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징의 기억(8)

by 한빛

(8)

류원은 트럭에 실려 난징시 거리를 지나가고 있었다. 폐허가 된 난징 시내를 보면서 그녀는 불과 얼마 전 엄마와 함께 걸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버스와 자동차들, 인력거 안에 타고 있는 이국적인 외모의 외교관, 바쁘게 걸아가는 식당 배달부, 비단을 짜는 사람들, 손으로 면을 뽑아내는 국숫집 주인, 채소를 가득 실은 수레와 북적대는 행인들, 개, 고양이, 말 등이 거리를 메웠다. 류원은 그 풍경들이 결코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일본군이 쳐들어 오고 모든 것은 죽음으로 변했다. 대부분 집과 상가들이 불이 타고 부서졌다. 부서진 집 앞에 나무에는 처참한 모습의 시체들이 아직도 묶인 채로 서 있었다. 죽어서도 편히 누워있지 못했다. 난징은 인간이 사는 곳이 아닌 죽음만이 존재하는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분명 중국군대가 우리를 지켜주리라고 엄마는 류원에게 말했지만, 중국군은 난징을 지킬 수 있는 용기와 힘이 부족했다. 돈이나 권력을 가진 모든 사람들은 이미 난징을 버리고 떠난 뒤였다. 제대로 훈련받지 않은 병사가 대부분이었으며, 전투 경험이 있는 병사라고 해도 대부분은 상해 전투에 참가했던 병사여서 지치고 허기지고 병든 병사들이었다. 전투 준비조차 제대로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난징에 남은 중국군은 이기려는 의지도 부족했지만 지키려는 힘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 결과, 일본군은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9만 명이 주둔한 난징을 단 4일 만에 함락시켰다.

소녀는 벽에 붙은 일본군의 선전물을 보았다. 그림에는 환하게 웃는 일본군이 중국인 아기를 안고 아기 엄마에겐 쌀을, 아기 아버지에겐 사탕을 주는 장면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 옆에는

"집으로 돌아가라! 쌀을 나눠주겠다. 일본군을 믿고 의지하라.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소녀의 엄마도 선전물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 참변을 당했다. 이런 선전물을 보고 수천 명의 난징 시민들이 집으로 돌아가 죽음을 당했다. 류원은 인간의 선과 악을 가릴 수 있는 표시를 사람에게 하지 않았는지 신을 원망했다.

중국 포로들을 가득 태운 트럭이 지나갔다. 그들의 얼굴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초점 잃은 눈빛이었다.

또 다른 트럭이 지나가는 순간, 류원은 아빠의 얼굴을 발견했다. 그녀는 아빠를 불렀다. 하지만 입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빠는 그녀를 보지 못했다. 이미 죽은 사람처럼 딴 곳만 보고 있었다. 류원은 트럭 밖으로 손을 뻗어 아빠를 향해 손을 흔들었지만 소용없었다. 옆에 앉아 있던 여자가 류원의 붙잡으며 말했다.

“그만해, 저 트럭에 실려간 포로들은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해.”

류원의 아빠는 군인이 아니었다. 농부였다. 아빠가 왜 포로들과 함께 트럭을 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류원은 억울해서 더 크게 소리 내어 울고 싶었지만 목구멍 아래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순간 기도가 막혀 숨이 멈출 뻔했다. 류원은 슬퍼도 목이 잠겨 제대로 울 수조차 없었다.

일본군이 잡아가는 트럭에는 포로들 뿐만 아니라 민간인들도 있었다. 중국군을 색출하는 과정에서 총을 잡은 손에 굳은살이 있거나 이마에 군모를 쓴 옅은 자국이 보이면 트럭에 태웠다. 농사일로 굳은살이 있는 농부, 오랫동안 모자를 쓰고 일하는 일꾼들도 그 안에 함께 있었다. 대부분의 트럭들은 양쯔강변으로 향했다. 그곳은 도착한 일본군은 강가 언덕에 포로들을 차례로 내리게 한 뒤 줄을 세웠다. 중국인은 손이 묶인 채 서서 기다렸다. 음식을 준다는 일본군의 말을 믿었기 때문이다. 잠시 뒤, 등 뒤에 있던 10여 대의 기관총은 동시에 둔탁한 금속 소리를 내며 천지를 울리기 시작했다. 언덕 아래 시체가 쌓이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죽음의 산을 만들었다. 수천 명의 시체에서 흘러내린 피는 양쯔강으로 흘러갔다. 다행히 살아서 강물에 뛰어든 사람들도 얼마 가지 못하고 시체로 떠올랐다. 총성이 멈추고 일본군은 군화를 신고 시체 위로 올라와 총검으로 죽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일본군은 시체 치우는 수고를 면하기 위해 땅에 묻지 않고 강물에 흘려보냈다.

그녀가 탄 트럭도 도로 위의 중국인 시체들을 밟고 지나갔다. 덜컥 덜컥 거리며 트럭이 흔들렸다. 두 번 죽음을 당하는 망자의 혼이 자신을 흔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류원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구를 꼭 붙잡았다.


"언젠가 일본인은 지금의 죽음을 반드시 돌려받을 것이다."


일본군에게 살해당한 엄마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엄마가 자신을 안고 지켜주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류원은 꼭 살아남을 거라고 다짐했다.

류원들 태운 일본군 트럭이 '위안부'건물 앞에 도착했다. 여기저기서 끌려온 여자들이 트럭에서 내렸다. 대부분 어린 여자들이었다.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얼굴과 눈동자에는 핏기가 없었다. 마치 죽기 직전 인간의 모습 같았다. 옷은 때와 얼룩으로 더럽혀져 처음에 무슨 색깔의 옷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건물 출입구 상단에는 여자들의 사진이 붙어 있었고 안쪽에 매표소가 있었다. 매표소에는 일본인, 중국인, 조선인에 대한 가격이 적혀 있었다. 1층 복도에 들어서자 양 옆으로 좁은 방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간격 없이 다닥다닥 붙은 좁은 방들은 마치 일본군의 성욕을 배설하는 화장실 같았다. 방문에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그곳에 있는 여자들은 이름 대신 숫자로 불렸다.

일본군이 그녀들 앞에 서서 각자 방 번호가 적힌 쪽지를 나눠주었다. 류원의 방은 32번이었다. 책임자는 방에 올라가기 전에 몇 가지 숙지사항을 알려주었다. '위안부'여자에게 갖추어야 할 행동들은 있었지만, 일본군에는 어떠한 격식을 갖추어야 하고, 여자에게 어떤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었다.

류원은 천천히 발걸음 떼고 건물 2층으로 올라갔다. 모두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손을 꼭 쥐며 걸었다. 류원의 방은 맨 끝방이었다. 맞은편 방에는 숫자가 적혀있지 않았다. 그녀는 32번 방문을 열었다. 바닥에 다다미 같은 나무판자와 그 위에 이불 하나가 깔려있었다. 누군가 이 곳에 지낸 흔적들이 보였다.


맞은편 번호 없는 방문이 열렸다. 서로 놀란 표정 지었다. 류원은 그녀의 얼굴이 아름다워서 놀랐고 그녀는 류원이 어린 동생 같아서 놀랐다.

맞은편 방의 여자는 이 곳에서 먼저 온 '위안부'였다. 그녀는 어린 소녀가 앞으로 마주할 운명이 얼마나 참혹할지 눈 앞이 캄캄했다. 그녀는 류원의 방으로 함께 들어갔다.

"너 이름이 뭐니? 난 양웨이야"

류원은 양웨이 손바닥에 자신의 이름을 써주었다. 류원의 손이 닿는 순간, 양웨이는 류원이 겪은 슬픔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양웨이는 자신도 모르게 코등이 시큰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류원의 슬픔은 양웨이 자신이 이 곳에서 겪은 고통만큼이나 크고 깊었다. 양웨이는 오늘 아침 이 곳에서 죽은 여자가 새겨놓은 나비 그림을 쳐다보았다.


"저기 나비 그림 보이니?"


류원은 고개만 끄덕였다.

"처음 이 곳에 온 여자가 새겨 놓은 거야. 오늘 아침에 나비가 되어서 창문 밖으로 날아갔어."

손톱으로 얼마나 힘주어 새겨 놓았는지 나비 그림에는 흘러내린 핏자국이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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