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색이 없다면

집중호우는 그만

by 한그리 유경미

색깔에 관한 이야기를 쓰는 동안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처럼 무엇이든 너무 많은 것은, 적은 것만 못하다. 색깔을 보더라도 한쪽에 치우치는 것은 편향적이라는 시각을 갖는다. 회색 인간이라는 것도 어쩌면 결정을 못하거나 편을 들지 못한다는 부정적인 의미지만, 나는 중용으로서의 회색을 박수 쳐 주고 싶다. 선택 장애를 가진 나에게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것은 어쩌면 필연적일 수도 있겠다.

너도 옳고, 또 너도 옳다. 빨강이 좋지만, 파랑도 좋고, 녹색도 좋다. 보라색은 특별하고 노란색은 친근하니 무지개색은 얼마나 좋은가. 하얀 백지 상태에서의 마음은 어떨까. 어느 색과도 잘 어울리는 흰색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색깔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색이 없다면 어떨까. 다방면으로 보아야겠지만, 일상생활에서 색이 없다는 것은 흑백사진에서 사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과거에 살았고 있었던 장소를 흑백사진으로 보는 일이 있다. 사람들의 옷과 주변 환경은 특색이 없어지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모양이 아무리 다르고 특이해도 색으로만 낼 수 있는 개성이 있다. 톡톡 튀는 요즘 시대를 어떻게 흑백 처리한단 말인가.

회색 인간일지도 모르는 나에게도 색을 좋아하는 감성이 숨어 있다. 상황에 맞는 색으로 기분전환이 되기도 하며, 삶이 바뀌기도 한다. 봄에는 꽃을 보러 다니느라 빨강이 좋았다가 여름 바다를 만나러 파란색을 좋아하기도 한다. 따스한 병아리 마냥 노란 옷 입고 나들이도 좋고, 분홍색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글 쓰러 가기도 한다. 살아있음을 색깔로 느낀다.

흰 종이에 색연필로 그림을 그린다. 무지개는 필수다. 인생의 어느 날 무슨 일이 생겨도 마음속에 무지개가 나타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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