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여름호
그런 날이 있다. 모든 것을 다 집어치우고 리셋 되고 싶은 날. 지금의 시간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조금 더 원하는 것이 필요할 뿐. 별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욕심 없이 그냥 편안하게 살면 될 것을, 왜 굳이 건드려서 일부러 힘들어하느냐고. 일상의 패턴을 바꾸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패턴 속에서 무력감을 느낀다거나 나 자신이 작아지다 못해 소멸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면 바꾸어야 하는 게 맞는 일이 아닐까.
생활용품점에서 수납 바구니 두 개를 사 왔다. 기다란 반투명의 싱크대용 바구니다. 어느 날부턴가 싱크대 하부 장의 내용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냄비의 위치라던가, 그릇의 크기, 조미료의 정리방식이 불규칙하고 비효율적이었다. 귀찮은 생각에 그냥저냥 사용하고 있었다. 부엌을 수리하면서 정리하고 걷어낸 것도 벌써 4년이 지나간다. 그새 다시 사서 채워놓은 것도 있고, 불필요한 물건도 제법 많아졌다.
갑작스레 정리하고 싶어졌다. 모든 것을 손댈 수는 없다. 그저 조미료 부분만 급한 대로 손봐야겠다. 부엌이 좁아서인지 싱크대 아래에는 넣을 곳이 많지 않다. 그런데도 간장병이나 식초, 액젓, 설탕 등 부피가 좀 있는 통은 싱크대 위쪽에 놓을 수 없었다. 싱크대를 수리하고 나서 잘 사용하겠다는 요량으로 2단 레일 바구니를 구매했다. 그런데 예상보다 효율적이지 않았다. 1.5리터는 되는 간장병이 문제였다. 레일 아래쪽에 넣자니 높이가 맞지 않아 들어가질 않았다. 작은 병으로 옮겨 담아 사용해 보았지만, 나의 귀차니즘은 어쩔 수 없이 늘어놓게 되었다.
개수대 아래 선반에 여러 병이 입주했다. 간장병은 물론이고 식초, 액젓, 맛술까지 커다란 통은 다양한 냄비뚜껑의 생존을 위협했다. 이런 방식은 이제 안 된다. 늘어놓기만 하는 지금의 습관을 고쳐야 한다. 양념 칸을 손봐야 했다. 커다란 통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한 공간에 모으려고 바구니를 구매했다. 바구니를 사서 넣는다고 정리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 살림살이를 정리하고 싶어진다. 이력서를 쓴 지 6개월이 넘어간다. 절대 될 리 없는 곳에 이력서를 넣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아니면 나의 실력이 부족해서일까, 이 나이 될 때까지 뭐 하며 살았나, 자존감은 바닥을 배회하기 시작한다. 컴퓨터 자격증이 없어서 떨어지나 싶어 컴퓨터활용능력 시험도 보러 다녔다. 필기시험을 책 한 권 사서 관련 동영상을 열심히 보고 시험을 봤다. 그리 어렵지 않다고 도전해보라는 블로그와 영상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탈락, 탈락, 또 탈락. 삼세번이라고 세 번 떨어지고 나니 그냥 때려치웠다. 내게 컴퓨터 자격증은 아닌가 싶었다.
그러던 중 아들이 운전면허 주행시험을 네 번 탈락해왔다. 우울한데 아들의 우울한 표정과 마음이 안쓰러웠다. 달래줘야 부모지, 괜찮다며 다독였다. 하루 이틀 지나고 아들에게, 돈이 아까워서 붙어야 하지 않겠냐며 한 번 더 할 것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일주일 후 뛰어오는 아들의 발걸음에서 합격의 기운을 느꼈다. 신나게 인천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왔다. 여러 번 실패한 만큼 기쁨은 그만큼 크지 않느냐며 축하해주었다. 아이들에게는 그래도 더 해보라고 한 것처럼 스멀스멀 내 마음속에 다시 해볼까 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연계형 돌봄은 여전히 즐겁다. 아이들을 기다리면서 함께 놀 생각에 교실 청소와 정리가 하나도 힘들지 않다. 다만 학기 초에 신청했던 아이들이 일정이 맞지 않는다며 우르르 취소해나갔다.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삭제된 아이들의 이름이 출석부에서 내 마음에서 지워진다. 학업에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위로해줄 수 있는 공간이 더 좋아지고 확장되었지만, 연계형 돌봄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학생들이 여전히 많다. 놀 수 있는 공간이 알려지지 않아 속상하다.
그래도 또 이력서를 썼다. 떨어질 줄 알면서도, 경쟁률이 높은 것을 알면서도 수정하고 또 수정해 이메일을 보내고, 학교를 찾아가고, 기관에 방문해 서류뭉치를 낸다. 현재 두 개의 1차 서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남편의 일이 없을 때면 이제 나도 더 나은 곳에서 맞벌이를 해야 하지 않을까, 남편도 내가 일하기를 기대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잠이 오지 않는다. 농담으로라도 출근하지 않는 남편이 나에게 “돈 많이 벌어와.”라고 말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현타가 온다. 4시간 일하며 최저시급밖에 안 되는데 어떻게 돈을 많이 벌어오누. 그냥 인사말이라고 치부하며 웃으며 집을 나서지만 가느다란 가시가 가슴에 꽂힌다. 나도 도움이 되고 싶다고.
바구니를 들었다. 온갖 양념 도구들을 모조리 꺼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요리를 한다고 이리도 많은 통과 병이 가득한지 의구심이 몰려온다. 가끔 요리하려고 주방에 들어오는 남편이 치우라고 하는 가벼운 말 한마디에도 무게감이 느껴진다. 내가 잘 하는 것인가, 살림도 잘하지 못하면서 직장을 알아보고 다니는 것은 또 다른 비수가 되어 날아든다. 네 시간 일이나 잘하지 뭘 그렇게 하려고 하느냐고. 나도 경험 있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고, 너 때문에 일도 못 하고 결혼한 내가 한심할 때가 있다고, 남편에게 당당한 아내가 되고 싶다고.
합격 발표 문자가 나의 리셋을 도와줄 텐데, 일주일을 어찌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다. 정리하면서도 정리가 되지 않는다. 무거운 누름돌이 마음 한편에 들어앉는다.
정리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다. 그런데, 정리하고 싶은 날이 있다니 얼마나 지저분하고 불편한 것일까. 사람마다 정리하는 방식도 다르다. 깨끗하지 않아 보이지만, 나름대로의 배열 규칙이 있다. 두던 장소에 두어야 하는 뭔가 편집증적 기질이 있는 경우도 있다. 남편은 버리라고 하는데, 나는 언젠가 쓸 수 있을 것만 같아 두면 결국엔 쓰지 않고 버린다. 버려야 깨끗해지는 건 옳은 말 같다. 버려야 빈 자리가 생겨 깨끗해진다.
그러나 사람은 늘 채우고 싶어한다. 빈 자리를 쉽게 용납하지 못한다. 다른 방식으로 무언가를 채우고 또 버리고 또 산다. 마음이 허하다고 해야 할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작년에 우리집은 절간이었다. 첫째 아들이 군대를 갔을 때만 해도 집은 썰렁했다. 특히 작년은 게다가 둘째가 대학을 들어가 타지역에 있는 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했고, 막내는 학교생활이 너무 늦게 끝나 저녁엔 남편과 둘이 거실에서 조용히 티비 앞에 앉아 있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다시 시끌벅적해진 요즘이 삼시세끼 차리는 건 힘들어도 기분이 좋다.
여담이지만, 아들이 운전면허를 따고 난 이후 너무 아쉬워서 복지관에서 하는 컴퓨터 활용능력 수업을 듣고 2급을 땄다. 물론 어려웠다. 그러나 포기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엔 해내야 함을 어필하며 나를 자극시키니 어쨌든 해냈다. 여전히 돌봄교실로 가기 위한 도전은 계속 되고 있고, 수필은 계속 쓰고 있다. 꾸준히 하면 뭐라도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아이들과 딱 붙어 있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