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를 돌이켜보면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아찔하다.
아내는 피부가 희다. 연애할 때, 사람이 많은 곳에 가서도 아내를 잃어버리는 일은 없었다. 맑은 날, 약속 장소에서 아내는 늘 빛나 보였고, 아무 근심 없는 얼굴과 천진한 미소가 각자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오랫동안 마음에 남곤 했다. 그건 내가 피부가 검은 편이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그 시절 아내는 지금의 차분하고 신중한 모습과는 다른 아주 순수하고 천진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그건 피부색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가진 마음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큰아이가 태어났을 때, 나는 아이의 피부가 아내 닮기를 바랐다. 아이의 성격이나 외모는 별로 크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유독, 피부만은 아내를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아내의 빛나던 모습으로 아이가 성장했으면 바랐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는 이목구비는 아내를 꼭 닮고, 진한 갈색의 피부는 공교롭게도 나를 닮았다.
지금은 나와 '진갈색 모임'을 만들고 즐거워하는 아이이지만, 유치원에 다닐 때만 해도 늘 '엄마를 닮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었다. 엄마처럼 하얗게 되고 싶다는 말은 내 마음을 아프게도 했고,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생각지도 않게, 아무 바람도 없이 출생한 둘째 아이는 아내의 하얀 피부를 그대로 지니고 태어나고 말았다. 물론 이목구비는 나의 것과 완전 동일한 것으로 장착하고.
어릴 때는 피부색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주변 사람 중 특별하게 희고 맑은 피부를 가진 사람도 없었고, 그런 것을 의식할 만큼 섬세한 감성을 지니고 성장하지도 않았다. 늘 짧게 자른 머리를 하고 시커먼 아이들끼리 하루 종일 돌아다녔다.
그때, 살던 곳은 도시였지만, 도시 같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만들어지고 있는 도시였다. 그래서 시골에 사는 아이들이 산과 들을 헤매고 다니듯, 우리도 막 허물어진 마을의 잔해와 새롭게 지어지고 있는 도시의 흔적을 배경으로 돌아다녔다. 특히 허물고 새롭게 짓는 곳이 많았고, 허물어진 채로 방치되어 있는 곳도 많았다. 그런 잔해 위에서 우리는 감성적이지는 않지만 자유롭게 놀았다. 봄에는 잔해 위로 들꽃이 피어나기도 했고, 여름에는 빗속을 철없이 뛰어다니기도 했으며 가을에는 잔해 위를 날아다니는 수많은 잠자리들을 잡으러 다니기도 했다. 그때 도시는, 아니 나의 도시는 그랬다. 아직은 서울에 제비가 날아다녔고, 겨울에 골목에서 찢어진 장판으로 미끄럼을 타도 위험하지 않았다. 그때, 골목에서 우리는 늘 걸어 다녔고, 다니는 차는 많이 없었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는.
만약 아내의 유난히 희고 맑은 모습이 아니었다면, 큰아이에 대해 바라는 점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큰아이도 엄마가 희고 고운 모습이 아니었다면 부러워하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나름의 장점이 있다. 우리는 햇볕에 강하다.
하얀 그룹은 자외선 차단제를 잊지 않는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여름에 작은 아이의 팔은 늘 붉게 달아올라 있고, 손대지 못할 정도로 통증을 호소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모자와 자외선 차단제를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큰아이와 나는 가끔 자외선 차단제를 잊는다. 그래도 우리는 쉽게 아파하거나, 힘들어하지 않는다. 그냥 검어질 뿐이다. 여름이 지나고 나면 우리의 팔과 다리는 정말 검은색에 가깝게 변하곤 한다. 스타킹을 신은 것처럼 색이 변하지만 잘 벗겨지지도, 아파지지도 않는다. 사실 내 얼굴은 진한 갈색에서 더 이상 색이 돌아오지 않는다. 큰아이에게 자외선 차단제를 발라주는 이유는 나처럼 얼굴색이 돌아오지 않는 경지에 이를까 걱정되어서 이기도 하다. 하지만 잠시 차단제나 모자를 잊고 놀아도 우리는 크게 걱정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딸은 편을 나눌 때, 피부색으로 나누기도 한다. 그럴 때면 기분이 좋다. 큰아이는 더 이상 하얗게 변하고 싶다고 하지 않는다. 현재 자신의 모습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런 아이의 모습을 우리는 좋아한다.
나는 피부색 때문인지 모자가 없다. 어릴 때부터 모자를 쓰지 않았다.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쓰지 않으니 모자를 썼을 때의 답답함을 견디지 못했다. 군대에서 가장 힘든 것은 '모자'를 늘 착용해야 하는 답답함이었다. 그런 나에게 모자가 딱 하나 있다. 모자 전면에 'SUNWAY-lagoon'이라고 적혀 있는 파란색 모자이다. 정말 엄청 광활해서 하루 종일 놀았지만 다 즐기지 못했던 말레이시아의 썬웨이 라군에서 산 모자이다. 생각해보면 그때가 우리 진한 갈색 피부파의 위기 상황이었다.
오전에 그곳에 도착했을 때, 아이들은 흥분에 쌓여있었다. 바다의 짠 물이 아니라, 민물이 그렇게 많이 모여있는 모습을 아이들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즐겁기는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물에 들어가서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물속에서 바라보는 일은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다. 물에 들어가 있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정말 행복해한다. 그것도 산더미 같은 물에 들어가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일은 더욱 그렇다. 물론 구명조끼나 튜브처럼 도구의 도움을 받아야겠지만. 우리 아이들은 물에 대한 두려움이 좀 부족한 아이들이다. 그래서 겨울에도 바닷가에 놀러 가면 서슴없이 바다에 뛰어든다. 몇 번이나 아이들을 끌고 바다 먼 곳으로 데려와도 아이들은 다시 물 가까이로 다가간다. 분명 약속을 했지만 아이들은 물을 가까이서 구경하다가, 물을 만져보다가, 결국에는 물에 뛰어들곤 한다. 우리가 늘 여벌의 옷을 챙겨놓고 있는 이유였다.
그렇데 아이들에게 하루 종일 아무런 제약 없이 물에서 놀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었으니 아이들이 느낀 즐거움은 솔직히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큰 것이었다. 아이들은 오전 내내 물에서 놀았고, 점심을 간단히 먹고 또 놀았으며 둘째 아이는 유모차에서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또 놀았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놀았기 때문에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평소에 볼 수 없는 놀라운 체력을 보여주었고, 우리도 그랬다. 사실 아이들을 낳고 그렇게 오랜 시간 걱정 없이 물에서 놀아본 것은 오랜만이기도 했다. 워터 슬라이드도 탔고, 줄도 길지 않았다. 아이들은 모자도 잘 쓰고 있었고, 중간중간에 자외선 차단제도 잘 바르고 있었다.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문제가 발생한 것은 늦은 오후가 되었을 때였다.
둘째를 재우고 나서 무심코 내 얼굴을 바라본 아내가 깜짝 놀란 것이었다. 잘 붉어지지 않는 내 얼굴이 눈에 띄게 붉어지고 있었다. 나도 몰랐었는데 나중에 보니 열감도 상당히 있어서 화상이 입은 것처럼 따끔따끔 거리기도 했다. 적도의 태양을 우습게 본 것이었다. 사실 챙기는 것도 습관. 아이들을 챙기는 것은 능숙하면서 정작 스스로를 챙기는 것은 완전히 잊은 것이었다. 아내는 서둘러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모자를 구입할 것을 명령하셨다. 그리고 나는 썬웨이 라군 내에 있는 상점에서 모자를 구입했다. 관계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모자는 파란색과 붉은색 딱 두 종류였고, 모양은 특색 있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좀 촌스러웠다고 할까.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아내는 명령을 내리셨고, 피부는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놀이시간은 늘 부족하다. 부모들에게 쉬는 시간이 늘 부족한 것처럼. 우리는 그곳에서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갈 때까지 놀았다. 그리고 기가 막히게도 우리가 샤워실에 도착하지 마자 엄청난 양의 비가 내렸다. 넋을 놓고 구경할 만큼 많이. 아직 씻지 않은 아이들은 빗속에서 놀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우리 아이들은 이미 샤워를 마치고 옷도 갈아입은 상태였다. 빗속을 뛰어다니고 싶은 둘째를 만류해야 했지만, 아이들은 아쉽지 않을 만큼 하루 종일 물에서 놀았고, 다행히 익은 것은 내 피부뿐, 아무런 이상도 아픈 것도 없이 건강하고 행복한 상태였다.
머리카락이 다 마르지 않은 아이들을 데리고 썬웨이 라군을 나섰다. 큰아이는 길고 검은 머리카락을 사방으로 흔들어대며 강아지처럼 뛰어다니고, 작은 아이는 내 품에 안겨 비 온 뒤 풍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아내는 피곤하지만 행복한 얼굴. 아이들이 행복하니 행복한 얼굴이 아니라, 오랜만에 스스로 한껏 즐겁고 행복한 얼굴이다. 유모차를 반납하고 기념품 상점에서 아이들을 멀리 떼어 놓고 보니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아내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붉게 달아오른 피부 때문에 한동안 고생했었다. 겨우 피부가 진정된 다음에는 완전히 검게 변해 버려서 몇 달이 지난 지금에도 원래 색이 다 돌아오지 않고 있다. 얼마 전 큰아이의 머리를 말려주다가 아이의 피부도 아직 원래 색을 찾지 못한 것을 발견했다. 다리는 스타킹 신은 것처럼 되어 있었고, 아이는 별 생각이 없어 보였지만 나는 예전에 엄마의 피부를 부러워했던 아이의 모습이 생각났다. 아무렇지 않은 듯이, 피부에 대해 물었는데 아이는 무심하게 답했다.
난 아빠도 좋아.
내가 큰아이를 좋아하는 만큼, 아이도 스스로를 좋아하면 좋겠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애정으로 늘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아이가 나에게 주는 행복함 이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