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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빛 Oct 22. 2021

누구나 살아가는 것은 기적이야

 나에게는 모든 것이 기적이다. 그 중에서도 ‘살아 있음’과 ‘삶의 기적’을 나눌 수 있는 이 시간이 나에게 기적이다. 


 그날은 여느 때처럼 평범한 하루였다. 이제 두 돌이 지난 아들과 아내에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왔다. 부산으로 가는 장거리 출장이었다. 문을 닫으면서 포옹을 해주지 못해 아쉬웠다. 하지만 평소 감정 표현에 무딘 경상도 남자여서, 생각만 할 뿐 늘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아침 첫차를 타기 위해 서둘러서 전주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제일 먼저 버스에 도착한 나는 운전기사 바로 뒷자리에 가서 앉았다. 꿈자리가 안 좋아서 그 자리가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앉자마자 안전벨트를 매었다. .

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승객들이 하나둘씩 올라탔다. 건너편에 어떤 여자분은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고, 가운데 자리에는 나처럼 출장을 가는 회사원 서너 명이 앉았다. 다음으로 머리를 짧게 자른 남자가 올라탔다. 그 뒤로 세 명의 친구들이 함께 올라탔다. 훈련소로 가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어머니가 그를 배웅하기 위해 올라탔다. 어머니는 그의 손을 꼭 잡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아들, 가서 군생활 잘하고 건강해야 한다. 알았지?”


 그도 눈물을 훔쳐내고는 어머니를 안아주었다. 일곱 시 정각이 되자, 버스는 출발했다. 창문에 맺혀 있던 빗방울이 어지럽게 흘러내렸다. 창밖을 보면서 오늘 만날 사람들을 생각했다. 하지만, 운전기사가 어딘 가에 쫓기듯이 운전을 해서인지 머리가 어지러워서 집중할 수 없었다. 2차선 국도에서 중앙선을 넘어가며 위험하게 추월했다. 오르막길에서도 추월하는 모습을 보고는 안 되겠다 싶어 아저씨에게 말했다. 


 “아저씨, 천천히 좀 가세요”


 말이 끝나는 순간, 내리막길 커브에서 버스가 휘청거렸다. 운전기사가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더 미끄러지고 가속이 붙었다. 90km 속도로 중앙선을 넘나들었다. 핸들은 제멋대로 돌아갔다. 운전기사와 뒤에 앉는 나는 그저 외마디 단어만 소리칠 뿐이었다.

 

 “어…어…”


 겁에 질려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죽음에 대한 생각이 숨을 가쁘게 했다. 버스는 지리산 계곡을 통과하는 2차선 국도를 폭주 기관차처럼 내달렸다. 왼쪽에는 바위, 오른쪽에는 10M 아래 계곡이었다. 맞은편 차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타나지 않았다. 어딘 가에 부딪혀야만 버스는 멈출 것 같았다.


 왼쪽 바위와 부딪치려는 순간이었다. 나는 두 눈을 감았다. 하지만, 좌측으로 몸이 급하게 쏠렸다. 운전기사가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우측으로 핸들을 돌린 것이다. 버스는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버스는 빗속을 뚫고 허공에서 한 번, 두 번 회전하며 계곡으로 떨어졌다. 나는 회전하는 동안 버스 속의 짐들이 뒤엉키는 것과 잠자고 있던 승객들이 창문 밖으로 튕겨 나가는 것을 보았다. 안전벨트는 내가 모든 것을 보고 기억할 수 있게 했다.


 버스는 먼저 바위에 부딪혔고 튕겨 오르더니 계곡물 속에 박혔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사고여서 지금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앞이 잘 안 보였다. 손을 들어 얼굴을 만졌다. 안경이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것이다. 모든 감각이 살아있었다.


 누군가의 신음이 들려왔다. 계곡물에 반쯤 잠긴 운전기사의 목소리였다. 버스 뒤를 쳐다보았을 때, 영화 속 추락한 비행기 잔해처럼 짐과 사람들이 뒤엉켜 있었다. 부서진 창문에 붙어 있던 유리를 뜯어내고 천천히 밖으로 나왔다. 바위 위에 올라서서 계곡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무와 바위 위에 떨어진 사람들의 신음이 들렸다. 눈앞에 튕겨 나간 타이어가 보였다. 타이어 표면은 다 닳아서 반들반들했다. 사고의 원인은 빗길 과속과 정비하지 못한 타이어였다.


 잠시 뒤에 구급차가 도착했다. 들것에 실려 구급차에 탔다. 훈련소로 가는 젊은 친구들도 함께 탔다. 그 친구들은 허리를 심하게 다친 상태였다. 정작 어머니와 헤어지고 훈련소로 가는 예비군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른 차에 탔을 거로 생각했다. 남원 의료원에 도착한 나는 유일한 목격자여서 방송국 기자들과 경찰들에게 둘러싸여 인터뷰와 사건 진술을 했다.




 다음 날 병원에 누워있는데, 경찰에게 전화가 왔다. 한 명이 실종되었다고 말했다. 예비군인이었다. 순간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경찰은 사고지점에서 아무리 수색해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날 상황을 다시 한번 설명해 달라고 해서 기억을 더듬어 갔을 때였다.


 이틀 전 꾸었던 꿈 생각이 났다. 깊은 물 속 바위 위에 누워있는 남자를 본 꿈이었다. 너무 무서워서 잠에서 깼을 때 방 창문 너머에 누군가 와 있다는 느낌이 아직도 선명했다. 나는 경찰에게 “주변의 깊은 물웅덩이를 찾아보세요”라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나는 이렇게 살아서 병원에 누워 있는데…’ 라고 자책하면서 꿈이 현실이 아니기를 기도했다. 몇 시간 뒤 전화가 왔다.


 경찰은 “찾았습니다. 말씀해주신 대로 물속에 가라앉아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수화기를 든 채로 움직일 수 없었다. 사고 후에 안경이 없다는 핑계로 가만히 앉아 있었던 내가 원망스러웠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남자가 내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꿈 때문에 운전자 뒷좌석에 앉았고, 습관처럼 매지 않던 안전벨트를 매고 앉았다. 나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지만, 그는 젊은 생을 마감했다.


 그 사건은 죽음과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다시 살아갈 이유’를 알게 되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살아갈 기적을 전해준 것처럼 단 한 사람이라도 삶의 기적을 나누고 싶었다. 아침에 눈을 뜬 것에 감사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가 기적이기에 집을 나설 때 다시 돌아오지 않을 사람처럼 가족에게 포옹하고 입을 맞춘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기적이다. 그 중에서도 ‘살아 있음’과 ‘삶의 기적’을 나눌 수 있는 이 시간이 나에게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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