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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KKI Oct 16. 2021

나의 이름을 이해하기 위해서

<레이디 버드>가 남긴 것

미워도 사랑해미워서 사랑해

미워하는 동시에 사랑할 수 있을까? <레이디 버드>에 의하면 가능하다. 가능할 뿐만 아니라 사랑은 늘 미움을 동반한다. 어떤 것을 알아간다는 것은 사랑의 시작이자 과정이다. 안다는 것은 좋아할 만한 점만큼이나 미워할만한 점을 많이 안다는 뜻이기도 하다. 크리스틴에게 세크라멘토는 그런 존재다. 너무 뻔해서, 잘 알아서 미워하기도 쉬운 존재. 레이디 버드는 크리스틴이라는 이름과 함께 그 모든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레이디 버드가 찾는 사랑은 아직 알 수 없는, 아주 먼 곳에 있는 것만 같다. 사랑을 찾기 위해서는 미지의 곳으로 떠나야 한다고 크리스틴은 믿는다. 그가 가고 싶은 곳은 뉴욕이 아니라 세크라멘토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이다. 레이디 버드라고 불러달라는 당부는 세크라멘토와 이별하기 위한 첫걸음이기도 하다. 


레이디 버드의 사랑은 상대를 알아갈수록 미움이 생기는 일이다. 대니와의 첫사랑을 달콤했지만 그가 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이어갈 수 없어졌고, 꿈꾸던 첫 경험은 꿈같지 않다. 날 잘 아는 친구는 나의 가장 아픈 곳을 꼬집고, 집을 ‘wrong side of track’이라고 부른다거나 굳이 한 블록 전에 내려 걷는 이유를 아는 엄마는 그것을 이유로 날 미워한다. 서로에 대해 알아갈수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미움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레이디 버드는 보면 볼수록 알 수 없는 남자애를 만나고, 나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친구를 사귄다. 그들 사이의 미지의 영역이 그 관계를 지켜줄 것이라고 믿으며 말이다. 하지만 그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레이디 버드는 그들과 어떤 별도 만들지 못하고 비밀을 계기로 가까워지지도 않는다. 내려달라는 말에 어떤 의문도 품지 않고 쿨하게 내려주며 끝나는 만남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레이디 버드는 결국 그곳으로 돌아간다.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줄리와 완벽한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고, 날 아프게 한 첫사랑 대니의 연극을 보며 박수를 보낸다. 나를 미워하고 내가 미워했던 그 사람들 속에 사랑이 있다. 
 

엄마라는 이름의 고향

<레이디 버드>에서 레이디 버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엄마다. 아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는 공식 아래 레이디 버드의 가장 큰 사랑 역시 엄마다. 엄마는 레이디 버드가 가장 떠나고 싶었던 장소이자 곧 그리워하게 될 고향이기도 하다. 고향을 떠난 사람만이 고향이란 단어를 느낄 수 있듯이, 엄마의 사랑은 레이디 버드가 세크라멘토를 떠나고 나서야 도착한다. 구겨진 편지를 읽으며 때로는 쏟아지는 말보다 부치지 못한 편지에 더 많은 진심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가 너무 닮아서 싸울 수밖에 없었던 순간들은, 우리가 닮았기 때문에 공유할 수 있는 감정들로 기억된다. 내가 느낀 것을 당신도 느꼈는지 묻고 싶다. 알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레이디 버드의 성장은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 아닌 최초의 이름으로 돌아가는 일로 완성된다.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 무당벌레라는 뜻이지만, 당연하게 새를 떠올리게 되는 그 이름 안에는 떠나고 싶은 심정이 가득했지만, 이제는 날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둥지를 기억하기 위해 지어진 이름 같다. 낯선 곳에서 새로 시작하는 삶을 버티게 하는 것은 낯선 땅 위에 뜬 익숙한 별임을 알게 되는 것. 이것이 크리스틴이 치열한 열일곱을 통과하고 열여덟에 도착해 알게 된 것이다.


<레이디 버드>는 내가 사랑하는 이소라의 노래로 시작해 역시나 사랑하는 이소라의 노래로 끝나는 영화다. 레이디 버드의 노래는 Track 9이다. 이 노래는 ‘내가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렸네.’라는 가삿말로 시작한다. 날 고통스럽게 하는 세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이름을 붙이고 그만의 방식으로 통과해 나가는 레이디 버드에게 잘 어울리는 노래다. 크리스틴의 노래는 Track 3다.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Love is always part of me’ 언제고 곁에 있을 사랑의 존재를 깨달을 사람을 위한 노래다.


최선을 다해 정직하고 최대한으로 비밀스러운 제목을 가진 두 노래의 공통점이라면 듣는 사람에 의해 새로운 이름이 생긴다는 것이다. 음악이라는 것이 듣는 사람에 의해 다시 태어나기도 하는 것 아닌가. 게다가 우리는 사랑하는 것에 이름을 짓는 것에 익숙하다. 기억에 남는 가삿말은 쉬이 이름이 되고, 그 안에는 얼마간의 자신이 깃들어 있기 마련이다. 레이디 버드와 크리스틴의 이름처럼 말이다. 노래 제목을 알기 위해 더 정성스럽게 기억 속에서 노랫말을 더듬게 되는 이 노래처럼, 이 영화는 최선을 다해 성장하는 그 사람의 이름을 이해하기 위해 그의 삶을 더 다정하게 들여다본다. 레이디 버드와 크리스틴, 살며시 나와 당신의 이름을 넣어봐도 좋을 것 같다. 우리가 언젠가 떠나게 될 고향과 미움을 견딘 후에야 찾아오는 사랑을 위하여. 

레이디 버드 Lady Bird (2017)



@instagram: @hangangnam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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