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다카히로는 소녀를 지하 곳간에 놓아두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피가 묻은 옷을 갈아입고 싶었다. 그는 소녀의 집에 들어가 입을 만한 옷을 찾았다. 소녀 아빠의 옷 같았다. 군청색의 외투를 입었다. 조금 작았지만 추위만 막아준다면 상관없었다. 그는 집 밖으로 나왔다. 길거리에는 시체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잠시 뒤에 중국인 포로를 태운 일본군 트럭이 다가왔다. 그는 몸을 피해 건물 뒤에 숨었다.
두 명의 일본군이 내렸다. 그들은 트럭에 타고 있던 중국인 포로들을 내리게 했다. 밧줄에 묶인 포로들을 일렬로 세우고 무릎을 꿇게 했다. 장교로 보이는 일본군은 칼을 빼어 들었다. 칼날에 침을 뱉은 후 그는 중국인 포로의 목에 칼을 가져갔다. 칼이 허공을 가르자, 목과 몸뚱이는 차가운.땅 위로 떨어졌다. 목에서는 피가 솟구쳤다.
인간이 인간에게 어떠한 감정도 없이 목을 베는 장면이었다. 장교는 마치 자신의 업적인양 자랑하며 잘려나간 목을 치켜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다음 포로는 부하에게 맡겼다. 장교의 부하는 건네 준 칼을 잡자 부르르 떨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눈은 초점을 잃고 장교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낯익은 모습이었다. 오래전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대학교 때 쥐 해부실험을 하던 기억이었다. 마취한 쥐의 배를 갈랐다. 그때, 꿈틀거리던 쥐를 본 다카히로는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다카히로의 모습을 보고 옆에 있던 친구가 놀리며 말했다.
"이런 약한 모습을 봤나, 이 정도로 놀라면 어떻게 해."
친구 녀석이 수술용 칼을 주면서 그에게 말했다.
"단칼에 숨통을 끊어봐!"
다카히로는 쥐의 목에 칼을 대었지만 손이 떨렸다. 원래 죽일 의도가 없었던 그의 칼은 숨통을 끊지 못했다. 세 번이나 목을 그어서야 쥐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 장면은 오랫동안 다카히로 꿈속에 나타나곤 했다.
일본군은 백기를 들고 투항한 중국군을 사살하거나 칼로 베어버렸다. 그리고, 부대에 내려온 지침에 따라 치밀한 계획으로 그들을 대규모로 학살했다. 그리고, 아이와 부녀자들을 보면 분기탱천하여 살인을 자행했다. 일본군은 중국인을 인간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짐승이나 물건으로 대했다. 그 당시 일본의 언론들도 중국 국민을 순식간에 '그것'으로 만들어버렸다.
다카히로는 건물 뒤에 숨어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2 중대장 하고 목 베기 시합을 했는데 이번에 목을 벤 거 합하면 내가 이긴 것 같은데."
"네, 중대장님! 오늘 하루만 115명을 기록하셨습니다."
그들의 행동과 이야기에 그는 분노에 치를 떨어야만 했다. 그는 살아오면서 일본이 참여한 전쟁은 세계열강에서 아시아를 구해내기 위한 전쟁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눈 앞에서 펼쳐진 전쟁의 실상은 침략전쟁이고 학살전쟁이었다.
다카히로는 발을 헛딛어서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그들은 다카히로가 숨어 있는 벽을 향해 총을 겨냥했다.
"누구야! 이리 나와."
다카히로는 손을 들고 걸어 나왔다.
"저는 일본 대사관 직원, 다카히로입니다. 일본군을 도와주라는 지시를 받고 이 곳에 왔습니다."
다카히로는 자신이 뼛속까지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능숙한 그의 일본말에 그들은 안심하고 총을 내려놓았다.
"반갑습니다. 그런데 옷이 많이 지저분한데 고생이 많으시군요."
그들은 트럭에서 여분의 일본 군복을 꺼내 다카히로에게 주었다.
"감사합니다."
"지금이 겨울인데, 보급품이 늦어져서 다들 추워서 얼어 죽겠어. 대사관에서 신속히 도움을 요청해주시기 바랍니다."
"네, 알겠습니다. 연락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술 한잔 하겠소? 목 베기 시합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말이요."
그들은 트럭 뒤에 올라타 나무상자에서 술병을 꺼냈다.
"이 쪽으로 올라오시오. 술이 들어가면 몸이 따뜻해질 거요."
다카히로가 트럭에 올라타려는 순간이었다. 트럭에 실려 있는 나무 상자 아래에서 그는 무언가를 보았다. 나무 상자 밑에 숨어 있는 중국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어린아이의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고 두 눈은 살려달라는 눈빛으로 간절했다. 나무 상자 위로 일본군은 총과 칼을 내려놓고 술을 꺼냈다.
일본군은 나무 상자 아래 틈으로 수상한 옷을 발견했다.
"누구야!"
일본군은 소년을 발견하고 놀라 일어서려는 순간이었다. 다카히로는 일본군이 내려놓은 칼을 쥐고 일본 병사의 허벅지를 찔렀다. 병사는 트럭 밖으로 떨어졌다. 일본군 장교는 권총을 꺼내려고 했지만 다카히로의 칼이 더 빨랐다. 목이 베인 일본군 장교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다카히로는 장교의 권총을 꺼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총알이 일본군 장교의 머리를 관통했다.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던 일본군 부하에게 다시 한번 총격을 가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는 자신이 같은 일본인을 총으로 쏜 자신이 놀라웠다. 그는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괜찮니?, 이리 나와"
남자아이였다. 아이는 두려움에 아직도 떨고 있었다. 다카히로는 남자아이 손을 잡고 천천히 들어 올렸다. 아이는 겁에 질려 그의 눈을 쳐다보지 못했다. 일본인이 오기 전에 그는 서둘러 그곳을 떠나야 했다. 다카히로는 운전석에서 먹을 음식을 꺼냈다. 그리고, 소년의 손을 잡고 여자 아이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다카히로는 소년에게 말했다.
"네 이름이 뭐니?"
"장천입니다."
"트럭에 어떻게 타게 된 거니?"
"아빠와 함께 중국군을 도와주다 일본군에게 잡혔어요. 그리고, 아빠가 이빨로 묶인 제 손을 풀고 나무상자 밑에 숨겨주었어요."
다카히로는 장천이 아빠가 죽는 모습을 보았다는 생각이 들자, 장천의 얼굴을 끌어당겨 안아주었다.
"지금이 몇 년 몇 월인지 아니?"
"1937년 12월 13일이에요"
다카히로는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았다. 역사책에서 읽었던 중일전쟁, 그 한가운데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는 거대한 영화 세트장에 와 있다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현실이었다.
다카히로가 소년과 함께 지하 곳간으로 들어가자, 소녀는 눈을 떴다. 소년은 소녀를 보자 입을 열었다.
"류원, 살아있었구나"
"........"
그녀의 이름은 류원이었다. 류원의 입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정신적 충격으로 소리를 잊어버린 채 눈물만 흘렸다. 장천과 류원은 친구 사이인 것 같았다. 장천은 류원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다카히로는 일본군에게 얻는 여분의 옷과 빵을 두 아이 앞에 내려놓았다. 류원은 우물만 쳐다볼 뿐 빵을 먹지 않았다. 다카히로는 장천을 우물가로 데려갔다. 어두워지기 전에 시신을 꺼내야 했다. 다카히로는 장천의 도움을 받아 류원 엄마의 시신을 꺼내 땅에 묻었다. 류원은 지켜보면서 계속 눈물만 흘렸다. 어둠이 짙게 드리워졌다. 지하 곳간에는 희미한 달빛이 문틈으로 들어왔다.
다카히로는 달빛에 비친 자신의 손을 쳐다보았다. 일본군에게 칼을 휘두르고, 방아쇠를 당긴 손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 읽었던 어느 사무라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사무라이는 어느 술집에서 영주의 원수를 만났다. 수 차례 칼싸움 끝에 영주의 원수를 구석으로 몰아 놓았다. 그리고, 단칼에 원수의 목을 베려고 할 때였다. 영주의 원수는 마지막 순간 사무라이 얼굴에 침을 뱉으며 저항했다. 대부분 그다음은 사무라이가 참혹하게 칼을 휘두르는 장면이 떠오르는데 사무라이는 칼을 칼집에 넣고 떠나버렸다.
원수가 침을 뱉었을 때 사무라이는 화가 났던 것이다. 화가 난 상태에서 그 원수를 죽이는 행위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행위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영주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칼을 든 것이지, 개인적인 분노로 칼을 든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다카히로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칼을 든 것으로 생각했다. 난징을 침략한 일본군인은 중국인들을 한낮 분풀이와 욕정의 대상으로 밖에 보지 않았다. 짐승을 사냥하는 사냥꾼도 짐승을 잡기 전에 예의를 갖추었다. 그들은 사냥꾼도 사무라이도 아니었다.
다카히로는 자고 있는 두 아이의 모습을 보았다. 류원과 장천은 서로 손을 꼭 잡고 자고 있었다. 그는 잠이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