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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빛 Oct 22. 2021

오늘 하루 어땠어

 이미 우리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저 환한 미소를 짓고 마음의 문만 열면 하나로 합쳐질 수 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생각만 해도 시간과 장소가 하나로 이어질 수 있다.   


  큰 도시에서 살고 싶은 동경이 커서 일까, 군 제대를 하고 1년 동안 서울에서 공부를 했다. 내가 처음 도착한 곳은 대학들이 밀집해 있는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이었다. 그곳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오래된 집을 구했다. 맨 위층의 옥탑방에 짐을 풀었다. 옥탑방 마당에서 바라본 서울 야경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느낌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울은 낯설고 외롭다는 느낌으로 변해갔다. 온종일 낯선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에 돌아오면 지치고 힘들어서 잠자리에 들기 바빴다. 


 ‘서울 사람들은 항상 조심해야 해.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어.’


 먼저 서울에서 생활했던 선배가 나에게 당부했던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래서인지 낯선 사람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고, 그들을 두려운 존재로 바라보았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입을 열지 않는 적도 있었다. 옥탑방이 점점 외딴 섬으로 되어갔다.    


 어느 주말 오후, 영어학원에 가기 전에 서점에 들렀다. 서점 책장에 ‘내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나는 손에 책을 쥐고 아무렇게 책장을 넘겼다. 제일 먼저 눈에 띈 이야기 제목이 ‘테디베어’였다.



 미국 남부, 어떤 도시를 달리고 있는 화물차의 낡은 무전기에서 갑자기 한 어린 소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빠가 사용하던 무전기로 소년은 “한 달 전에 눈이 엄청나게 오던 날, 트럭을 몰던 아빠는 사고를 당해서 돌아가셨어요”라고 말하면서 지금은 엄마가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러 나가야 하고, 밤늦은 시간에 가끔 엄마가 우는 소리를 듣는다고 말했다. 소년은 자신의 소원을 이야기했다. 트럭 기사는 볼륨을 높였다.


 “평소에 아빠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다리가 불구인 저를 태우고 동네를 한 바퀴 태우고 돌곤 하셨어요. 이제는 아빠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다시는 큰 트럭을 타 볼 수 없을 거예요. 하지만, 트럭 아저씨가 혹시 이 근처를 지나갈 때 무전기로 연락을 주세요. 엄마는 이제 더는 트럭을 탈 수 없을 거라고 말하지만 저는 이 무전기가 아저씨와 연결해 줄 거라고 믿어요.”

그는 자신의 어린 아들을 생각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목이 메어왔다.

“어린 무전기 친구, 너의 집이 어딘지 말해 줄 수 있니?”


 그는 급송 화물이 있음에도 곧장 트럭을 돌려 아이가 일러 준 주소로 향했다. 집 근처에 도착해서 모퉁이를 도는 순간, 그는 깜짝 놀랐다. 스무 대가 넘는 큰 트럭들이 소년의 집 앞 도로를 세 블록이나 가득 메우고 있었다. 주위의 수 킬로미터 안에 있던 모든 트럭 운전기사들이 무전기를 통해 소년과 트럭 기사가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곳에 있는 모든 기사가 어린 소년의 얼굴에서 행복을 보게 되었다.

 

 엄마가 집에 돌아오기 전까지 트럭 운전기사들은 차례로 아이를 태우고 난 뒤, 서로 작별 인사를 나누고 떠났다. 그가 고속도로에 올라서면서 무전기를 트는 순간, 또 다른 놀라움이 찾아왔다. 한목소리가 무전기에서 흘러나왔다.


 “트럭 운전사 아저씨들, 여기 테디 베어의 엄마가 고맙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여러분들 모두를 위해 우리가 특별한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어린 아들의 소원을 이루어 주셨으니까요. 제가 울음을 터뜨리기 전에 이 무전을 마쳐야겠군요. 신께서 여러분과 항상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테디 베어’ 중에서 -




 순간, 허리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전기가 흐른 것 같은 전율이 왔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내 혼자만의 삶이 아니었구나, 누군가 항상 곁에 있었구나!'


라는 깨달음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나는 잠시 서점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와 제일 첫 번째 눈이 마주치는 사람에게 환한 미소를 지었다. 기분이 좋았다. 책 제목이 말하는 ‘마음의 문’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세상과 사람들을 향한 마음의 문이었다. 서점을 나온 나는 영어 수업에 들어갔다. 미국인 영어 선생님은 늘 같은 질문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How are you today? (오늘 어땠어요?)”


 이전 수업에서는 항상 “I’m fine, and you”로 말했지만, 그날은 “Fantastic!”(판타스틱)이라고 대답했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은 나를 불렀다. 평소에 조용히 앉아 있던 나에게 ‘Fantastic’ 한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나는 수업에 들어오기 전에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을 떠듬떠듬 영어로 말했다. 그녀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을 가졌는지 금세 환한 미소를 지었다.

“Beautiful story!”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나를 꼭 안아 주었다. 따뜻했다. 마치 책 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소년이 무전기를 통해 누군가를 찾고 자신의 소원을 이루었듯이 나 또한, 소년의 이야기를 읽고 세상과 사람을 연결하는 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 비밀은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마음의 문을 열면 사람과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라는 사실이었다.


 그 이후로 그녀는 나를 보면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었다. 그리고 나의 웃는 얼굴을 보면서 “당신의 웃음은 백만 불짜리 미소입니다.”라고 칭찬해 주었다. 늘 시무룩하고 어두운 표정으로 살아온 나에게 그녀는 내 웃음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해주었다.


 이미 우리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저 환한 미소를 짓고 마음의 문만 열면 하나로 합쳐질 수 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생각만 해도 시간과 장소가 하나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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