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징의 기억(6)

by 한빛

(6)

링링은 우물가로 걸어갔다. 우물 상단에는 나무로 만든 두꺼운 판자가 올려져 있었다. 그녀는 그전에 무거운 누름돌이 올려져 있었다는 것을 기억했다. 지금은 누름돌이 그녀의 발 앞에 내려져 있었다. 그녀는 두꺼운 판자를 옆으로 밀어냈다. 조금씩 우물 안 모습이 보였다. 거의 다 밀어냈을 때, 햇빛이 우물 안을 비추었고 우물은 속살을 훤히 드러냈다. 오래전 차 있었던 물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우물 벽과 바닥에는 차가운 돌덩이가 박혀있었다. 우물의 깊이가 8미터라고 그녀는 들은 적이 있었다.

"도대체 그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녀는 난징에서 관광 온 일본 사람들이 맞았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끔찍한 상상을 했다.

"어디론가 끌려가서 맞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링링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두꺼운 판자를 원래 있던 자리로 돌려놓았다.

한 달 전 난징시에서 이 곳의 우물을 난징박물관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링링의 책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면 우물이 간직한 비극은 영원히 묻혀 버렸을 것이다. 그녀의 책이 중국인들의 역사의식을 깨웠다. 계속된 관심으로 우물 속에서 죽은 사람들의 유골을 꺼내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작은 추모탑이 건립되었다.

그녀는 발 앞에 누름돌을 들어 올렸다. 둥글지만 타원형에 가까웠다. 두 손으로 간신히 들어 올렸다. 누름돌은 유골 발굴 당시 우물 바닥 가장자리에 있었던 돌이었다. 그 돌 위로 수많은 뼈들이 쌓여 있었다.

두꺼운 판자 위에 돌을 올려놓자, 누름돌 색깔이 조금씩 변하는 것 같았다. 처음엔 분명 짙은 회색이었는데 조금씩 붉은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링링은 두 손을 돌 표면에 가져갔다. 그리고, 손바닥을 대고 잠시 눈을 감았다. 처음엔 따뜻한 느낌이었는데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두근거리는 느낌까지 들었다. 마치 돌이 살아 있는 누군가의 심장 같이 느껴졌다. 그녀는 놀라서 돌에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섰다.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링링은 일본인 다카히로가 돌아왔을 거라 생각하고 뒤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오빠였다. 그는 뇌성마비로 얼굴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고, 두 팔과 두 다리도 뒤틀려 제대로 서 있기 힘들 정도였다. 링링의 오빠는 엄마인 류원이 낳은 아들이었다. 엄마는 아이를 낳지 않고 함께 자살하려고 했지만, 마지막 순간, 아빠가 엄마를 살렸다고 했다.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버려진 자식처럼 키워졌다. 오빠의 이름은 '장후이'였다. 그녀는 오빠에게 손을 잡고 말했다.

"깜짝 놀랐잖아! 오빠, 아침은 먹었어? 오늘은 엄마가 오지 않으니깐 걱정하지 마."

링링의 엄마는 최근에 알츠하이머병(치매)에 걸려 과거와 현실을 구분하기 힘들어했다. 그녀는 오빠 장후이를 보면 자신을 괴롭힌 일본군으로 생각했고 그를 보면 가만히 두지 않았다. 주변에 작대기가 있으면 그를 사정없이 때리곤 했다. 그의 몸에는 온통 멍이 들었고 성한 곳이 없었다. 엄마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면 자신이 한 행동에 놀라 정신을 잃고 쓰러지곤 했다.

오빠는 엄마가 보이지 않는 늦은 밤, 집에 들러 음식을 먹곤 했다. 오빠의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늘 링링의 몫이었다. 링링이 풍경소리를 울리면 오빠는 어두운 곳에 숨어있다가 나타나곤 했다. 그렇게 풍경소리가 오빠와 링링을 연결시켜 주었다. 어둠 속에 홀로 있는 오빠에게 링링은 빛 같은 존재였다.

2년 전 링링은 자신이 쓴 '난징의 진실'을 오빠에게 읽어주었다. 일본군이 중국인들을 죽이거나 강간을 하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그는 분노로 온 몸을 떨었다. 실제 책 속의 주인공인 엄마의 이야기가 나올 때면 크게 울었다. 그 뒤로 오빠의 행동이 조금씩 거칠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상한 점은 어디에서 누구와 싸웠는지 손과 얼굴에 늘 상처가 보이곤 했다.

"오빠, 요즈음엔 어딜 다니는 거야? 왜 이렇게 얼굴에 상처가 많은 거야. 혹시 누구에게 맞은 건 아니지?"

"......" 오빠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오늘 이 곳에 왔던 외국인 혹시 보지 못했어? 내가 장을 보러 간 사이에 없어진 거야, 아무리 찾아도 없어."

오빠는 링링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음식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아침을 안 먹어서 힘이 없어서 그렇구나, 가서 아침 먹어. 내가 괜한 질문을 했나 봐"

힘들게 걸어가는 오빠의 뒷모습을 보면서 링링은 운명이 얼마나 인간에게 잔인할 수 있는지 생각했다.

그녀는 일본 회사 직원이 오기 전에 그를 찾을 수 있을지 불안했다. 휴대폰을 꺼냈다. 그녀는 경찰에 신고를 할지 고민하다 휴대폰을 다시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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