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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뒤 창문 밖으로 일본군이 도착한 소리가 들렸다. 양웨이는 창문 밖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무언가 결심을 한 듯 입술을 힘주어 물고, 머리를 묶었다. 그리고 류원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오늘은 내가 이 방을 쓸 테니깐 넌 건너편 내 방으로 가 있어. 몸이 너무 아파서 쉰다고 말했기 때문에 오늘은 내 방에 아무도 들어오지 않을 거야.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오늘 하루'라는 선물밖에 없구나. 미안해. "
"아니에요. 전 괜찮아요. 언니"
양웨이 류원의 손을 꼭 쥐며 말했다. 류원은 고개를 저으며 양웨이 품을 빠져나오기 싫었다.
"어서 가야 해. 조금 있으면 일본군들이 올 거야"
양웨이는 류원을 일으켜 세우고 32번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맞은편 자신의 번호 없는 방문을 열었다.
"너의 가족을 위해서라도 넌 끝까지 살아야 한다. 내가 너와 함께 할 거야."
류원은 발걸음을 옮기면서 언니가 한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32번 방을 뒤돌아보았다. 다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일본군 장교인 후지사키가 검은색 말을 타고 ‘위안부’ 건물 앞에 도착했다. 후지사키는 각진 얼굴에 둥근 안경을 꼈으며 키가 크고 깡마른 군인이었다. 그는 말은 탄 채 '위안부' 건물 앞에 서 있는 군인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난징을 완전히 함락시켰고 우리 것으로 만들었다. 역사상 이처럼 위대한 승리는 처음이다. 고생한 만큼 마음껏 즐기길 바란다."
며칠 동안 시체 섞은 냄새를 맡았던 일본군은 여자들이 있는 건물에서 흘러나오는 향수 냄새에 흥분하기 시작했다. 위안부 건물 앞에 붙어 있는 여자 사진을 본 일본군은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후지사키는 관리 책임자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말했다. 오늘 이 곳에 들어온 여자들 중에 처녀가 있는지 물었다.
"32번 방으로 가시면 됩니다."
후지사키는 천황을 위해 고생한 자신에게 그럴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상 자신의 색욕을 못 이겨 세상을 더럽힌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후지사키는 2층 건물로 올라갔다. 그는 32번 문 앞에서 서서, 문 틈으로 '위안부' 여자의 모습을 보았다. 순결하고 앳된 얼굴이었다. 그녀의 몸은 여성적인 모든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후지사키는 음흉한 얼굴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방문을 열었다. 칼을 뽑아 들고 말했다.
"소리를 지르거나 도망친다는 생각은 버려라."
후지사키의 예상과 달리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그의 소망을 무엇이든 들어주려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그녀는 능숙한 일본어로 그에게 말했다.
"지금 무척 피곤해 보이네요. 여기 앉으세요."
그는 먹잇감을 앞에 둔 살쾡이가 되어 그녀 가까이 다가가 앉았다.
"죽음도 불사하고 전쟁을 하는 당신 같은 군인들이 신기했어요. "
양웨이의 말에 후지사키는 어깨를 으쓱대며 말했다.
"난 천황 폐하를 위해 언제든지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어. 그런 생각이 없었다면 이렇게 살아 있지 못했을 거야."
그녀는 더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에게 전쟁 중에 당신을 지켜줄 물건이 하나 있습니다. 저의 집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목걸이입니다. 이것을 목에 걸고 있으면 아무리 날카로운 칼이 내리친다고 해도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
"놀랍군, 그 목걸이가 어디에 있는 거야? 난 그게 필요해"
"제가 그걸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후지사키는 순수한 처녀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는 머리맡에 놓아둔 목걸이를 꺼내 보이며 그에게 말했다. 단단한 나무(흑단) 구슬들이 연결된 목걸이였다.
"만일 당신이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내가 그걸 당신한테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그 칼을 들어 있는 힘을 다해 내 목을 쳐보세요."
양웨이는 무릎을 꿇고 목을 내밀었다. 오늘도 수차례 중국인의 목을 베었던 터라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칼을 높이 들었다. 힘껏 내리치려는 순간, 그는 가녀린 그녀의 목을 보았다. 검은 반점이 보였다. 떨림이 전혀 없었다. 마치 죽음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순교자의 모습이었다. 그는 칼을 내려놓았다.
"일어나라, 나는 네 의도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양웨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그녀는 다다미 위에 누웠다. 그리고 눈을 감으며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후지사키는 전쟁의 진정한 승리는 적국의 여자를 차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승리는 처녀를 차지하는 것. 그렇게 해야만 다음 전쟁에서 더 큰 승리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속지 않은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난징을 함락하고 적국의 아름다운 처녀들을 점령하는 이 순간을 그는 기다렸다. 마침내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참고 있던 자신의 성욕을 깊게 배설했다.
후지사키는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그곳의 책임자가 다가와 인사했다.
"괜찮았습니까?"
"아주 좋았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는 너무 으스대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대신 치아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32방 맞은편에 번호가 없는 방이 있던데 누가 있는 거요?"
"최근에 들어온 '위안부'중에 한센병(나병)에 걸린 아이입니다. 얼굴이나 몸매는 누구보다도 아름다운데, 이 곳에서 전염병인 나병에 걸렸습니다. 나병은 치료가 불가능한 끔찍한 병이죠. 피부가 문드러지고 서서히 곪아가는 병입니다. 그래서 얼마 전에 그녀를 그 방에 격리를 시켜 놓았습니다.
후지사키는 깜짝 놀랐다. 책임자는 계속해서 말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염력이 강한 병은 아닙니다. 일반 피부 접촉으로는 감염이 되지 않습니다. 아주 깊숙이 접촉을 하지 않는 한 그 병은 절대 전염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격리를 해놓았습니다. 오늘 중으로 저희가 깨끗이 처리할 계획이었습니다."
후지사키는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려고 했다. 하지만, 손이 너무 떨려서 그만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는 허리를 숙여 담뱃갑을 집어 들고 담배 한 대를 간신히 입에 물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목에... 검은 반점이.... 있지.... 않았소?"
"네, 맞습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후지사키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해가 떨어지고 ‘위안부’ 건물 외등이 켜졌다. 외등을 향해 미친 듯이 날아가는 불나방이 보였다. 바로 앞에서 타 죽는 것을 보면서 불로 뛰어드는 나방. 깊디깊은 쾌락을 맛보기 위해 죽음을 불사하고 뛰어드는 자신의 모습 같았다. ‘위안부’ 건물 앞에 줄 서 있는 일본군을 바라보았다. 일본군 뒤로 검은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 것을 바라보며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