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꿈
내 어릴 적 꿈은 국어 선생님이었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하나하나 꿈에 담아 문집을 내는 선생님이 좋았습니다. 다른 과목과 달리 ‘마음과 마음’이 통하여 터널을 이루는 것을 흠모했습니다. 홀로 꼭 껴안아 마음을 품어봤지만, 한계에 부딪혀 인생은 나를 다른 길로 인도했습니다.
10년 전 꿈이 있었습니다. 스무 살 당시 해 보지 못한 국문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성적 따라가던 내 인생을 다시금 원하는 길로 가려는 노력이었습니다. 배움이라는 큰 스승 앞에서 저는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새로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삶을 따라가는 인생도 나쁘진 않았습니다만 흐르는 대로 사는 것에서 새 생명이 태어났달까요. 흐르는 냇물에 물이 아니라 뛰어노는 물고기가 되고 싶었습니다.
8년 전 수필이란 장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많이 읽고, 많이 써 보는 일을 해야 실력이 늘 수 있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습니다. 어릴 적 국어 시간에도 그런 말을 어렴풋이 들었던 것 같았습니다. 중국의 문인 구양수가 글을 잘 짓는 비결로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이라 하고, ‘많이 듣고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한다’라는 의미를 배운 적 있습니다. 처음 국어 선생님을 좋아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 배움으로 수필과 놀기 시작했습니다.
7년 전 저는 수필로 등단했습니다. 제가 마흔이 되었을 때입니다. 주변에서는 다들 그랬습니다. 등단을 빨리 한 편이라고. 수필가들의 연령이 많다는 반증이 아니었나 다행이라 생각되면서도 공모전을 통하지 않은 것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어느 정도의 실력이 있어야 등단하는 줄 알았는데, 등단 후에 점차 배워나가는 일이라고 격려해주는 주변의 분들에게 힘을 얻었고, 열심히 글을 썼습니다.
글 쓰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잘 쓰지는 못합니다.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지면이 있다는 것으로,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즐거웠습니다. 다만 글 쓰는 실력 가운데 내면의 깊은 마음속 이야기를 드러내지 못하는 내가 아쉬웠습니다. 수필은 나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어떻게 하면 좀 진실의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수필의 자유로운 형식에 얽매여서 틀에 맞는 글을 쓰는 건 아닐까. 고정된 마음이 조금은 재미가 없어지고 있었습니다.
브런치스토리를 만나서 운명을 느꼈습니다. 2년 전 2023년 브런치스토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글쓰기를 하는 여러 작가님의 글을 접했습니다. 일상이 글이 되는 작가님들을 보면서 자극받았습니다. 다른 형식을 찾고 있던 나에게 다가온 브런치스토리는 나의 글의 방향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조심스럽게 발자국을 찍으며 작가 등록을 했고, 처음으로 내 음식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좁게 한 방향으로만 흐르던 시냇물이 좀 더 넓은 강물을 만난 느낌이었습니다. 수필은 여러 방향으로도 갈 수 있고, 넓은 안목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아직은 책 한 권 내지 못한 수필가입니다. 7년의 시간 동안 보잘 것 없는 수필을 쓰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라 생각했습니다. 껴안은 그 자체로 만족하던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처음으로 타인에게 보여줄 용기가 생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제는 내가 안고만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것 또한 운명이 아닐까 하는 어렴풋한 바람으로 작년부터 노력 중입니다.
꼭 껴안는다고 해서 모두 이루어질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내가 수필을 사랑하는 것만큼 내 실력이 느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너무 좋아서 꼭 껴안고 있다가 안겨있는 수필의 마음을 모른 체 할 수도 있으니까요. 좋아한다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어떻게 해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방도를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너무 껴안아서 잘 모르고 있었나 봅니다. 세심하게 품어주지 못한 나의 실수입니다.
올해는 책을 꼭 내고 싶습니다. 그게 제 꿈입니다. 책을 출간하는 일은 아이를 낳을 때와 같다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아이를 점지할 때와 같이 운명과 노력이 맞닿아 새로운 강물을 만들어 너무 꼭 껴안지 않고 사랑하리라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