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똥꼬는 힘이 좋아, 암만 봐도 힘이 좋아
우리 큰아이가 가장 좋아했던 노래다.
가사만 보면 거부감이 들지 모르지만 의외로 경쾌한 리듬 덕분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노래라고 했다. 이 노래를 틀어놓고 두 아이가 어찌나 신나게 춤을 추는지, 나도 덩달아 노래에 대한 호감이 상승할 정도였다.
만약에 화장실 가는 일이, 이 노래의 가사대로 똥꼬의 힘에 좌우된다면 우리 큰아이의 똥꼬 힘은 우리 집 최강일 것이다.
큰아이의 화장실 3단계는 다음과 같다. 바지를 내리면서 화장실로 뛰어가는 것이 1단계, 변기에 앉는 소리가 나는 것이 2단계, 그리고 거의 3초 후에 물 내리는 소리가 나는 것이 3단계이다. 너무 신속하게 일을 치르니 결과물이 시원치 않을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 큰아이의 똥자루는 내가 본 어떤 것보다 최고니까. 아마 잘 먹고, 물도 많이 마시고, 많이 움직이는 건강한 체질이 그 원인인 것 같다. 그래서 큰아이는 잘 아프지도 않고, 아프더라도 오래가지 않는다. 금세 식욕이 돌아오고, 식욕이 돌아오면 아픈 것도 금세 낫는다.
반면 우리 집에 하얀 피부를 가진 작은 어린이는 배변 생활이 원활하지 않다. 아기 때부터 매일 응가를 목격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고, 며칠에 한 번 결과물을 내놓기 때문에 아이가 응가를 할 때는 모든 가족들이 응원하는 것이 흔한 일이 되었다. 요사이는 그래도 이틀에 한 번은 결과물을 내놓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삼사일에 한 번 응가를 하는 일이 많았다. 그렇게 오래도록 변을 장에 쌓아두니, 변은 수분이 빠지기 마련이고 아이는 오랜 시간을 땀을 뻘뻘 흘리며 노력을 해야 했고, 가끔은 통증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래서 아내는 일부러 맨밥만 먹는 아이에게 일부러 과일이며 채소를 먹이려고 노력했다. 온 가족이 유산균을 먹기 시작한 것도 둘째 아이 덕분이었다.
랑카위에서 모두가 행복했던 투어를 마치고, 저녁식사를 해야 할 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당연한 듯 숙소 가까이에 있는 현지 식당에 가서 음식을 포장해 왔다.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들의 손에 '난'을 하나씩 들려주었을 때, 아내의 얼굴이 아주 미묘하게 변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아내가 오전 드라이브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먹고 싶은 시푸드 식당이 있는데, 쿠아 타운에 있어서 너무 멀다고 했었는데, 그때는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와 운전에 집중하느라 무심코 넘겼던 것이었다.
맛있고, 구미가 당기는 것.
아내에게 뭘 먹을지 물어보면 아내가 가장 많이 대답하는 말이었다. 사실 묻는 입장에서는 난해하기 이를 데 없는 답이지만 그만큼 아내는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더군다나 랑카위에 온 이후로 아내는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것만 찾았으므로 더욱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표현할 수 없었다.
아내의 미묘한 표정 변화가 묵직하게 가슴을 눌러왔다. 그래서 나는 아주 가벼운 말투로 '가자'라고 말했다. 이미 쿠아 타운에, 물론 경찰서였지만, 가본 적이 있고 길도 알고 있으니 가보자고 이야기한 것이다. 물론 이미 주변은 완전 어두워졌고, 지금 출발하면 아이들이 잘 시간을 훨씬 넘겨 돌아오게 되겠지만, 하루 정도는 아이들이 우리에게 맞춰줄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머뭇거리는 아내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차리던 음식은 아침에 먹어도 된다고 아내를 안심시키며 모두 냉장고에 넣고, 사온 와인도 곱게 한쪽에 다시 두었다. 재빠르게 아이들 신발을 신기고, 차에 태웠다. 아내는 차가 출발할 때까지도 실감이 안나는 얼굴이었다. 우리는 랑카위에서 마지막 밤에야 비로소 유명한 맛집 탐방을 떠나게 된 것이었다.
우리는 안전벨트를 단단히 하고, 아이들은 노래를 큰소리로 불렀다. 삼십 분이 되기 전에 식당에 도착했고, 아내는 마치 가 본 적 있는 것처럼 내가 주차하는 동안 주문을 마쳤다. 미리 식당에 대해 알아보았을 아내의 마음이 느껴져서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식당은 넓었고,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안심이 되었다. 직원들은 친절했고, 한국어로 농담까지 했으며 음식은 저렴하고 맛있었다. 아내는 한껏 즐거워져서 온 김에 독수리 광장에도 가고 싶어 했다. 아이들은 이미 잘 시간이었지만, 이미 늦었다면 더 늦는다고 아무 문제는 없었다.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오늘은 아내를 위한 일정이었다. 독수리 광장에 사람은 많이 없었다. 아이들이 독수리가 아니고 오리 같다고 놀리기는 했지만, 밤 풍경은 아름다웠고, 많이 덥지도 않았다. 운전해서 돌아오는 길은 쾌적했으며 아이들은 즐거웠다. 숙소에 도착해서 큰아이는 씻으러 들어가고, 나는 한편에 두었던 와인을 꺼내 한 모금 마시는데, 그 순간까지도 우리는 너무 행복했고, 하루가 너무 완벽한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둘째 아이가 땀을 흘리며 기저귀에 응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작은 아이가 4일째, 변을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땀을 흘리며 내기 시작한 작은 아이의 신음은 곧 울음소리로 바뀌었다. 변이 나오면서 통증을 유발한 것이다. 배가 너무 아픈데, 변을 볼 수도 없는 모순이 작은 아이의 울음소리와 뒤섞여 나왔다. 아이는 땀과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쓰려졌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아이를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재빨리 아이를 데리고 목욕탕으로 갔다. 뜨거운 물을 틀어 아이의 엉덩이에 뿌리며 배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병원을 검색했지만 랑카위에 그것도 늦은 시간에 영업을 하는 병원은 없었다. 아니 병원 자체가 없었다. 나는 운전을 해서 영업하고 있는 큰 마트로 갔다. 그리고 도움이 되는 약이 있을까 짧은 영어와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가며 묻고 물었지만 성분을 잘 알 수 없는 중국 약뿐이었기에 빈 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아이는 한 시간째 울면서 욕실에 있었고, 아내는 지치지도 않고 아이의 배를 문지르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한 시간이 넘게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어야 했다. 아이는 결국 배변에 성공했고, 조약돌처럼 단단한 응가를 보며 우리는 반성, 또 반성을 했다. 그날 밤, 아이들은 망고를 잔뜩 먹고 잠이 들었다. 냉장고에는 다음날 아침에 먹을 망고도 잔뜩 들어있었다.
그렇게 완벽한 것 같던 하루는 아이의 눈물 속에 마무리되었다. 아이들은 자정이 다 되어서야 잠들었고, 아이들을 재워놓고 이야기하려고 했던 우리의 계획은 무산되었다. 아내는 작은아이를 문지르고 씻기고 보살피느라 아이들과 함께 잠들었다. 그리고 나는 혼자 앉아서 낮에 사 두었던 와인을 개봉했다.
작은 아이는 너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잠들어 있었다. 아마 태어나서 가장 많이 운 날이 아니었을까. 큰아이는 피곤한지 완전히 넋을 놓은 얼굴로 잠들어 있었고, 아내도 큰아이와 비슷한 얼굴, 비슷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었다. 나는 혼자 식탁에 앉아, 지난 4박 5일 동안 찍은 사진을 보며 와인 한 병을 다 비우고 작은 아이 곁에 누웠다. 자는 얼굴이 안쓰러워서 얼굴을 쓸어주니 작은 아이는 아직 울음 끝이 남은 듯한 소리를 내었다.
말레이시아의 제주도라 불리는, 랑카위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