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예지 Aug 10. 2021

생동해서 슬프고 또 아름다운 우리, 둘의 사랑

<우리, 둘>이 남긴 것

우리, 둘 Deux (2019)

필리포 메네게티 감독


   <우리, 둘>의 스틸컷, 특히 두 사람이 함께 책을 읽고 침대에 누운 스틸컷을 보고 나는 조금은 평화롭고 느긋한 영화를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20년이라는 시간이 만들어낸 단단함과 견고함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나의 예상은 첫 장면부터 무너진다. 누군가를 간절히 찾아 헤매는 목소리가 다른 소음으로 인해 전달되지 못한 채 그대로 소멸되어버리는 <우리, 둘> 첫 장면은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변주된다. 발화하지 못한 말과, 다른 것에 묻혀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야 마는 장면이 거듭되면서 내가 발견하는 것은 20년의 세월이 만든 견고함보다는 같은 시간 동안 견뎌야 했던 불안과 간절함이다. 노년의 사랑에 대한 나의 비루한 고정관념은 그들이 생동하기 시작했을 때 흔쾌히 깨지고야 만다. 그들은 여느 연인처럼 서로를 뜨겁게 사랑하고, 여전히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며, 열렬하게 원한다.


   마도와 니나는 짧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이웃하여 살고 있는 오래된 연인이다. 서로에게 키스를 하고 함께 춤을 추는 그들의 모습은 사랑스럽다. 하지만 어딘가 불안하다. 둘의 키스는 거울에 반사된 모습으로만 볼 수 있고, 그들의 춤은 둘만의 공간에서만 허용된다. 마도와 니나가 나누고 있는 사랑이 여지없이 평범한 데에 비해, 그 둘의 사랑과 외부의 시선이 나누고 있는 관계는 위태롭다. 이 위태로운 관계는 마도가 자식들에게 자신의 비밀을 고백하려는 과정에서 더욱 휘청거린다. 아버지에게 헌신적인 어머니에 대한 딸의 존경과 아버지를 배반했을 것이라고 여기는 아들의 지탄은 마도가 세상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이유다. 마도의 입은 또다시 가로막히고, 니나와 함께 로마에서 여생을 보내자는 약속은 유예된다. 온전한 자신을 아는 유일한 사람인 니나와 크게 싸운 마도는 결국 세상을 향한 모든 반응을 거두어버린다.

<우리, 둘> 스틸컷

   마도가 뇌졸중으로 인해 신체의 일부가 마비된 순간부터 영화의 시선은 니나를 쫓는다.   발짝 앞에 서서 참지 못하고 뱉어내고야 말았던 니나는 '말할  없음' 고통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된다. 서로를 향해 나있는 문이 강제로 닫히고 어안렌즈를 통해 굴곡된 형태만 간신히   있게  니나에게 마도는 수많은 장애물을 통과해야만 만날  있는 연인이 된다. 너무나 쉽게 건너갈  있었던  사람의 사랑의 공간에쫓겨난 니나는 세월이 무색하게 아무것도 적재되지 못한   자신의 집에서 불안을 견딘다. 그렇기에  너머의 마도에게 건너가려는 니나의 시도는 마도와의 만남뿐만 아니라 자신의 공간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이다. 니나의 칫솔, 니나의 음식, 니나의 침대, 니나의 연인은 모두 닫힌  너머에 있다. 자신의 사랑을 증언할  있는 유일한 존재의 무응답 앞에서 니나는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방법을 이용해서라도 사랑의 공간에 머물기 위해 매진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서스펜스는 그것이 마도를 비롯한 커밍아웃을 하지 못한 성소수자의 일상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더욱 공포스럽다. 불 꺼진 집과 유령처럼 걸어 다니는 간병인, 불길한 꿈과 날 선 감각들은 영원히 견디기에는 버거운 경험이다. 그렇다면 니나는 왜 마도의 가족에게 '사실은 내가 마도의 연인이다.'라고 설명할 수 없었을까? 길거리에서 애꿎은 부동산 중개인에게 "늙은 레즈비언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당당히 묻는 니나이지만 마도의 응답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마도에 관한 모든 권리를 가진 가족에게는 선뜻 그들의 사랑을 고백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족이라는 관계, 특히 자신의 존재를 사랑의 결실이라고 쉬이 믿고 마는 자식이라는 존재에게 진짜 연인은 따로 있었음을 밝히는 것은 쉽지 않다. 여기저기를 떠돌며 정착하지 않는 삶을 살아온 니나는 가족이라는 투명하지만 단단한 실에 묶인 마도의 삶을 마도의 입장이 된 이후에야 이해하게 된다.

<우리, 둘> 스틸컷

   니나가 세상과 연결된 실을 깨닫는 동안 마도는 이전에 없던 본능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추억이 담긴 음악에 반응하고, 로마로 떠나기 위한 짐을 챙기고, 힘겹게 몸을 움직여 사랑을 찾아 문을 두드린다. 이전의 마도에게 상상할 수 없었던 적극적이고 본능적인 움직임은 세상과의 관계가 단절된 후에야 가능해진 일이라는 점에서 다소 서글프게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더 이상 시간도 이동도 여의치 않은 노년의 사랑이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는 일로 시간과 공간의 격차를 뛰어넘고자 하는 그 생동은 아름답다. 갇힌 공간에서 벗어나 햇살을 맞으며 둘만의 공간을 향하는 그들의 느리고 애틋한 걸음걸음은 이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다.


   마도와 니나가 종국에 도착한 곳은 그들의 오랜 사랑이 그득하게 쌓인 마도의 집도, 그들의 사랑이 처음 싹튼 로마도 아니다. 아무것도 쌓아 올리지 못한 채 겨우 있는 희망마저 빼앗긴, 폐허가 된 니나의 집이다. 문 밖에서는 여전히 그들을 방해하는 소음이 침범하고, 마도는 아직 목소리를 되찾지 못했다. 늘 방법을 찾아내고야 마는 니나는 조금 무너지고 있다. 다시는 사랑의 노래가 흐르지 못할 것 같은 잿빛의 공간에서 마도와 니나는 춤을 춘다. 소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춤을 리드하는 마도의 눈빛은 기어이 사랑을 연주한다. 이때 흐르는 ost와 그들의 현실의 부조화는 더할 나위 없이 애통하다. 그렇지만 이전의 모든 날카로운 사운드와 온갖 단절이 만들어낸 서스펜스를 모두 잊어버릴 정도로 아름답다.


   결국 오직 두 사람만 남게 된 마지막 장면 역시 스틸컷만 보았다면 평화와 충만함만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늘 거친 소음과 폐허가 된 공간까지 포함하고 있다. 오직 그들의 사랑만, 그 진실함만이 유효하다면 <우리, 둘>은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둘>은 말하지 않음에 분노했던 니나가 말할 수 없음을 이해하게 되는 영화이자,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오직 사랑만을 위해 직진하는 마도의 변화를 담은 영화다. 그 달짝지근한 사랑의 힘 뒤에는 비밀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랑이 만들어낸 공포와 사랑의 장소로 가닿을 수 없는 노년의 사랑의 고단함 또한 함께 숨 쉬고 있다. 어쩌면 마도와 니나가 원했던 것은 단순히 문을 여는 것이다. 서로를 향해 나있는 문을 그것을 세운 이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활짝 열고, 그 문을 통해 사랑이 새어나가도 아무렇지 않을 만큼 자유롭게 사랑하는 것. 굴절된 렌즈가 아니라 또렷한 두 눈을 통해 그들의 사랑이 세상과 조우하는 것. 오직 그것뿐이다. 나는 트레비 분수 앞에서 함께 춤을 추는 마도와 니나를 상상한다. 어깨너머로 던진 동전은 세 개 모두 분수 안으로 골인할 것이 분명하다. 내내 흐르는 영원한 사랑의 노래와 함께.

<우리, 둘> 스틸컷




매거진의 이전글 이토록 매끈한 탈출 영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