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행간읽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간읽기 Oct 28. 2016

[누들] 개와 돼지의 시간

[행간읽기] 2016. 10. 27. by 누들 




"개와 돼지의 시간" by 누들

1. 이슈 들어가기 & 필진 코멘트


누들 :  2007년 MBC에서 이준기 주연의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드라마를 방영한 적이 있었습니다. 크게 흥행에 성공한 드라마는 아닌 걸로 기억합니다만, 아무튼 제목이 무척 문학적이어서 인상 깊었습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빛과 어둠이 서로 바뀌는 때, 저 멀리 언덕 너머 보이는 것이 개인지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이 혼란스러운 시간을 뜻합니다. 시국이 혼란해도 이렇게 혼란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인 요즘, 저는 이 시간을 개인적으로 ‘개와 돼지의 시간'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개는 말을 잘 듣기로 유명한 동물이고, 돼지는 뭐, 아시다시피, 탐욕스러운 사람을 일컬을 때 자주 비유되곤 하죠. 


너무 많은 개와 돼지, 또 개인지 돼지인지 분간이 안 되는 사람들이 매일 같이 줄줄이 뉴스에 등장하고 있는 이때 홀연히 나타난 신 같은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JTBC입니다. 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언론의 본령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이들의 활약은 실로 대단합니다. 지난 7월 미르·K스포츠 재단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최초로 보도한 TV조선의 공도 역시 빼놓을 수 없고요. 


이러니 이명박 전 대통령의 종편 개국이 임기 중 최고의 치적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가 돼버렸습니다. 이해가 가는 게 지금 SBS, KBS, MBC 등 지상파 3사 보도는 다른 언론사의 기사를 따라가기 급급하기만 할 뿐 별 가치 없어 보이는 기사만 잔뜩이라, 그동안 쌓아온 신뢰도나 위상은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언론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되나 싶어 참담하기도 했고요. JTBC의 활약상은 사실 언론사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이렇게 혼란한 시절, 저는 리더의 중요성을 새삼 느낍니다. 대통령이 어떻게 국가를 망치는지, 권력의 눈치를 보는 언론사 사장들이 어떻게 언론의 본질을 흐려왔는지, 동시에 능력 있는 리더는 같이 일하는 동료를 어떻게 춤추게 하는지 제 눈으로 보고 있으니까요. 


최순실 게이트의 자세한 설명은 이미 많은 분들이 JTBC 뉴스, 혹은 다양한 SNS를 통해 일목요연하게 전달받으셨을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 데다, 제가 그보다 더 자세하고 간결하게 전달해 드릴 자신이 없어 생략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뉴스퀘어를 통해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대신 오늘의 행간읽기는 무능력한 리더 밑에서 신음하고 있는 각 언론사 기자들이 전국언론노동조합을 통해 밝히는 성명서를 발췌해 전달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이 성명서를 훑으며 진실보도를 갈망하는 수많은 언론인들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습니다. 독자분들도 아직 이러한 언론인들이 있다는 사실에 조금이나마 위안받으시고, 또 응원해주시길 바랍니다.


2. 이슈 디테일


1) SBS본부 성명

JTBC 보도를 통해 드러난 대통령 연설문과 청와대 주요 국가기밀의 최순실 사전 유출 관련 내용을 접하며 다시 정신이 아득해졌다. 국가가 국가답지 못했던 이유가 만천하에 폭로된 데 대한 충격이 그 한 축이라면 나머지는 연전연패를 거듭하다 이제는 카운터 펀치를 맞고 그로기 상태에 빠진 우리 보도의 현실 때문이다. 

(...) 사측은 내부의 특별취재팀 구성 요구조차 묵살하며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다 희대의 국정농단 사건 취재와 보도에 있어 그토록 얕잡아 보던 종편의 보도내용을 손가락 빨며 바라보는 처지로 우리 모두를 전락시키고 말았다. (...) 노동조합은 보도를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사회적 책무가 아니라 사적 이익의 실현을 위한 방패막이로 오남용해 온 사측의 방식이 이제 완전히 파산했음을 분명히 밝힌다. 역사책에 기록될 희대의 국정농단 사건을 앞에 두고 사태의 파장에 대한 잘못된 판단과 끝없는 청와대 눈치보기로 보도를 넘어 사회적 공기로서의 SBS의 위상에 먹칠을 한 책임자들은 먼저 전 구성원 앞에 머리 숙여 사과하라. 그리고 사측은 SBS 보도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바닥부터 파괴해 온 과거의 관행과 혁명적으로 단절할 방안을 진지하게 제시하라. 

[전국언론노동조합/161025] [SBS본부 성명]언론이길 포기한 결과, 이제 만족하는가.


2) 국민일보 성명

참담하다. 오늘 25일자 아침 신문을 펴든 우리는 차마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다. 현직 대통령의 극비 연설문 등 국정 운영 자료가 비선 실세에게 사전에 수시로 전달됐다는 전대미문의 보도로 대한민국이 요동치는 아침, 우리 신문에서는 그 뉴스를 6면 하단에서야 비로소 볼 수 있었다. 경향신문 한겨레신문뿐 아니라 동아일보 중앙일보조차 1면 스트레이트 기사로 JTBC의 ‘최순실 연설문 사전 유출’ 보도를 인용 보도했다. 조선일보 역시 2면 전체를 털어 이 문제를 다뤘다. 24일 야근 편집국 회의 때 이 사안이 보고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런 식으로 처리했다는 사실을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다. 어쩌다가 국민일보가 이 지경까지 왔나. 지난달부터 편집국에서는 정치부와 사회부 등에서 특별취재팀을 꾸려 최순실 게이트에 대응해야 한다는 건의가 잇따랐다. 그럼에도 박현동 편집국장은 특별취재팀을 꾸리지 않아도 다룰 수 있다며 수차례 건의를 묵살했다. (...) 대한민국의 처참한 현실만큼이나 한심하고 부끄러운 국민일보 편집국의 민낯이 드러났다는데 우리는 참담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이해할 수 없는 이번 사태에 대해 편집국 수장으로서 편집국장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전국언론노동조합/161026] [국민일보 씨티에스지부 성명서] 우리는 오늘 아침 신문이 부끄럽다 참담하다.


3) YTN 성명

이들 사안에 대한 지금까지의 YTN의 보도 태도는 납득하기 어렵다. 각종 의혹에 대해 YTN이 새로운 사실을 파헤치거나 자체적으로 검증한 보도는 전혀 없다. '좋은 콘텐츠는 타사 보도라도 신속히 인용하자'던 보도국 간부들은, 유독 최순실 의혹과 관련해서는 타사에서 어떤 단독 기사가 나와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제기된 의혹은 보도하지 않고, 그에 대한 청와대의 해명을 먼저 쓴다. (...) 의혹 규명에 YTN이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현장 기자들은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이번 의혹은 YTN이 눈을 감는다고 해서 유야무야될 사안이 아니다. 대통령의 비선 실세가 관련된 권력형 비리 의혹을 취재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권력을 감시해야 할 언론의 당연한 사명이다. (...) 이미 많이 늦었다. 하지만 아직 취재를 기다리는 의혹은 많이 남아있다. 지금처럼 손을 놓고 있다가는, 나중에는 취재 흐름을 따라잡고 싶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그리고 역사는 이번 의혹의 진실 규명에서 YTN은 아무런 존재가치가 없었다고 평가할 것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161026] [YTN지부] 최순실 관련 의혹 보도,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다


4) KBS 성명

이 참혹한 기분은 단지 최순실 개인이 청와대와 국정을 농락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언론사로서, 공영방송으로서, 그리고 한 때 가장 신뢰받고 영향력이 있는 뉴스를 만들었다는 KBS의 구성원으로서 이 희대의 사건 앞에서 KBS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존재로 떨어졌음을 직접 우리의 두 눈과 귀로 확인해야 하는 현실이 우리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 ‘최순실’ 이름이 처음 언론에 거론된 지난 9월20일, 보도 편집회의에 실무자 대표로 참석한 기자협회장이 왜 이 문제를 뉴스로 다룰지 의논조차 하지 않느냐는 항의에 정지환 보도국장 등은 "최순실이 대통령 측근이야? 측근이 맞나? 뭐가 맞다는 거지? 알려져 있다는데 어떻게 측근이라고 장담할 수 있나?"라며 묵살했다. (...) 이제 됐다. KBS는 저잣거리의 안주로 전락했고, KBS 기자들은 손가락만 빨며 종편 기자들에게 귀동냥해야 하는 참담한 현실임에도 그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 이와 함께 우리는 기자와 PD등 조합원이자 KBS 구성원들에게도 촉구한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우리가 정말 공영방송 언론인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자기검열에 빠져 안주하고 있지는 않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자! 그리고 제작 현장에서부터 당당하게 요구하고 싸워나가자!

[전국언론노동조합/161026] [KBS본부] KBS의 참담한 추락, 누가 어떻게 책임질 건가?


5) MBC 성명

지난 한 달 동안 MBC뉴스데스크는 최순실 관련 의혹을 철저히 외면했다. ‘최순실이 누구인가?’,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은 무슨 관계인가?’,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와 같은 가장 기초적인 궁금증조차 풀어주지 않았다. 기획 기사 단 한번이 없었고, 우리만의 취재는 전무했다. 모조리 정치 공방으로 몰아넣었다. 공방마저도 의혹의 실체를 알 수 없게 보도했다. ‘최순실’이란 이름마저 최대한 감추려 노력했다. 단순한 물 타기나 무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국정농단 사태를 은폐하는데 공영방송 MBC의 대표 뉴스는 사실상 청와대와 공조했다. (...) 불과 한 달 전 대통령은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이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고 했다. 뉴스데스크는 충실히 받아썼다. 며칠 전 대통령은 ‘도를 지나친 인신공격성 논란’이라며 자신의 순수성을 강조했다. 이 역시 받아썼다. 거짓말, 거짓 연기로 드러났다. 그러나 뉴스데스크는 묻지 않았다. 거짓 사과 역시 또다시 그대로 받아썼다. 오로지 받아쓰기, 청와대 방송이다. 기자로서 가져야 할, 언론사라면 가져야 할 기본적 의문은 없었다. MBC뉴스에서 궁금증은 실종됐다. 질문은 사라졌다. 국민들의 목소리엔 관신이 없다. (...) 이것이 언론인가. 공영방송사인가. 뉴스데스크는 도대체 왜 존재하는 것인가. 

[전국언론노동조합문화방송본부/161027] 뉴스데스크는 왜 존재하는가




by 누들

breezynodul@gmail.com

행간읽기, 하나만 읽으면 안 됩니다


행간읽기는 '이슈별 프레임 비교'와 '전문 분야 해설', 두 방향으로 행간을 읽는 비영리매체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리앤] 갑작스런 개헌 제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