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막극을 보자 단막극을 보자
10월에 2022 tvN 단막극 4개를 봤다. 2021년 오펜 공모전에서 당선되어 2022년에 방영된 작품들이다. 다 챙겨봐야 하는데 스톡 오브 하이스쿨, 로또 1등 당첨금 찾아가세요, 남편의 죽음을 알리지마라, 저승라이더까지 봤다. 일단 각 작품들을 시청하면서 메모를 해놓았고, 나중에 재탕하면서 호기롭게 구조 분석을 하겠다고 결심했으나… 현생이 바빠 못 했다. 메모와 기억에 의지한 지금 글은 사실 감상문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 변명을 덕지덕지 붙여보고 싶은데 생략해야겠다. 그만큼 의지가 강하지 않았던 것이니까. 그래도 일단 브런치에 쓰고 본다!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학생들의 주식 거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 안형인은 방학 동안 혼자 투자 공부를 해서 돈을 번 인물인데, 개학 후 학교 친구들의 투자를 대행하고 수익을 얻는다. 자신은 흙수저 고딩이 아니라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파이오니어라고 생각한다. 대립하는 인물은 온하늘이라는 같은 반 친구이다.
학교에서 어찌 저찌 안형인이 벌인 일을 알게 되고 주인공을 어떻게 할까~ 고민한다. 진취적인 우리 주인공은 교장 선생님을 상대로 자신이 포털 사이트에 학교 이름을 걸겠다는 딜을 걸고, 엔딩에서 전국 고등학생 모의투자대회에서 상을 받으며 끝난다.
스톡 오브 하이스쿨은 오펜 단막 상권 대본집을 읽었을 때 가장 재밌는 작품이었다. 아이템이 참신하고 스토리가 좋았다. 기본적으로 어른들의 세계를 아이들의 세계에서 보여줄 때 반은 먹고 들어갈 수도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주식이란 소재와 고등학교 배경? 주식x고등학교! 이것도 벌써 되는 종목이지. 이런 첫인상을 가졌다. 그런데 막상 드라마는 대본만큼 재밌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배우들의 연기였다……………………
이 작품은 안형인, 온하늘, 이로운, 강유정 순으로 롤이 정해져있다. 분량도 주인공에게 끼치는 영향도 강유정이 이로운보다 더 많은 것 같은데 암튼. 안형인을 제외한 인물 중에선 온하늘 비중이 높다. 그런데 온하늘이 나올 때마다 몰입이 깨졌다. 애초에 온하늘과 이로운이 등장하는 첫 씬에서 두 사람은 걷는 것조차 어색했다. 온하늘은 다른 배우들과 달리 진한 화장에 교복에 베레모를 쓰는 등 화려하게 등장한다. 그럴 때마다 한 화면에서 주변 인물들과 어우러지지 않고 혼자 너무 튀었다. 현실에서 충분히 저런 고등학생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캐릭터의 이질감, 그 이질감 때문에 더욱 드러나는 연기력이 드라마에 집중을 못 하게 만들었다. 차라리 온하늘이 원래 외모에 관심이 많고 또래보다 훨씬 꾸민다는 설정이 있으면 이해하겠다. 이로운도 참 어색하나 분량이 적어서 온하늘만큼의 임팩트는 없었다.
20분쯤엔 안형인이 매수한 주식이 상폐되어 위기를 맞는다. 새로운 구성점으로 들어간다고 이해했다. 상폐 소식을 안 안형인이 택시타고 증권가 앞에서 우는데 이때 나는 왜인지 뜬금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연기는 너무 잘하는데 이상하게 ???? 싶었다. 첫번째, 안형인이 그 주식을 얼마나 샀는 지, 대체 얼마나 날린 건지 설명이 없었다. 그냥 안형인이 온하늘한테 슬쩍 듣고 좀 눈팅하다가 매수만 했다. 그래서 저렇게 당장 택시타고 달려갈 정도로 망한 건가? 알고 보니 전재산을 넣었던 건가? 싶어서 오히려 감정 과잉이라고 느껴졌다. 내가 잘못 봤나…
두번째, 사실 이건 온하늘이 부모님 대화를 듣고 안형인을 골탕 먹이려 던진 미끼였다. 이 장면은 회상씬으로 뒤에 배치됐다. 하지만 모든 인물이 명확하게 회사명을 말하지 않았다. 온하늘 부모가 서로 얘기할 때도, 온하늘이 안형인에게 얘기할 때도 말이다. 근데 안형인은 어떻게 찰떡같이 알아듣고 하필 상폐되는 그 주식을 샀다는 거야…? 설명이 조금 부족한 느낌이었다.
38분 이후부턴 안형인에게 새로운 위기가 생긴다. 바이크를 사려고 안형인에게 돈을 맡겼던 남학생은 수익이 마이너스나자 안형인에게 책임을 묻는다. 그리고 남학생의 어머니가 학교에 찾아오는데. 이 에피소드가 진행되면서 선생님들은 지금 학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 지 알게 된다. 안형인의 아버지도 학교에 소환된다. 안형인의 아버지는 자기 딸이 학교에서 애들 상대로 투자를 해주던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앞에서 빼먹었는데 안형인은 공부를 되게 잘하는 캐릭터다.
암튼 부녀의 눈물씬에서 감정선은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사실 안형인은 자신이 흙수저 고딩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봤을 때 딱히 그렇지는 않다. 어떤 사람들은 저게 무슨 흙수저야! 라고 어이없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주인공에게 그 정도까지 설정을 안 준 건 그런 설정이 없더라도 드라마가 진행되는 데 문제가 없기 때문 아닐까. 어쨌든 고등학생이 자신은 운명을 개척하는 파이오니어이자 선제적 투자자라고 의기양양하는 건 너무 귀엽고 매력있다. 안형인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미라클 인베스트먼트에 들어가서 진도준과 대립하는 짬뽕 스토리가 떠오르는 건 내가 요즘 재벌집 막내아들을 재밌게 보고 있어서 ^^
대본을 먼저 보고 영상을 봤다고 했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대본과 별로 달라진 게 없는 듯하다. 작가님의 초고는 어떨 지 모르겠으나 오펜이 공개한 완고와는 거의 동일하다. 그만큼 대본이 재밌고 잘 짜여졌다는 것 같다. 스톡 오브 하이스쿨은 텍스트로 읽어도 참 재밌는 드라마다. 단막극에 관심있다면 대본집과 영상 둘 다 보는 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