든 채워진다. 양이 죽고 얼마 후에 현민이 도착하고, 만순이 죽은 후에 그가 생전에 만들어 놓은 식혜를 식탁에서 나눠 마신다. 현민이 사라지고 죽은 만순의 환영을 따라간 설이는 양 한 마리와 함께 나타난다. 화천을 떠나고자 모든 짐을 챙겨 차에 타려는 순간, 어미 양은 오랫동안 품은 새끼를 세상 밖으로 내보낸다. 세상 밖으로 나와 제 힘으로 서지도 못하는 새끼 양을 바라보는 진우의 얼굴이 스크린 가득 클로즈업된다. 눈은 그림자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알 수 있다. 부재는 그런 식으로 채워진다. 서울을 등지고 화천으로 떠나온 진우의 곁에 운명적으로 설이가 함께 했던 것처럼,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졌을 때 그곳과 그들은 고개를 든다. 


진우를 포함해 줄곧 여백에 서있는 인물들을 사람들은 읽으려고 하지 않는다. 아무도 읽지 않으니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 <정말 먼 곳>은 그 여백에 주목한다. 읽지 않으려는 순간들을 천천히 내내 읽어준다. 서로 시를 쓰고 읽어주자고 약속한 사람들이 떠난 빈자리 앞에서 현민이 시를 낭송하듯, 영화는 관객에게 내내 시를 보여준다. 쓰이지 않아서 더 아름다운 그들이 그 안에 있다. 영화가 끝나고 나는 더 이상 정말 먼 곳을 마음에 품지 않는다. 오직 이유 없는 풍경 속에서 이유가 될 사람을 품을 뿐이다. 우리가 머물고 싶은 곳은 늘 어떤 곳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낸다. 누군가 사라져도 다시금 나타날 것이라고 <정말 먼 곳>은 우리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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