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을 이롭게 쓰는 법

by 행부

폭풍 속에 닻 내리기


그땐 몰랐습니다. 겨울이 봄에게 바통을 건네는 3월엔 목련이 붓끝처럼 부푼다는 사실을요. 2019년 이맘때의 저는 그런 봄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꽃샘추위가 매섭게 맴돌던 영동대교 위.

성공을 향해 띄웠던 배는 사업 6년 만에 파산이라는 암초에 걸려 삶과 함께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미래는 캄캄했고 마음은 어두웠습니다. 노을 속으로 기우는 태양마저 저를 닮아 가라앉는 것 같았지요. 그날, 삶을 지탱하던 믿음 하나는 한강 아래로 그대로 가라앉았습니다.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남긴 채.


그 절박함으로 붙잡은 것은 뜻밖에도 명상이었습니다. 전에는 늘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아 있을 시간이 어디 있담? 하지만 단단히 딛고 있던 일상이 무너지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명상은 여유가 있어하는 것이 아니라, 여유를 만들기 위해 하는 것이라는 걸요.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한가로이 정원에 앉아 고요를 즐기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폭풍 한가운데로 들어가 가장 고요한 공간에 닻을 내리는 일이었지요. 생각이라는 거친 물살에 휩쓸릴 때 억지로 버티는 대신, 하얗게 질린 마음의 주먹을 조금씩 펴보는 것. 불안을 몰아내려고 서두르기보다, 불안 속에서도 나를 놓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 명상은 제게 원대한 깨달음보다 먼저, 무너진 나를 다시 품에 안아주는 연습이었습니다.



삶으로 다시 건너가는 숨


그 고요는 방 안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불안이 밀려오는 날이면, 예전의 저는 휴대전화를 먼저 집어 들었을 거예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몸을 일으켜 앉아 숨부터 살폈습니다. 굳어있는 어깨를 알아차리고, 짧게라도 호흡을 고른 뒤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현실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현실 속으로 들어가는 마음은 달라졌지요.


글을 쓸 때도 그랬습니다. 마음이 소란스러운 날에는 문장도 조급해졌습니다. 무언가를 증명하려는 말, 애써 괜찮은 척하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습니다. 그럴 때 잠시 멈춰 숨을 살피면, 나를 몰아붙이는 말 대신 나를 살리는 문장이 돌아왔습니다.


사람을 만날 때도 그랬습니다. 날 선 말로 대꾸하기보다, 한 호흡 가다듬고 조금 더 둥근 마음으로 건네는 말이 있다는 걸 배워갔습니다.


달리기를 하다가도 그런 순간을 만나는데, 마음이 조금씩 맑아지는 때가 있습니다. 걸음이 나를 데리고 여행시켜 주는 느낌이 들 때. 그때 파도는 여전해도 그 아래로는 고요함이 흐르고 있다는 걸 몸으로 알게 됩니다.


이런 순간들이 저를 가르쳤습니다. 명상을 삶에 이롭게 쓴다는 건 오래 앉아 있는 기술이 아니라고. 무너질 것 같은 순간에도 내 마음으로 돌아와 오늘의 나를 데려가는 일이라고.


제게 명상은 삶에서 도망치는 도피처가 아니라,

삶으로 다시 건너오게 하는 작은 다리였습니다.

어둑한 한강 위를 헤매던 그날의 저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도 정답이 아니라 몇 번의 호흡이었으니까요.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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