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겨울호(아이와나7)
6학년 아이 둘이 6교시가 끝나고 들어온다. 나와 눈이 마주친다. 내가 손가락으로 손 소독 체온계를 가리키며 눈짓하면 코로나로 자연스레 온도 체크를 한다. 돌봄교실의 출석 체크다. 두 명은 바로 간단한 보드게임을 들고 자리에 앉는다. 금방 보드게임 속 카드를 내려놓으며 깔깔대며 소리를 지른다. 무에 그리 좋은지, 나는 다른 아이에게 방해되니 조금만 작게 이야기를 나누라 말하고 지나간다. “예”라고 둘은 우렁차게 대답하지만, 그때뿐이다. 다시 목소리가 커지고 시끌시끌하다. 즐거운 목소리를 제지하는 건 싫지만, 다른 아이들이 대여섯 명이나 더 있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
6학년 두 명만 있을 때가 있다. 다른 아이들이 방과 후 수업을 갔거나 오지 않은 경우다. 그때는 마음 놓고 이야기하도록 둔다. 더 신나서 둥실 떠오르는 목소리가 궁금해 아이들 근처로 가서 슬쩍 엿본다. 사실 아이들이 하는 보드게임은 복잡하지 않다. 의외로 간단한 게임이다. 게임 규칙을 아이들 원하는대로 다양하게 바꾸어 변형된 게임을 즐긴다. 3·4학년들은 “선생님, 같이해요.”라며 나를 끌어들이지만, 저 6학년들은 내가 안중에도 없다. 자기들만의 간단한 세계 속에서 즐거움을 찾고 있다.
6학년이 무슨 돌봄을 하지, 라고 생각을 한 적 있다. 3월 초반에 6학년은 정규수업과 방과 후 수업의 차이가 30분 정도였다. 아이들은 바로 수업 간다고 돌봄에 와서는 온도 체크만 하고 곧장 교실을 나갔다. 오는 의미가 없었다. 신청이 꽉 차 돌봄이 필요한 다른 아이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6학년이면 자기들이 알아서 시간을 보내다가 방과 후 수업을 가도 괜찮으리라는 생각에 씁쓸해지기도 했다.
그러다 방학을 앞두고 둘은 자주 오기 시작했다. 학교의 정규수업 시간이 4교시를 하기도 하는 등 들쭉날쭉 변했다. 다른 곳에서 노는 것보다 좋다나. 시원한 에어컨도 있고, 친구랑 함께 놀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바로 학원으로 가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밖에서 노는 아이들 구경이 쉽지 않다. 특히나 코로나로 거리를 두면서는 더욱 어려워졌다. 우리의 초등학교 시절에는 해가 떠 있는 동안은 온통 밖에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요즘 아이들은 놀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짠해진다.
하나, 어린이는 지금 당장 놀아야 한다.
둘, 어린이는 지금 당장 건강해야 한다.
셋, 어린이는 지금 당장 행복해야 한다.
어린이 해방 선언문이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중 9화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에서 ‘방구뽕’이라는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이 외치는 선언문이다. 드라마 속 어린이들은 학원에서 밤늦도록 공부에 내몰려 있다. ‘방구뽕’은 개명하여 자신을 스스로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이라 자처한다. 밤 10시까지 학원에 갇힌 아이들의 해방을 위해 벌어진 9화는 아이들의 현재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일하러 가는 연계형 돌봄교실인 늘품꿈터는 몇 년 전부터 시행된 초등학교의 고학년 돌봄교실이다. 1,2학년 저학년의 돌봄과는 다르게 자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방과 후 수업이 없는 비어있는 시간에 들어와 아이들은 자유롭게 놀다 간다. 그 시간을 즐겁게 맞이하고 돕는 것이 내 일이다. 가끔 방과 후 수업이 임박할 때 더 놀고 싶어서, 수업에 가기 싫다고 하는 아이들이 있다. 나도 보내기 싫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억지로 겨우 달래 교실을 나서게 한다. 다행히 방과 후 수업 전에 빈 시간을 여기 와 노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큰 의미가 있다. 동시에 그 일을 하는 나에게도 큰 의미가 된다.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은 아니더라도 부사령관 정도는 되지 않을까.
6학년 중 한 명은 교실에 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른 아이들이 노는 걸 바라만 보다 간다. 처음에는 같이 놀까, 하며 말을 걸어보기도 했지만 그조차 필요 없었다. 기나긴 학교 수업을 끝내고 또 방과 후 수업을 듣는 일은 힘이 들지 않을까. 중간에 남는 시간 동안이라도 멍하니 앉아 있는 일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어른들도 온종일 무언가를 하면 피곤하지 않은가. 그래서 무얼 하도록 하는 게 아니라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하기도 한다.
방정환 선생님의 아동 인권선언은 내년이면 100년이 된다. 어린이의 인권 보호와 미래의 주인이 될 어린이들을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을 더 깊게 배우고 싶다.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 돌봄을 하면서 관심을 쏟는다.
지금 당장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보고 싶다. 크게 떠들며 큰 목소리로 하하하 웃는 아이들의 소리가 귓전에 들린다. 밝은 아이들의 목소리가 언제까지나 내 옆에 있을 수 있길 바란다.
에세이포레 연재를 하던 중,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당시 정말 좋아해서 본방송 시청을 꼭 했었다. 9화를 보던 중, 어린이에 대한 이야기에 시선이 갔다. 여러 학교를 다니면서 크게 떠들고 노는 아이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만 같아 마음이 아팠다. 특히, 드라마 속 어린이들은 편의점에서 저녁을 먹고 학원에서 밤10시 넘도록 보내다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귀가한다. 성인도 일을 끝내고 집에 들어가면 얼마나 피곤한가. 아이라고 피곤함은 어른의 일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올해에 야간돌봄까지 일부 확대한다는 뉴스를 본 일이 있다. 아이를 오래 돌봄에 남아있게 하는 것보다 어른들이 빨리 가정으로 돌아가 아이를 돌보는 편이 옳은 방안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하긴 하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부모의 돌봄이다. 부모와의 애착형성과 편안함을 만들 수 있는 건 가정에서 만들어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돌봄이 필요하기는 하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아이들의 해방군 부사령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돌봄 대체근무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