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이 늘어도 삶이 나아지지 않는 이유

돈과 태도 05

by 행간 HanggaN

연봉이 오른 해가 있었다.


적지 않은 인상이었다. 기분이 좋았고, 뭔가 달라질 것 같았다. 더 좋은 곳에서 밥을 먹고, 미뤄뒀던 것들을 하나씩 해결하고, 조금은 여유로워질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처음 몇 달은 그랬다. 먹고 싶은 걸 먹었고, 사고 싶던 걸 샀고, 통장 잔고를 보는 일이 덜 불안했다.


그런데 반년쯤 지나자 이상한 일이 생겼다. 분명히 더 벌고 있는데, 느낌은 예전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카드값은 여전히 빠듯했고, 월말이 되면 또 그 익숙한 답답함이 찾아왔다. 숫자는 커졌는데 감각은 그대로였다. 도대체 어디서 다 새는 건지 한동안 이해가 안 됐다.


나중에야 알았다. 새는 게 아니었다. 기준이 따라 올라간 것이었다.


이걸 경제학에서는 '소득-지출 팽창'이라고 부른다. 수입이 늘면 지출도 함께 늘어나는 경향. 더 좋은 식당, 더 나은 물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일상. 각각은 작은 변화처럼 보이지만 합산하면 수입 증가분을 고스란히 채운다. 결국 남는 건 비슷하다.


문제는 이게 의도적인 낭비가 아니라는 데 있다. 그냥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수입이 늘면 그에 맞는 삶의 수준이 새로운 기준이 되어버린다. 그 기준 아래로 내려가는 건 이제 불편하게 느껴진다. 더 버는데 오히려 내려갈 수 없는 바닥이 높아진 것이다.


주변에 수입이 꽤 되는데도 항상 돈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엔 씀씀이가 헤픈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냥 수입에 맞춰 삶의 규모가 커진 것이다. 더 넓은 집, 더 좋은 차, 더 잦은 여행. 그것들이 어느새 기본값이 되어버린 것이다.


버는 문제를 해결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쓰는 문제가 시작된다. 그리고 쓰는 문제는 버는 문제보다 훨씬 다루기가 까다롭다. 수입은 숫자로 확인이 되지만, 소비는 감각과 욕망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는 수입이 늘면 지출 구조를 먼저 들여다보는 습관을 들였다. 이 증가분을 어디에 쓸 것인지, 아니면 쓰지 않을 것인지를 의식적으로 정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두면, 돈은 항상 어딘가로 사라진다.


수입이 늘어도 삶이 나아지지 않는 건, 더 못 버는 탓이 아니다. 버는 것보다 빠르게 기준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 기준을 내가 정하지 않으면, 삶이 알아서 정한다. 그리고 삶이 정한 기준은 언제나 수입보다 조금 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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