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목소리

2023년 봄호(아이와나8)

by 한그리 유경미

바람을 따라 민들레 홀씨가 날아오른다. 바람결에 소리가 들려온다. 무슨 소리인가 귀 기울여본다. 웅성웅성, 와글와글, 목소리가 전혀 거슬리지 않는다. 편안한 음악을 듣는 것처럼, 순수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산뜻하고 평화롭다.

얼마 전 모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문학경기장 근처를 지날 때였다. 주말 오후 3시쯤이었으니 야구가 진행 중이었나 보다. 치킨을 들고 뛰어가는 커플이 있는가 하면, 아이와 함께 입구를 찾고 있는 이도 있었다. 경기장에 가까울수록 응원의 함성은 내게 큰 파도를 몰고 왔다. 인천 연고인 SSG 팀을 응원하고 있지도 않은데 가슴은 뜨거워졌다. 관중들의 함성이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오른다. 목소리는 기氣를 가져왔다.

그날의 경기는 결국 졌다고 들었다. 하지만 응원하는 순간만큼은 이기고 지는 일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당시 관중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팀을 응원하고 있었는가, 야구팀에게 기氣를 보내 힘이 되었는가가 중요하다. 코로나가 시작될 때 야구장은 무관중경기를 하거나 소규모의 인원을 관중석에 들이며 경기했고, 또는 응원 금지 상태였다. 선수도 관중도 힘든 시기였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이제는 관중 자신의 목소리로 사랑하는 팀을 응원하고 있으니 얼마나 벅차고 뿌듯할 것인가. 코로나 이전의 응원과는 다른 무언가가 가슴 벅차게 하고 있을 터였다.

출근 시간이다. 아이들은 운동장 곳곳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다. 점심시간이구나. 나의 출근 시간은 아이들의 점심시간 중간이다. 공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 여기저기 모여 떠드는 아이들, 무슨 일인지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누비는 몇몇 아이들 목소리가 모두 힘차다. 점심은 든든하게 먹었는지 걱정이 된다. 혹여 적게 먹고 저리 뛰어다니면 오후에는 얼마나 기운이 없을지, 많이 먹었길 바라본다. 바람 따라 아이들의 목소리가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온다. 평화롭다. 행복하다. 감사하다. 아이들의 함성에 나의 기氣도 함께 솟구친다.

어느 아파트 광고를 보면 아이들의 놀이터가 배경이다. 아이들이 시끄럽게 뛰어다니는 일상의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짓는다. 아이들이 노는 소리는 전혀 시끄럽지 않다. 그냥 자연스럽다. 그저 더 재미있게 놀기를 바랄 뿐. 우리 어린 시절에도 가만히 있는 아이들은 더 문제가 있지 않았던가. 뛰는 게 당연하던 그때와 다르게 이제는 바쁜 아이들이 안쓰럽다.

나는 3년째 학교에서 아이들의 목소리를 영양분 삼아 돌봄을 다닌다. 아이들이 시끄러워 교실이 떠나갈 듯해서 조용히 하라고 무섭게 얘기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목소리는 언제나 사랑스럽다. 함께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게임을 하고 들어주면서 친해진 아이들도 많다. 아이들 본인의 부모님과 형제, 친구 이야기부터 집안사를 모두 이야기하느라 쉴 새 없다. 흘려듣고 잘 잊어버리는 나지만 그때만큼은 더욱더 열심히 귀를 기울인다.

간혹 자신의 이야기를 작게 말하기라도 하면 나는 귀를 가까이 되면서 “뭐라고?”라면서 더 열심히 들으려 한다. 처음에는 머뭇거리기도 한다. 더욱 큰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면 당황한다. 조금만 더 크게 이야기해줄래? 선생님이 못 들었어, 라고 말하면 아이는 조금 더 용기를 내고 나에게 말해준다. 매번 선생님이 잘 듣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잘못했다고 하면서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조금 더 잘 듣겠다며 다짐한다.

마스크를 쓰게 된 이후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말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말을 잘하는 사람도 아니면서 어쩌자는 건지 더 어려워졌다. 말을 하면서 소통하고 상대방과 이해하는데, 마스크를 쓰면서부터는 눈빛으로 이야기하게 됐다. 보는 기술이 말하는 기술보다 앞서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말하는 데 있어 마스크는 늘 거추장스럽기만 하다. 큰 목소리를 갖고 나서지 못하니 눈빛이라도 강렬하게 변해야 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을지 모른다.

아이들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다. 논리적인 능력만 뜻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기氣가 있다. 몸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통해 목소리로 발산하는 자체로 힘을 받는다. 아이들의 힘과 기氣가 나에게 전해지는 것 같은 느낌은 코로나 이후 더 세게 느끼곤 한다. 비록 마스크로 가려져 있는 상황이어도 자신들의 생각과 느낌을 말로 표현하지 않는다면 잘 알아듣지 못한다.

어떠한 목소리든 귀를 기울여야 한다. 목소리에서 상대방의 깊은 울림이 나오기 때문이다. 결국 아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이는 나에게 말하고 싶은 것들을 최선을 다해서 말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쉬지 않고 떠드는 것에 귀 기울여야 한다.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끝없이 많다는 것을 알아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목소리로 인정받길 원하고 있다. 그래서 아직 멀었지만, 나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귀 기울여 들을 준비를 하고 있다. 함께 놀아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귀 기울인 목소리가 아이들에게 희망이 된다. 희망이 바람 타고 함성이 되어 민들레 홀씨처럼 크게 퍼져나간다.


코로나 시기의 마스크는 입을 사라지게 했다. 말하지 않아야 할 것만 같았고, 얼굴도 무표정으로 변하고 말았다. 3년의 시간은 사람들의 관계를 잊고 살도록 만들었다. 지금도 마스크를 쓰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감기나 그 밖의 건강을 위해 쓰기도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표정을, 나를 드러내지 않고자 쓰는 경우도 있다. 드러내지 않는 익명의 사회로 가속화시키는 결과가 되지 않았을까.

나는 말하는 것보다 쓰는 것이 더 편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코로나 시절의 나는 답답한 걸 못 참는 사람이었다. 최근에도 독감이나 감기에 걸려서 마스크를 많이 쓰기도 하는데, 나는 손을 잘 씻으면 될 거라는 생각으로 마스크를 쓰지 않으려 한다. 마스크로 입을 닫으면 어쩐지 말을 못하는 깡통로봇이 되어버릴 것만 같아서. 쓰는 글은 글대로, 입으로 하는 말은 말대로 차이가 있겠지만 시간차가 있다. 말하는 걸 주저하면서도 마스크는 숨조차 쉴 수 없도록 막아버리는 숨막힘이 있었다.

사람들의 말에는 힘이 있다. 기氣가 있다. 앞의 글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기를 받으면서 학교를 다녔다.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조금은 더 밝아지는 것 같고, 자신감이 조금 더 생기는 것 같다. 아이들의 목소리에 미래를 느낀다. 가끔 아이들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때가 있지만, 절대로 그런 시대는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일한다.

아이들을 보며 배우는 연재를 통해 나의 글은 모르는 사이 키가 커가고 있다. '아이와 나' 연재는 이번이 마지막이지만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와 나의 생각은 끝이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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