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겨울호(아이와나3)
뒷자리에 있는 조금 큰 아이가 앞자리의 작은 아이의 옆구리를 계속 찌른다. 앞자리 아이는 귀찮은 듯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자기 할 일만 몰두한다. 큰 아이는 좀 더 위력적인 팔로 등을 두드린다. 작은 아이는 익숙하다는 듯, “하지 마.” 하면서 쳐다보지도 않는다. 오히려 주변의 아이들이 더욱 이상하게만 바라보고 큰 아이의 다음 행동에 주목하고 있다. 방학동안만 연계형 교실과 돌봄 교실이 합반되었다. 큰 아이는 오빠, 작은 아이는 여동생이다.
며칠이 되어도 오빠의 작당은 계속되었다. 며칠동안 이어지는 모습에 나는, 동생인데 잘 대해주지는 못할망정 왜 자꾸 괴롭히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집에 가면 부모님의 제지로 동생을 못괴롭히니, 학교에서 괴롭히는 거란다.
“집에서만 악마로 변해요.”
사실 여동생이 집에서 잠깐의 방심에 울기라도 했다가는 부모님의 잔소리는 당연스레 오빠의 몫일 터였다. 오빠는 동생을 잘 돌봐야 하는데, 오빠가 되가지고 왜 동생을 괴롭히느냐, 집에서 그러는데 밖에선 오죽하겠느냐는 등 등쌀을 이기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건 그렇지만, 돌봄에서의 내 의무는 어찌하란 말이더냐.
난 오빠가 없다. 언니만 한 명 있다. 차라리 내가 첫째가 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생각한 적은 있다. 그러나 오빠가 없어서 아쉬운 적은 많았다. 듬직한 오빠가 없다는 것이 평생의 한이랄까, 어머니의 건강 상태가 좋지 못하였으므로 그런 말은 꺼내보지도 못했고, 동생도 아니고 오빠라니 당시에는 얼토당토 않는 소리였다.
나의 딸에게는 두 명의 오빠를 만들어주었다. 내가 무슨 아들을 만들고 딸을 지정하여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운이 좋게도 내가 가지지 못한 오빠가 두 명이나 딸에겐 있었다. 딸의 입장에서는 또 반문할 수도 있겠다. 왜 자기는 언니는 안 만들어주고 오빠를 만들어주었느냐고. 그렇다고 한다면 나도 할 말은 없다. 그래도 당시엔 딸 셋이나 아들 셋인 집들이 정말 많았다. 셋째가 아들이어서 우는 동네 엄마를 많이 봤다고. 그렇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이니 딸아.
세 명의 자식이나 낳았지만, 자매를 만들어주지 못한 미안함은 있다. 하지만, 넷을 낳을 수는 없지 않은가. 셋도 남편은 힘들어 했다. 키우는 일이 쉬운 건 아니었다. 막내를 낳고나니 하나 더 낳고 키울 수는 있을 것 같았지만, 남편을 생각하며 참았다. 맞벌이가 아닌 이상 외벌이 살림에 더 이상의 부담은 1, 2, 4가 아닌 1, 4, 8의 수열로 이루어졌다. 형편은 언제나 나아지지 않고 그대로인데다 입은 다섯 개로 늘어났으니 오죽했으랴.
한 동안 ‘현실남매’라는 말을 들었다. 남매에 대한 로망이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요즘 잘 나가고 있는 ‘악뮤’라고 불리는 가수 악동뮤지션은 친남매다. 예전부터 종종 친자매나 친형제, 친남매들이 함께 같은 분야에서 일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의 악뮤처럼 눈에 띄는 모습은 많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 가족은 늘 조심스런 대상이었고, 항상 친하고 편안해 보이는 외형을 하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악뮤는 달랐다.
현실남매 악동뮤지션은 친근하다. 함께 듀엣곡을 부를 때 각자의 개성을 보여준다. 예능형 프로그램에서조차 오빠와 여동생은 각자 생활에 무관심하다. 스타일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다. 사람은 모두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가족에 있어서는 무언가 같아야 한다는 강박을 깨준다고나 할까. 인터뷰 장면에서 오빠가 좋아하는 행동에 동생은 기겁을 한다. 그 모습에 시청자들은 “맞아, 우리 오빠도 저래.”라면서 공감을 한다. 이상적인 남매가 아닌 현실적인 남매를 바라보면서 친근함을 느낀다.
사실 우리는 가족이어도 모두 다르다. 가족이니까 다름을 인정하고 거리두기를 했어야 한다. 얼마 전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에서조차 가족이지만 가족이 가장 잘 모르고 있음을 꼬집었더랬다. 잘 아는 줄 알았던 가족이지만, 알고 보면 남보다도 못한 사람들이 가족일 수도 있다는 씁쓸함을 곱씹게 된다. 걱정할까봐 라는 이름 아래, 가족 이외 모르는 사람과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마음 편히 할 수 있다는 것이 속상하다. 그래서 거리두기를 하며 무심한 듯 비즈니스 관계인 척 씀씀이를 챙겨주는 악뮤의 모습이 더 멋져 보이는 것은 아닐까.
여동생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잘 놀고 있기에 다른 데 잠깐 신경 쓰고 있었더니, 일이 터졌다. 몇 명의 아이들이 편을 가른 채 여동생 아이와 놀지 않았다. 홀로 외롭게 있다 보니 1학년인 아이는 울어 버리고 말았다. 가서 도와주어야 하는가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오빠가 옆에 다가와 앉았다. 머리에 뿔 몇 개가 사라지고 소곤소곤 오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보드게임 같이 할까?”
이 녀석, 더 멋진 오빠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나도 저렇게 잘 놀아주지 못할 것 같은데.
가정은 사회의 첫 걸음을 내딛는 연습이다. 우리가 사회에 나가서 배우고 익혀야 할 기본 습관을 부모는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 그 가운데 형제나 자매, 남매는 가족이지만 어쩔 수 없는 경쟁 관계이기도 하다. 한 명의 엄마와 아빠 사랑을 얻기 위해서 쟁취해나가야 할 산이 상당히 많다. 나이가 많은 오빠, 언니, 누나, 형이라고 해서 양보만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동생이 윗사람의 등쌀에 제 것을 획득하는데도 한계가 있다. 오빠가 많이 가져갔으니, 자신의 것을 미리 챙겨놓는 등의 성격은 그래서 나올지도 모른다.
엄마와 아빠의 입장에서는 자녀가 서로 잘 지내기를 바란다. 실제로 서로 잘 지내는 일은 쉽지 않다. 싸우지 않으면 다행이다. 초등 저학년까지만 해도, 서로 원하는 것이 비슷해서 다툼이 많다. 그러나 그 시기를 지나면서부터는 서로 관심이 없다. 아롱이다롱이라고 아이들은 모두 개성을 가지고 서로의 삶에 이래라저래라 할 시간도 없다. 대신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다른 삶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잘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조금 더 원한다면 틱틱대면서도 밖에 나가서는 서로의 안부라도 물으면 다행이겠다.
어떤 때는 가족이란 가장 친한 사이지만, 가장 먼 사이기도 하다. 가장 가까운 사이라 존중 없는 말로 상처를 내기도 하고, 반대로 서로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일상이야기 말을 안하기도 한다. 허물없이 지내다가 싸우기 딱 좋은 타이밍에 관계가 멀어진다. 별 큰 일이 아니었지만, 조금씩 쌓이고 쌓여서 가시가 된다. 단순히 사회생활하는 사이처럼 대하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이른다.
수필 속 오빠는 본인이 당한 것이 많다고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오빠는 그만큼 부모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았을지 모른다. 여동생은 오빠의 것을 매번 나누어야 했으니 부당하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항상 동생 편을 들어주는 부모님이 계실 것이다. 나만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은 비일비재하고, 어쩔 수 없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서로의 상황에서 단점만을 생각하지 않고, 장점을 더 기억 속에 오래 남기면 좋겠다.
뇌는 안 좋은 일을 더 잘 기억한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우리의 삶에는 행복하고 기쁜 일이 더 많았을텐데, 좋지 않은 일이 머릿속에 더 많이 남아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 같다. 우리는 이미 많은 행복이, 사랑이, 충만함이 가득한 상태일 것이다. 그런데도, 늘 부족하고 단점만 보인다. 쉽지 않겠지만,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를 생각하며 하루를 조금은 더 아늑하게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