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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빛 Oct 22. 2021

닮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누군가를 닮고 싶다는 것은 내 안에 그 사람의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나는 부산 기장군 월내 바닷가에 있는 작은 초등학교에 다녔다. 그 당시 지금처럼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바닷가에서 형들과 불꽃놀이 하는 것을 좋아했다. 밤하늘에 불꽃이 터질 때마다 세상을 환히 비춰주는 모습이 좋았다. 답답했던 마음도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문구점에 들렀다. 마침 새로 나온 ‘콩알 탄’이라고 불리는 불꽃이 눈에 띄었다. 너무 신기해서 계속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콩알 탄을 손에 쥐고는 계산도 하지 않고 문구점을 나와버렸다.


 "이 녀석, 내가 모를 줄 알았지"

주인아저씨의 목소리에 제품을 들고 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주인은 나의 목덜미를 잡고는 문구점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토끼를 붙잡은 살쾡이 눈빛으로 말했다.

 "이런 도둑놈을 봤나, 새파랗게 어린 녀석이 물건을 훔쳐, 이 녀석 혼이 나야 정신 차리지."


 그는 내 귀를 잡고 흔들었다. 그리고, 문 앞으로 데리고 나갔다. 귀가 너무 아파서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나를 문 앞에 무릎 꿇게 하고 두 팔까지 높이 들게 했다. 맨바닥은 차갑고 거칠었다. 그리고 더러웠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참 울고 나니깐 지나가는 친구들이 보였다. 친구들과 눈이 마주치자 나는 고개를 숙였다.


 ‘친구들이 나를 도둑으로 생각하겠지?’

 

 친구들의 시선이 따가웠다. 세상이 나를 버린 것 같았다. 피가 더는 팔과 무릎으로 흐리지 않았고 감각은 점점 무뎌졌다.


 잠시 뒤, 눈에 익은 분홍 구두가 보였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엄마였다. 미안함에 다시 고개를 숙였다. 엄마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축 처진 팔을 내려 주었다. 엄마는 문구점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고개를 돌려 문구점 안을 보았다. 창문 넘어 주인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엄마를 보았다. 주인은 처음엔 큰소리를 치더니 점점 조용해졌다. 엄마는 문을 열고 나와 나를 일으켜 세웠다. 엄마의 손에는 조금 전 내가 들고 있던 콩알 탄이 있었다.


 “많이 힘들었지”

 "......”


 엄마는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함께 바닷가로 향했다. 엄마의 온기는 걸음마다 길가에 움츠렸던 꽃들을 고개 들게 했다. 바닷가에 도착한 우리는 모래 위에 앉았다.




 엄마는 콩알 탄 하나를 들고 모래 위에 던졌다. 터지는 불꽃보다 엄마 얼굴이 더 환하고 밝아 보였다.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앞으로 불꽃이 보고 싶으면 엄마에게 말하렴. 엄마랑 함께 불꽃을 보자. 알았지?”

 “......”


 엄마는 말없이 나를 꼭 안아 주었다. 엄마 품에는 얼어버린 겨울 바다까지 녹게 만드는 따뜻한 사랑이 있었다. 나도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문구점 주인처럼 상대방을 ‘나와 그것’으로 대하기보다 '나와 너'로 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안다.


 나는 히어로 영화를 볼 때면 그의 능력을 가지고 싶어 한다. 하지만, 하늘을 날거나, 눈에서 레이저를 쏘는 초능력은 부담스럽다. 그 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공감하는 초능력을 갖고 싶었다. 


 누군가를 닮고 싶다는 것은 내 안에 그 사람의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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