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밀밀>이 남긴 것
진가신 감독
결말부터 말하고 싶다. 이요와 소군은 뉴욕에서 다시 만난다. 그 장면을 인연이란 말을 대신해 설명할 자신이 없다. 긴 시간을 지나 다시 한번 만난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웃는 모습 뒤에는 10년 전 우연히 기차에서 뒤통수를 기대고 앉아 홍콩에 도착했던 둘의 모습이 등장한다. 이 영화의 첫 장면이기도 했던 흑백 장면을 보며 멜로 영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첫 시작부터 짐작했을지도 모른다. '저기 머리를 기대고 앉았던 그 사람과 이어지겠지.'(비록 이요의 얼굴은 보이지도 않았지만!) 그리고 그 예상은 꼭 들어맞는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같은 날 홍콩에 도착한 두 사람이 다시 한번 뉴욕 한복판에서 만나게 되기까지 10년이란 시간이 버티고 서있다. 게다가 두 사람은 그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공식(?) 연인이었던 적이 없다. '동지'라는 관계가 그들의 최선이었다. 연인이 되려는 순간을 눈앞에 두고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영제는 "Comrades: Almost a love story"이다. 홍콩에서 이요와 소군은 서로를 사랑했지만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리고 후에 뉴욕에서 다시 마주친다. 그리고 영화는 끝난다. 홍콩에서 유예되었던 두 사람의 사랑이 뉴욕에서는 이루어질까?
앞서 말했듯이 홍콩에서 두 사람의 사랑을 이루어지지 않았다. 소군에게는 고향에 있는 오래된 연인이 있고, 이요는 마사지샵에서 만난 표형이 있다. 두 사람은 끝내 서로의 연인이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두 사람에게 홍콩은 정확한 목적을 품고 도착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 목적이란 당연히 돈 이야기다. 돈을 모아 오랜 연인과 결혼을 하는 것, 돈을 모아 멋진 집을 사는 것. 기회의 땅 홍콩은 그런 곳이었다. 이곳저곳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북적하는 곳, 이 언어 저 언어를 구사하며 출신을 숨기는 것이 익숙한 곳. 세상의 모든 돈이 모이고 흩어지는 곳. <첨밀밀>의 유명한 장면이 있다. 이요의 통장 잔고를 확인하는 장면이다. 두 번이나 등장하는 atm의 시선에 놓인 두 사람은 귀엽다. 하지만 동시에 갇힌 것인 돈이 아니라 그 두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두 사람과 그 두 사람이 서 있는 홍콩이라는 공간 자체가 atm이 만든 시선 안에 갇혀 있는 것이다. 그렇다. 이요와 소군은 서로의 이유가 될 수 없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연인이 되지 못했다.
홍콩에서의 사랑이 팍팍한 것은 둘 뿐만이 아니다. 소군의 고모는 평생 단 한 번 만난 사람을 영원히 사랑하다 죽음을 맞이한다. 고모의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는 여자와 어딘가 이상한 영어 선생인 남자는 에이즈라는 당시 명백한 죽음의 은유였던 병을 안고 홍콩을 떠난다. 소정과 표형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모두 홍콩이란 공간 안에 홀로 떨어진 존재다. 본래 도시는 소외의 공간이다. 홍콩이 아닌 곳에서 홍콩에 도착한 이들이 가장 먼저 견뎌야 하는 것은 혼자가 된 시간이다. 새로운 것들에 놀라고 배우는 시간은 빨리 흩어지고 결국 혼자인 시간만이 남는다. 그것을 견디기 위해 편지를 쓰고, 술을 마시고, 미친 듯이 일을 하지만 쉽지 않다. 결국 고단한 시기에는 어쩔 도리가 없는 사람을 만나게 되기 마련이다. 나의 상태나 상황과는 상관없이 그저 없으면 안 되는 사람과 감정을 나눈다. 그렇기 때문에 이요가 계산적으로 소군을 이용했다는 것도, 소군이 둔하고 답답한 사람이라는 것도 그 사람을 밀쳐낼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없다. 거대한 도시의 홀로 선 작은 공간에서는 그런 사랑이 태어난다. 그리고 튼튼하게 자라지 못하고 떠난다.
이요와 소군은 기본적으로 아주 다른 사람이다. 같은 날 도착했음에도 광둥어를 완전히 익혀 맥도날드며 여기저기서 일하며 사업과 주식 시장으로 뛰어드는 이요와 달리 소군은 고모가 소개해준 정육점에서 일하다가 우연히 만난 요리사와 가까워져 한 식당 취직해 우직하게 일을 한다. 이요는 홍콩인처럼 보이려고 노력하고 소군은 그런 것에는 도통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영화 내내 소군은 변하지 않는다. 고향에 있는 소정과 결혼을 하겠다는 소기의 목적에 비교적 쉽게 도달한다. 반면에 이요는 정신없는 N잡러로 일하다가 투자에 실패한 개미가 되었다가 마사지사가 되고 여러 사업체를 굴리는 사업가였다가 가이드가 된다. 크고 좋은 집에 살겠다는 이요의 계획은 실리에 밝고 부지런한 이요임에도 달성하기 힘들어 보인다.
소군은 어디서든 뿌리를 내린다. 그곳이 상하이든 홍콩이든 뉴욕이든 상관없이 그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비슷한 옷을 입고 같은 직업을 갖고 비슷한 하루를 보낸다. 불안한 경계에 서있는 홍콩의 정체성과 소군은 거리를 둔다. 그렇기 때문에 이요와 소군이 클락션 소리와 함께 서로의 이유가 되기로 결정한 이후 이요가 돌아오지 않음에도 소군은 소정을 떠난다. 자신이 결정한 일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소정과 결혼한 것과 같은 이유로 소정을 떠나는 것에도 흔들림이 없다. 이요는 소군과 달리 표형에게 사실을 고하고 떠나지 못한다. 표형은 이미 소군과 이요의 관계를 알고 있고 되려 자신을 잊을 것을 당부하는데도 말이다. 이요는 끝내 미키마우스를 따라 대만을 거쳐 뉴욕으로 향한다. 하지만 표형의 곁에 있는 이요는 허기에 시달린다. 소군에게 고향에 계신 엄마에게 집을 사드렸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이요는 끊임없이 먹고 있고, 정착할 집에 대해 말하고 있는 표형 앞에서도 이요는 얼굴로는 웃으면서 배 안의 허기는 달래지 못하고 있다.
처음 꺼냈던 질문에 대답할 차례가 왔다. 뉴욕에서 재회한 이요와 소군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재회의 순간과 그 뒤로 펼쳐지는 첫 만남은 이 두 사람의 사랑이 말 그대로 운명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왜인지 그 둘의 사랑은 오랫동안 'almost'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다. 이 부분에서 영화 <라라랜드>가 떠올랐다. <라라랜드>는 꿈과 사랑, 현실과 사랑 사이에서 전자를 선택하며 이루어질 없었던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두고 이것이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엇갈린다. <첨밀밀>의 이요와 소군도 본래의 목적과 사랑이라는 두 가지 길에서 방황하다 어긋난 두 사람의 이야기다. 차이가 있다면 이요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도 내 안의 헛헛함을 채우지 못한다. 사랑이 아닌 현실을 선택해서 얻은 결과는 <라라랜드>의 그것보다 훨씬 허무하다. 일명 'If 시퀀스'로 이루지 못한 사랑의 장면들을 상상했던 <라라랜드>와 달리 <첨밀밀>은 다시 한번 그들의 처음으로 돌아가 두 사람의 인연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 장면은 운명적인 사랑의 위대함으로 다가오기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이 선 도시의 현실이 눈앞에 거대하게 서 있는 것 같다.
이요는 손에 중국행 티켓을 든 채 소군과 재회한다.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할 때마다 그 자리를 함께 했던 등려군의 죽음 앞에서의 만남이다. 이것이 등려군이 준 마지막 기회일지 아니면 그와 함께 두 사람의 사랑도 죽음을 맞이 할지 알 수 없다. <첨밀밀>은 소군의 얼굴로 시작해서 이요의 뒷모습으로 끝이 난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홍콩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어렵게 적응해 겨우 홍콩인이 되었을 때 기울어진 경제 때문에 다시 한번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그리고 떠나온 곳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 끊임없이 부유하며 경계선 위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 홍콩의 뒷모습이 영화 내내 그려져 있다. 동시에 소유할 수 있다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자본주의의 믿음과 소유할 수 없는 사랑이 만들어낸 슬픈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등려군의 노래 제목을 그대로 가져온 이 영화의 달콤함은 사랑이 되지 못한 채 흑백 화면으로 끝이 난다. 도시에서의 사랑은 진정 불가능한 것일까? 내가 사는 이 도시는 홍콩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 그들이 살았던 그 시대와 오늘은 얼마나 멀어졌을까? 나의 도시도 홍콩과 같이 사랑의 요람이자 무덤이 되는 것은 아닐까.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사랑에 대한 믿음, 자신의 사랑이 상대의 사랑을 불러낼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 사랑의 신뢰성에 대한 믿음"이라고 말했다. 도시에서의 사랑을 지키는 것은 어김없이 다시 한번 사랑을 믿는 것일지도 모른다. 꿈꾸는 바보들을 위한 노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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