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진정으로 그리워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멀리 이사를 온 후, 큰아이는 자주 예전에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아이 입장에서는 인생 대부분을 보낸 곳에서 갑자기 떠나왔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면서도 아이의 그리움이 진심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조금 건성으로 받아주기도 했고,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괜찮아질 거야라며 어설픈 해결방법을 제시하며 무심하게 넘기곤 했는데 아내의 태도는 나와는 달랐다.
아내는 해결방법을 제시하지 않았다. 아이의 사소한 감정표현까지도 그대로 받아들여줄 뿐이었다. 정말 신기했던 것은 아이의 감정에 더하지도 덜지도 않고 그대로 받아주고 인정해주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눈물 흘리는 아이에게 울어도 괜찮다고 눈물이 멈출 때까지 안아주는 모습은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아이의 모습은 오히려 어른들의 과장된 그리움의 표현보다 정확하고 진솔한 것이다. 그리움을 표현하는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아이의 감정을 수용하지 못하고 서둘러 결론을 내려고 한 나에게 있는 것. 왜 아이들의 표현을 진지하게 받아주지 못할까. 왜 아이의 감정이 '진짜'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할까.
말레이시아 랑카위에서 쿠알라룸푸르로 이동한 날, 우리는 정말 오랜만에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시내를 구경할 수 있었다. 한 시간이 못 되는 비행시간은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아니었고, 공항에서 시내로 이동하는 시간 동안 아이들과 아내는 잠에 빠졌다. 숙소에서 방을 교환해야 하는 일이 잠시 있었지만, 아이들은 쉬었고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트윈타워가 있는 시내로 이동했다. 차는 막혔고, 아이들은 지루했지만 큰아이와 아내는 꼭 한 가지 공동의 목표를 향해 단결했다.
우리는 여행기간 내내, 현지식을 먹었다. 작은 아이는 어차피 맨밥을 먹었기 때문에 쌀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적으로 식사에 변함이 없었다. 나는 원래 우리 딸의 말에 의하면 '심한 잡식성'이었기 때문에 현지식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하지만 그리움의 상징인 여성팀 두 분은 언젠가부터 김치를 몹시도 그리워하고 계셨다. 김치볶음밥을 외치는 아이를 달래고 달래서 시내로 진입하고 환전을 마치자마자 우리는 푸드코트로 향했다. 실은 더 맛있는 현지식을 먹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김치볶음밥을 외치는 두 분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서 차마 입을 열 수 없었고, 결국 한식집을 찾아낸 두 사람은 김치볶음밥과 비빔밥을 주문하러 달려갔고, 나는 작은 아이를 목마 태우고 고기가 들어있는 음식 아무거나 사러 갔다.
어머니는 김치를 큼지막하게 썰어서 식용유에 볶은 다음, 밥을 넣으셨다. 어머니가 만든 김치볶음밥은 늘 기름이 많았고, 매콤했다. 다른 재료는 넣지 않고 김치와 밥만 넣어도 맛있었다. 어머니가 만든 김치는 훌륭했고, 그래서 김치가 들어간 모든 요리도 훌륭했다.
하지만 사실 나는 김치볶음밥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김밥 대신 김치볶음밥을 싸주곤 하셨다. 아주 어린 시절에는 나는 무엇이든 잘 먹지 않았다. 음식을 입안에 넣으면 통 삼켜지지가 않았다. 밥알이 입안을 맴돌기만 할 뿐, 결국 물로 밥을 삼켜야만 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보지 않을 때, 밥을 몰래 동생 밥공기에 덜어놓았는데, 동생은 기특하게도 그걸 다 먹어치워서 완전범죄가 성사되는 경우가 많았다. 밥도 잘 안 넘어가는데 김치나 야채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늘 뭘 비비거나 볶으셨다. 김치나 야채를 먹이기 위한 편법으로. 하지만 학년이 올라가고 나서도 어찌 된 일인지 이런 전통이 계속되었다. 그래서 소풍 등 거의 모든 야외행사에 의례 김치볶음밥을 들고 참가하게 되었다. 특별히 김밥이 그립거나 하지는 않았다. 소풍에 김치볶음밥을 싸오는 학생은 드물었고, 나는 볶음밥 한 수저와 김밥을 교환해서 배가 터지게 점심을 먹을 수 있었으므로, 어머니를 귀찮게 해야 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덕분에 평생 김치볶음밥은 안 먹어도 되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큰아이가 그렇게 자주 김치볶음밥을 먹고 싶어 할 줄은 몰랐다. 내 인생의 김치볶음밥 2장이 펼쳐진 것이다.
큰아이도 나중에 성장해서 아빠를 떠올릴 때, 김치볶음밥이 생각날지도 모른다. 김치를 살짝 씻고 야채와 함께 볶아 매운맛보다는 단맛이 강한 김치볶음밥을. 김치볶음밥 위에 치즈를 올리고 김치를 꼭 따로 식탁에 올리는 나의 모습을. 우리 딸에게 김치볶음밥으로 기억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럼 나는 언제나 달착지근하고, 치즈가 올라가 있어 고소한 아빠로 기억될 것이니까.
주문한 김치볶음밥은 김치볶음밥이 아니었다. 김치 국물 볶음밥 정도랄까. 얼핏 건너보니 요리하시는 분은 현지분이셨고, 한식집에 종업원 중 한국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비빔밥은 훌륭했지만, 큰아이는 슬퍼했다. 볶음밥에는 김치가 없었다.
일주일이 지난 후에,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김치볶음밥과 김치찌개를 조리해야 했다. 김치는 덜 씻었고, 베이컨을 잘게 썰어 넣었다. 양파도 버섯도 잘게 썰었고 정성스럽게 볶았다. 김치찌개는 센 불에 서둘러 끓이고 청양고추도 고춧가루도 듬뿍 넣었다. 아이들은 못 먹겠지만 아내는 행복할 수 있도록. 큰아이는 허겁지겁 김치가 들어간 김치볶음밥을 먹어치웠고, 심지어 둘째 아이도 그랬다. 아내까지도 일체의 대화 없이 김치가 들어간 음식을 해치우는 것을, 나는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우리는 늦은 시간까지 관광을 하고, 숙소에 돌아가 씻고 잠들었다. 자정이 다되어서야 아이들은 잘 수 있었지만 아이들은 힘들어 보이지 않았고, 큰아이는 비록 김치가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김치 국물 볶음밥과 깍두기를 먹을 수 있어서 즐거웠다고 이야기했다. 아내는 씻으러 가고 나와 아이들은 흘러간 옛 노래를 들으며 잠들었다.
내가 나도 모르게 옛 노래를 자꾸 듣는 것도, 큰아이가 예전에 살던 집을 그리워하는 것도 그리고 멀리에서 김치를 그리워하는 것도 분명 진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잠시 그리워하는 마음이 내일 다시 열심히 낯선 곳을 탐험하게 될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나도 가끔은 무엇인가를 그리워해 봐야겠다. 그 그리움이 오늘의 원동력이 되도록.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가 달콤하게 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