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하다 집 앞 수목원 작은 호수에서 멈춰버렸습니다.
오리 가족 여섯 마리가 돌아와 있었거든요.
한동안 보이지 않아 근황이 궁금했던 참이었습니다. 산고양이들이 잡아갔다는 둥, 계절을 따라 떠나갔다는 둥 이런저런 소문이 돌았지만, 그 친구들은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조용히 제자리로 돌아와 유유히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왠지, 좋은 소식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날 저녁 뉴스에서 또 다른 좋은 소식을 만났습니다.
자신을 ‘날다람쥐 신문 배달부’라고 소개하신 아흔넷의 오광봉 할아버지였습니다.
옆구리에 신문을 끼고 가파른 계단을 단숨에 올라, 신문을 접어 휙 날리면 마당에 쏙. 역시 40년 경력자의 솜씨는 달랐습니다.
매일 밤 열한 시부터 새벽 여섯 시까지 350부를 돌리고 받는 월급 60만 원. 그중 절반은 어려운 이웃과 아이들에게 건네고, 남은 절반으로는 책을 사신다고 했습니다.
거실과 침실을 가득 채운 오천 권의 책이 할아버지가 보내온 시간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취재진이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지금 행복하신가요?”
할아버지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이만큼만 해도 행복해요.”
3분짜리 뉴스를 보는 동안, 제 눈가는 촉촉해져 있었습니다. 부끄러움 때문일까, 아름다움 때문일까. 어쩌면 둘 다인 것 같았습니다.
이삼십대 저는 성공한 사업가로 이름을 날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나 자신에게는 진실하지 못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는 사랑받기엔 부족하다고 여겼거든요. 자꾸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남들에게 보여줄 무언가가요.
성과, 인맥, 타이틀을 덧붙이면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오광봉 할아버지는 더 커 보이려 하지도, 더 대단해 보이려 애쓰지도 않으셨습니다. 그저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오늘을 성실하게 보내셨지요. 손에 쥔 것을 기꺼이 나누시면서요.
그 모습이 저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참 아름다웠습니다.
할아버지의 삶은 단출했습니다. 방 하나, 거실 하나. 가구도 많지 않았습니다.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들과 조용히 곁을 지키는 강아지가 전부였지요.
하지만 그 삶은 제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넉넉함이란
많이 가진 것에 있지 않고, 진실하게 살아온 삶에 있다고.
뉴스 말미에는 조금 쓸쓸한 소식도 있었습니다. 40년 만에 신문 배달을 그만두시게 되었다고요. 오래 좋아했던 일을 내려놓는 마음이 화면 너머로도 느껴졌습니다.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여전히 같은 말을 하셨습니다.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려있어요.”
상황이 바뀌어도 마음의 방향은 여전히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 선택으로 40년간 새벽 골목을 날쌔게 누비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요즘 저는 “나를 증명해야 해”라는 마음에 조금씩 힘을 빼보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자꾸 덧붙이기보다 덜어내는 쪽으로,
상황에 휩쓸리기보다 내 안의 진실을 선택하는 쪽으로요.
조용히 제자리로 돌아온 오리 가족처럼, 수십 년간 새벽 골목을 누비신 오광봉 할아버지처럼, 저도 그렇게 나만의 보폭으로 꾸준히 걸어가 보려 합니다.
돋보이는 삶보다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삶을. 화려하게 빛나는 삶보다, 가슴에 따뜻하게 남는 삶을 위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