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불안과 초조로 잠을 자지 못한 그는 잠시 눈을 부친 뒤 일어났다. 새벽이었다. 해는 떠올랐지만 몇 시인지 궁금했다. 일본군에게 받은 군복을 입었다. 처음 입어보는 군복이었다. 어색했다.
아이들을 위해 먹을 음식을 구해야 했다. 그는 거리로 나왔다. 대부분의 상점은 불타버렸고, 불타지 않는 상점 안에는 남아 있는 물건이 없었다. 일본군은 비싼 물건들 뿐만 아니라 한 줌의 쌀까지 모조리 약탈했다. 도시의 전기, 수도가 끊어진 상태였다. 그가 들린 곳은 식당이었다. 식당 창고에 떨어진 음식이라도 있는지 바닥까지 확인했다.
창문 밖에서 돼지 울음소리가 들렸다. 다카히로는 고개만 내민 채 밖을 쳐다보았다. 작은 돼지 한 마리가 미친 듯이 뛰어가고 있었고, 그 뒤로 아이들 세 명이 쫓아갔다. 아이들은 돌에 넘어지고 기둥에 부딪치기를 반복했다. 일본군 세 명은 그 모습을 보고 팔짱을 낀 채 웃고 있었다. 일본군이 아이들에게 돼지 사냥을 시킨 것이다.
"빨리 뛰어, 빨리! 그러다 놓치겠어!"
일본군 한 명이 소리쳤다. 아이 중에 한 명은 다리를 다쳤는지 뒤쳐져서 따라가지 못했다. 앞선 뛰어간 두 아이는 돼지를 잡는 데 성공했다. 두 아이는 돼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일본군이 다가와 아이들에게 밧줄을 던져 주고 돼지를 묶으라고 말했다.
뒤늦게 도착한 아이 한 명에게 일본군이 말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
가쁜 숨을 몰아쉬는 아이에게 일본군은 총검으로 찔렀다. 아이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찔린 배를 움켜잡았지만, 고통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내장이 순식간에 몸 밖으로 터져 나왔다. 다카히로는 토할 것 같아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에 눈에 비친 일본군은 군인이 아니라 범죄자들이었다.
끝이 아니었다. 나머지 일본군 한 명이 트럭에 있던 여자를 끌어내렸다. 여자의 옷을 강제로 벗기고는 강간했다. 밝은 대낮이었다. 사람들의 눈이 있어도 개의치 않았다. 강간을 당한 여자은 출혈로 쓰러졌다. 조금 전 아이를 죽인 일본군이 다시 강간했다. 그리고는 총검으로 조금 전 아이에게 했던 것처럼 똑같이 여자를 찔렀다. 살인과 강간을 밥먹듯이 하는 중범죄자들이 난징을 점령하고 있었다. 정상적인 인간들이 아니었다.
난징시 건물 곳곳에 걸린 일본군의 깃발이 보였다. 바람에 흔들리는 깃발 소리는 이유 없이 죽은 영혼들의 울음소리 같았다. 일본 전범기가 침략당한 아시아 사람들에게 왜 가슴 찔린 고통과 피멍의 상징인지 알 것 같았다. 일본 군복을 입고 있는 다카히로는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다카히로는 류원과 장천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누군가의 음성이 그의 머리를 때렸다.
"구해줘요, 구해줘요! 빨리요!"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고 그는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 시간, 장천과 류원이 있는 곳에 일본군이 들이닥쳤다. 일본군의 군견이 냄새를 맡고 지하 움막을 발견했다. 군견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맹렬히 짖어댔다. 두 사람은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었다. 일본군 한 명이 들어와 돌을 들고 저항하는 장천에게 총을 쐈다. 가슴에 총을 맞는 장천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일본군은 류원을 향해서 총을 쏘지 않고 류원의 손을 잡고 끌어내려했다. 류원은 일본군 손목을 물고 끝까지 저항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일본군은 류원의 머리채를 붙잡고 끌고 나갔다.
다카히로가 도착했을 때, 지하 움막은 아수라장이었다. 구석에 장천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고, 류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장천의 숨은 붙어 있었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장천은 다카히로에게 말했다.
"류원이 일본군에게 잡혀 갔어요. 제가 지켜주지 못했어요."
"조금만 참아, 아저씨가 병원에 데려다 줄테니까."
다카히로는 돌아오면서 보았던 난징 병원을 떠올렸다. 그는 장천을 업고 병원으로 향했다. 장천은 신음하면서 다카히로에게 말했다.
“아저씨, 류원을... 꼭... 구해주세요.”
“......”
누군가를 위해 뜨겁게 살아온 적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자신이 없어서일까? 그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장천, 자면 안 돼! 깨어있어야 돼. 알았지?”
“아저씨 등이 따뜻해서 그런지 계속 잠이 와요.”
다카히로는 장천이 잠들지 않도록 말을 걸었다.
"장천은 류원을 언제 만난 거야?"
장천은 감았던 눈을 떴다. 그리고, 류원을 처음 만났던 그때를 회상하며 말했다.
"처음 만난 날, 함박눈이 내렸어요."
"아빠 심부름으로 수레를 끌고 멀리 장터로 가고 있었어요. 그때 마주 오던 류원을 만난 거예요. 저는 첫눈에 류원에게 마음을 뺏겨버렸어요."
"짝사랑만 한 거구나"
"아니에요. 그 뒤에 또 만나고 싶어서 처음 만났던 장소에서 류원을 기다렸어요. 나무 뒤에 숨어서 말이에요. 멀리서 류원의 모습이 보이자, 저는 수레를 끌고 나왔어요. 그리고 수레를 일부러 냇가에 빠뜨렸죠. 근데 아저씨, 저 말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그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 천천히 말해"
"수레를 끄집어내는 척하면서 류원에게 도와달라고 말했어요. 류원과 저는 함께 수레를 냇가에서 끄집어냈어요. 저는 고맙다고 류원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때 처음 류원의 손을 잡았죠. 류원에게 수레를 태워주었는데, 수레를 처음 타 본 류원은 엄청 좋아했어요. 그렇게 류원의 집까지 가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야, 멋진 첫사랑 이야기인데!"
"하지만, 그 날 저녁 늦게 집에 왔는데 수레가 주저앉아 버렸어요. 망가진 수레 때문에 아빠에게 혼이 났죠. 아빠에게 회초리를 맞은데 신기하게도 아프지가 않은거예요."
"그래, 지금도 류원 생각하면서 버티는 거야. 조금만 참아 거의 다 왔어"
"아저씨, 류원을 꼭 구해 주셔야 해요. 알았죠?"
“알았어. 구해주겠다니깐. 그러니깐 자면 안 돼!”
병원에 도착한 다카히로는 장천을 내려놓고 그를 깨웠다. 그는 아직 의식이 남아있었다. 그는 병원 입구에 서서 병원 안을 보았다. 병원 입구와 복도는 피 흘린 환자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환자들은 일본 군복을 입은 다카히로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들은 공포와 두려움에 다카히로를 피했다.
병원의 광경은 바깥보다 더 끔찍했다. 일본군에 의해 산 채로 불태워진 남자, 수십 차례 칼에 베어 내장이 배 밖으로 나온 채 병원에 실려온 여자. 심각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들은 분명 민간인이었다. 민간인에게 이렇게 참혹한 짓을 한 나라가 일본이라는 사실에 그는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
다카히로는 간호사를 찾아가 장천을 부탁했다. 그는 병원 밖으로 나오기까지 얼굴을 들고 참혹하게 죽어가는 중국인들을 쳐다볼 수 없었다.
다카히로는 류원을 찾아 나섰다. 그가 류원을 찾는 것은 장천의 약속 때문이 아니었다. 류원이 그의 딸을 닮아서도 아니었다.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살아온 다카히로는 누군가를 위해 뜨거운 삶을 한 번이라도 살고 싶었다. 죽은 아내를 위해서라도 일본에 장애를 앓고 있는 딸을 위해서라도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고 싶었다.
병원 정문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일본군 병사에게 잡혀간 중국 여자들의 행방을 물었다.
"그들이 살아있다면 위안소 건물에 가봐, 거기에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