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내게 정말 소중한

2022년 봄호(아이와나4)

by 한그리 유경미

“집에 가져가면 엄마가 다 버려요.”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는 교실의 구석 빈 선반에, 만든 것들을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정말 소중하게 만들었지만, 집에서는 쓰레기로 전락해버리다니 슬펐다. 억지로 가져가라고 해보기도 했지만, 교실 밖 어디에서도 보물이 될 수 없었다. 그저 교실 한 귀퉁이에서만 본인 이름표가 붙은 물건들이 자신의 보물로 빛날 뿐이었다.

우리집에는 보물창고가 있다. 거실 장식장 안에 나와 남편의 결혼사진부터 오래 묵은 술, 아이들의 만들기 작품들이 쌓여 있다. 그렇다. 쌓여 있다고 해야 옳은 표현이겠다. 예쁜 진열은 아니다. 아이들은 어린이집 다니기 시작할 무렵부터 장식장 안에 열심히 만들었던 귀중한 보물들을 채워 넣었다. 하지만, 얼마 안가 장식의 기능을 잃기 시작했다. 장식이란 예쁘게 제모습을 갖춰서 보이기 좋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장식물은 물건을 담아두는 상자만도 못하게 되었다. 결국 만들기가 어떤 용도로 만들어왔는지조차 알 리 없는 출처 없는 물건이 생겼다. 내가 보기엔 이미 기능을 잃은 쓰레기에 불과했다. 아이들 역시 무엇을 넣어놨는지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몇 년 동안 그대로 방치한 결과였다. 방치창고는 문을 열기조차 곤란해졌고, 보지도 않아 먼지도 가득 차버렸다.

장식창고가 너무도 보기 싫은 어느 날이었다. 아이들이 없을 때 물건들을 슬쩍 쓰레기통으로 밀어 버렸다. 그러나 문제는 꼭 버린 날 생겼다. 세상 몇 년 동안 찾지도 않았던 물건을 어쩜 그날 그렇게 찾아대는지. 엄마는 어디에 뒀는지 모르겠다며 모르쇠를 일관했다. 너희들이 버리거나 했겠지, 하며 기억을 왜곡시켰다. 한참을 찾던 아이는 포기를 하고는 풀이 죽었다. 오랜 시간 시든 아이의 표정에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다음부터는 아이들의 결정을 믿고 함께 정리하기로 했다.

그 뒤로 장식장은 또 쌓여갔다. 버리는 걸 잘 하지 못하는 나조차도, ‘이건 좀 버려야겠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아이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들이니 어쩔 수없이 장식장 행이었다. 다음번에는 함께 정리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버텼다.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 받아오는 것들은 정말 많았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아이들의 능력을 함양할 수 있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성향을 파악하는데도 물론 도움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의 크기는 한정적이고, 보관할 공간은 언제나 부족하니 옆집을 사서 보물창고로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겠는가.

한계가 온 어느 날, 아이들과 거실에 물건들을 쌓아놓고 모여 앉았다. 이제는 전혀 필요 없는 물건들, 아직도 놓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 물건들을 생각하며 분류를 했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신박한 정리를 하는 마음으로 나는 진행자가 되었다. 아이들이 크면서 생각도 달라지고, 중요한 것도 달라진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애지중지하던 만들기는 어느 틈에 쓰레기통에 담겼다. 이제는 중요하지 않단다. 자신의 사진이 있는 물건에는 선생님이 알려주셨던 추억이 있었다고 설명하고는 간직한단다. 한참 모르고 있었던 물건을 찾아내는 경우도 있었다. 버리고 남기기를 계속하면서 몇 년 간의 추억들이 아이들의 머릿속에 남겨지고 있었다.

어느 정도 장식장은 제 기능을 하기 시작했다. 유리문을 닫으며 아이가 했던 활동들이 어떠한 의미가 되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는 가족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냈고 추억으로 남았음을 깨달았다. 아이의 꿈을 버리지 않는 엄마가 되기 위해 애쓴 결과다. 아이들 셋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시간으로 충분했다. 생각을 함께 나누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너에겐 어떤 의미인지, 또 나에겐 어떤 의미인지 가족은 그런 것들을 함께 나누는 존재다.

어느 날 교실에서 별 만들기가 유행했다. 색종이로 별을 접어줬더니, 관심을 보인 아이가 자기도 접어보겠다며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그리 어렵지 않지만, 얇은 종이 한 장으로 별이 된다는 것에 흥분했다. 여러 가지 색으로 별을 접을 수 있도록 다양한 색종이를 잘랐다. 별처럼 빛나는 색으로 접도록 금색은색 색종이도 구비했다. 일반종이와 다르게 조금 더 어려웠지만, 금색과 은색으로도 그 아이는 별을 꽤 접었다.

아이는 잘 접었다. 열 개가 넘는 별을 담을 곳이 필요했다. 상자 접기로 아이에게 색종이 보물 상자를 만들어주었다. BTS를 좋아한다는 그 아이는 멤버 별로 보물 상자를 만들 기세였다. 다른 아이들도 별을 잘 접곤 했지만, 교실에 물건을 두고 가는 아이는 이 아이가 거의 유일했다. 소중한 보물 상자를 집에 가져갈 수는 없지만, 마음속에 잘 담아서 보관하고 싶어 했다. 아마 교실 안에 공간이 부족해서 더 이상 둘 수 없을 때는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정리를 하면서 무얼 또 보관하고 버려야 할지 결정하는 것은 그 아이의 몫이 되리라. 돌봄 교실 안에서 가족의 마음으로 아이의 뒷모습을 쓰다듬는다.

소중한 게 버려졌던 기억보다 더 많은 마음속의 보물이 아이의 기억에 남겨지기를 바라본다.


초등 저학년까지 아이들이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에서 만들어오는 물건들을 보관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 역시 처음에는 집이 비좁아지며 놓을 곳이 없어서 버리면 좋겠다고 몰래 버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보물이었다. 힘들게 만들었고, 열심히 했는데 엄마는 버리면 어떡하냐며 화를 냈다. 잘 보관해놓지 않았으니 버리는 건 줄 알았다, 진작 잘 정리하지 그랬냐며 나도 맞섰다. 앞으로는 잘 올려놓고 보존할 수 있는 타협안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결국 정해 놓은 장소가 거실의 장식장이었다.

장식장에 소중한 것들만 몇 개 넣고, 나머지는 알아서 정리하게 했다. 본인들이 필요한 것, 남겨야 할 것들을 직접 분류를 하면서 자신들의 과거를 추억하기에 바빴다. 즐거웠던 일, 행복했던 당시의 사건들이 아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내가 직접 겪은 건 아니었지만,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 해온 일들을 재미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모두 모여서 함께 버릴 때의 하루는 지금껏 다시 돌아오지않았다. 많이 큰 아이들은 이야기하면서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돌봄을 다니면서 만들기를 하면, 집으로 가져가지 않겠다고 하는 친구들이 상당 수 있다. 가져가봐야 엄마가 버린다고 좋아하지 않았으니 집에 굳이 둘 필요가 없다. 부모님들도 어차피 버릴 물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때만큼은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주고 인정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아이들 본인 입으로 이쁜 쓰레기는 가져오지 말라고 했다고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그렇게 해봤기 때문에 아이들의 실망이 눈에 선하니 안타깝기만 하다. 어쩌면 보물이라고 생각하고 아끼고 조심히 다루는 물건이 예전보다 많지 않아진 듯하여 조금은 씁쓸하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부터 장식장은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더이상 물건이 늘거나 줄지 않는다. 어쩌면 무관심 속에 타임머신으로 남게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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