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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지 Jul 08. 2021

코로나가 낳고
넷플릭스가 키운 영화

<맬컴과 마리>가 남긴 것

맬컴과 마리 Malcolm & Marie (2021) 

샘 레빈슨 감독


온통 직구만 가득한 이 싸움에서 얻을게 뭐 있나 싶지만 엔딩 숏에서 함께 선 두 사람의 모습은 그림 같다. 그것이 내부가 아닌 외부라는 사실이 마음에 걸리지만 말이다. 둘의 다툼을 연인의 사랑싸움 정도로 보기에는 그 정도가 가볍지 않다. 말콤의 영화와 마리의 삶이 이룬 대비, 불안정한 연인을 구해냈다는 영웅심에 빠져있는 남자와 자신의 삶을 질료로 만들어진 영화를 보며 자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여자의 사랑을 어떻게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유리로 둘러싸인 저택을 비추는 카메라는 이 어긋난 관계를 투명하게 담아낸다. 


 마리와 맬컴이 테라스 나란히 앉아 듣는 음악 ‘ger rid of him’(마리의 선곡)은 마리의 속마음을 대변한다. 벗어던져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관계. 나를 망가뜨릴 것이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사랑한다고 말하는 마음. 수많은 broken girl 중에 한 명일 뿐이라고 말하는 동시에, 그런 너를 사랑하는 사람도 있다고, 그게 바로 나라고 말하는 이 사람을 놓을 수 없는 나 자신. 나도 떠오르는 가삿말이 있다. ‘아~어쩌란 말이냐 흩어진 이 마음을~’ 

LA타임스의 백인 여성 평론가의 비평을 읊으며 흥분하는 맬컴을 바라보는 마리의 시선이 어쩐지 낯설지 않다. 잠시만 눈에 안 보여도 자신의 이름을 애절하게 외치며 찾아 헤매는, 나 없이는 마카로니도 못 챙겨 먹을 이 인간이 마리 눈에는 하찮으면서도 가련해 보인다. 그러면 결말을 어쩌면 하나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면 된다고 말하는 것. 그 말을 챙겨 듣고 다시 시작하는 것.


 나는 고맙다는 말만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크레딧에도 올려줘야 하고 공적을 높이 평가해 물질적인 무엇도 주어야 한다고, 말리부 저택 마리 주라고 하고 싶다. 동시에 사랑이란 게 계약서에 적어놓은 숫자들처럼 명명백백하게 정리되지 않는 무엇이라고도 생각한다. 맬컴이 영웅심과 나르시시즘에 도취된 사람인 것과 상관없이 마리가 중독에 힘들어하고 있을 때 그의 곁을 지켰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사랑이 그 사람을 낫게 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제 3자의 눈에는 제법 뚜렷해 보이지만 그 안에 있는 당사자에게는 그렇지 않은 법이다. <연애의 참견> 같은 프로그램만 봐도 알 수 있다. ‘도대체 왜 만나!!!’싶은 연인도 헤어짐은 생판 남에게 사연을 써 보낼 만큼 절체절명의 선택이다. 그러니 건강을 바란다면 사랑 대신 영양제를 사 먹는 게 옳은 선택일 것이다. 

 코로나 격리 기간 동안 단 2주 만에 촬영을 끝냈다는 이 영화는 공간부터 촬영까지 어느 하나 허투루 한 부분이 없다. 특히 공간은 맬컴과 마리의 관계의 실재를 보는 것 같았다. 유리창을 통해 모든 것을 투명하게 보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안에는 쉼 없이 열고 닫기를 반복하는 수많은 문들이 있다. 다 안다고 생각이 들 때면 어김없이 열어야만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문이 떡하니 서있다. 계속해서 프레임과 프레임을 드나드는 둘의 연기와 그를 쫓는 카메라까지. 지루할 틈이 없다. 특히 젠다야는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스태프들과 함께 프로듀서까지 겸하며 물 만난 듯 연기를 한다. 나한테 젠다야는 ‘스파이더맨에 출연하는 그 배우’에 가까웠는데 젠다야의 필모그래피를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럼 헤어져.’라는 뻔한 말없이 미친 듯이 싸우는 두 사람은 서로에게 서로 말고는 없는 듯하다. 코로나 기간에 시작해서 끝을 낸 이 영화가 허가 없이 촬영할 수 있는 저택을 찾아 허허벌판으로 달려간 것처럼, <맬컴과 마리>는 어떤 한계는 새로운 무대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었다. 극장가에 자꾸만 재개봉에 재개봉을 반복하는 것이 기쁘기도 하면서도 아쉬운 찰나에 새로움과 동시에 좋은 영화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코로나가 낳고 넷플릭스가 키운 이 영화. 일말의 염려하는 마음 없이 추천할 수 있다. 다들 넷플릭스로 보러 가세요. 


instagram: @hangangnam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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