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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KKI Mar 19. 2021

'원더풀 미나리'
미래로 나아가야 할 사랑의 언어

<미나리>가 우리에게 남긴 것들


미나리  Minari (2020)

감독: 정이삭

출연:스티븐 연, 한예리, 앨런 킴, 노엘 조, 윤여정, 윌 패튼 등 



  한국에서 미국으로, 캘리포니아에서 다시 아칸소로. <미나리>는 한 가족의 이동과 함께 시작한다. 도착한 그들의 보금자리는 여전히 바퀴를 단 채로 정착하지 못한다. 언제라도 떠날 수 있다는 듯이, 떠나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어떤 위력에 휩쓸려 의지와 상관없이 쓸려갈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그곳에서 제이콥이 하고자 하는 것은 정원이자 농장이다. 이 땅에 뿌리내리고 무엇인가를 길러내는 것. 그 결실을 먹이 삼아 그곳에서 살아내는 것이다. 원대한 포부와 간절한 바람과는 상관없이 검은 연기는 언제라도 쓸모 없어지면 폐기될 수밖에 없다는 불안을 재차 상기시키고, 불안은 불신을 먹이 삼아 점점 더 커진다. 앞으로 나아가지도, 그렇다고 다시 물러설 수도 없는 그들 앞에 할머니가 도착한다. 한 쪽 손에는 그리움을, 다른 손에는 낯섦을 든 채로. 한국 냄새를 잔뜩 이고 온 할머니는  '재밌다.'라는 한 마디로 모든 불안을 상쇄시켜버리는 힘을 가졌다. 


  제이콥과 모니카의 분투와 데이빗과 순자의 만남은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민자로서 낯선 땅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과 낯선 사람과 가까워지는 과정은 한 지점에서 만나 가족 이야기가 된다. 연기처럼 종잡을 수 없는 불안들로 자꾸만 어긋날 때, 눈앞에 나타난 명백한 위기는 되레 가족이 다시 하나가 되는 계기가 된다. 화마 속에서 진정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몸소 깨닫고, 한 쪽에서는 자신을 '스트롱 보이'로 명명해 준 사람을 붙잡기 위해 최초의 달리기를 한다. 그 밤 그들은 바닥에 머리를 맞대고 누워 잠을 잔다. 결국 한 장소에 정착하는 것은 한 사람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일이다. 한국도 미국도, 도시도 시골도 아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매개로 정착하는 것. 서로의 보금자리가 되고 또 미나리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가족이 그토록 바라던 보여줘야 할 어떤 것과 지키고 싶은 어떤 것 사이에 있는 진심일 것이다. 


  모든 게 끝나는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면 그들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제대로 된 위치를 찾기 위해 믿지 않았던 것을 믿고, 가보지 않은 곳을 가며 자기 자신의 존재를 깨닫는다. 미나리.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려 연약해 보이지만, 단단하게 내린 뿌리를 알고 있다면 아름답다고 할 것이 분명한 존재. 정이삭 감독의 골든글로브 수상소감처럼 사랑의 언어가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반드시 미래로 건너갈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 영화는 가득하다. 



  아름다운 풍경만큼이나 사람이 아름다웠다. 아이들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시다리는 제이콥과 가족의 중심을 지키기 위해 양옆을, 아래와 위를 살피며 꼿꼿이 선 모니카. 여느 집의 첫째답게 하지만 아이답지 않게, 소리 없이 반듯하게 자라나는 앤. 이런저런 걱정과 사고를 일으키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족은 한곳에 모이게 하는 데이빗. 그리고 떡하니 나타나 마법처럼 무언가를 자라게 하고 낫게 하는 미나리 요정 순자. 주일마다 어깨에 십자기를 짊어진 채 땀을 흘리는, 가장 처음 이웃이 되는 폴까지. 누구 하나 빼놓을 수가 없다. 특히 모니카 역할의 한예리는 너무나 섬세한 표정과 몸짓으로 또 눈빛으로 영화 내내 빛난다. 꼿꼿하게 선 그의 모습에서 영화에서 굳이 말하지 않은 그의 희생과 결의를 느낄 수 있었다. 윤여정 배우는 그가 탄 수 십 개의 상들이 무색하지 않을 연기를 보여준다. 앨런은 쉼 없이 귀엽다. 덕분에 영화관은 동시에 웃고 동시에 울었다. 함께 동고동락하며 하나가 되어 촬영했다는 비하인드가 영화에 고스란히 담아있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다 함께 웃고 또 우는 경험을 했다. 동시에 감정이 터지는 순간, 순간들은 극장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확인은 단 하나의 불빛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그 컴컴한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는 이 영화는 <페어웰>의 '하!'하는 기합소리처럼 '작은 주문을 남긴다. "원더풀 미나리" 자주 바람에 흔들리더라도 함께라면 서로를 붙들고 어디든 뿌리내릴 수 있다는 믿음을 근거로 둔 주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과거로부터 왔고 반드시 미래로 갈 사랑의 언어. 발음까지 바람에 휘날리듯 부드러운 그 이름 미나리. <미나리>는 언제고 바람을 타고 올 그립고 낯선 향기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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