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어머니는 내 성적을 알고 싶으셨을 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다. 초등학교 이후로 성적표를 집에 가져간 적이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는 항상 성적표에 부모님 도장을 받아오라고 시키니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부모님 도장을 몰래 찍는 방법도 있기는 했지만, 그것도 해본 사람이 한다고 나는 그런 방법에 소질은 없었던 듯했다.
딱 한 번, 수학경시대회 시험지에 도장을 어머니 몰래 찍었는데, 하루도 못 가서 걸리고 말았다. 아주 많이 혼났는데, 혼난 것 때문에 부정행위를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 심하게 혼나거나 회초리를 맞은 적은 얼마든지 많았다. 차이는 분명했다. 어머니의 도장을 빼돌릴 때는 이것이 '부정한 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도장을 몰래 가지고 시험지에 찍고, 학교로 가져가는 순간에도 그것을 분명히 인정하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심하게 혼났을 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해방감마저 들 정도였으니까. 체벌에 대한 두려움보다 부정한 일에 대한 인식이 더 강했던 것 같다.
사실 시험 자체에 큰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성적이 다소 하락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가족에게조차 허점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후에는 성적도 많이 하락했지만, 어머니는 딱히 성적표를 확인하지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하반신을 움직이지 못하셔서 집에 누워계셨고, 부모님은 많이 바빠지셨다. 특히 어머니가. 그래서 성적확인이 필요할 때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아버지는 항상 별말씀 없이 사인해주시고, '다음에 잘해' 한 마디뿐이셨는데, 아버지는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질책하지 않고, 다만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다행이라고 항상 생각했다.
아내의 경우에는 부모님이 성적에 대한 일체의 언급을 하지 않으셨다. 재미있는 사실은 성적에 대해 언급할수록 부모만 다급 해지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반대로 부모가 성적에 무심할수록 아이가 성적에 예민해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아내는 성적에 예민해지고 있었다. 아무도 자신의 성적을 책임져 주지 않으며,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보통 아이들보다 훨씬 일찍 깨달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아내는 공부를 열심히 했다. 물론 내가 직접 본 것은 아니다. 들었고, 경험했다. 아내는 늘 나보다 많이 공부하고 잘했다. 잘 외우고 성실했다. 아마 학창 시절에도 그랬을 것이다. 필요한 만큼만 하는, 다른 사람이 나를 귀찮게 하지 않을 정도만 하는 나와는 다르다. 아이들이 아내를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쿠알라룸푸르에 수리아 몰에는 과학관이 있다. 아마 아이가 없는 사람들은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는 혹은 아이가 있는 사람들 중에도 관심 없는 사람들도 있는 장소이다. 나도 아내가 여행 일정 중 과학관에 반나절을 배정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귀를 의심했으니까. 하지만 아내의 의지를 확고했고, 이미 예약은 되어있었으므로 반론을 펼 기회는 없었다. 그리고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시원한 곳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도.
하지만 막상 도착한 과학관은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훌륭했다. 에어컨이 너무 세서 추운 것만 제외하면 아이들은 정말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아이들은 과학관에 진입 후 각자 자신이 관심 있어하는 것을 보러 갔다. 큰아이는 여기저기 다니면서 구경했고, 둘째는 태양계 모형 앞을 떠날 줄 몰랐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알려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이들은 스스로 만져보고, 체험하고 있었고 우리는 영어 단어만 재빠르게 검색해서 알려줄 뿐. 그리고 사실 우리가 무엇을 알려준다고 해도 아이들이 귀담아들을 리도 없었다.
친구의 둘째 아들은 5살 때, 영어와 숫자와 문자를 모두 배웠다. 큰아이와 비슷한 또래인 아이는 바둑 실력도 뛰어나고 수학 실력도 이미 초등학교를 넘어선 아이였다. 큰아이 친구 중 영어와 수학을 배우기 위해 학원에 다니는 친구들도 꽤 있었다. 아이들은 매일 한 시간씩 학원에 가서 많은 것을 배우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큰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이미 한글을 읽는 아이들이 정말 많았었다. 그렇게 주변의 아이들이 무엇인가를 배울 때, 우리 아이는 정체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는 별로 조급해하지 않았다. 큰아이가 한글을 본격적으로 배운 것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1개월 전이었다. 우리는 그전까지, 물론 지금도,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것만 시켰다.
무엇보다도 문자 자체를 가르치는 것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 배웠던 것처럼, 문자 자체를 배우다가 다른 무엇인가를 잃는 학생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사실 주로 아내는 아이가 원하는 책을 읽어주고 아이와 계속 이야기만 했다.
처음에는 하루에 책 수 십 권을 읽어도 피곤하지 않았다. 특히 나처럼 놀아주기가 서툰 아빠들의 경우에는 책을 읽어주는 일이 오히려 반갑게 느껴지기도 했다. 여러 캐릭터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것 정도는 큰 일은 아니었다. 물론 구현동화처럼 읽어주는 아내와 비교하면 많이 부족하기는 했지만. 하지만 점차적으로 글밥이 많아짐에 따라 책을 읽어주는 것도 정말 '일'이 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큰아이의 책 수준이 너무 급격하게 높아지는 것도 문제였다. 글밥이 점차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급격하게 늘어나서 한 권만 읽어도 목이 아픈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우리가 아이에게 책 읽어주기를 멈추지 않은 것은 책을 읽는 것도 일종의 놀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독서가 부모와 함께하는 놀이이며 즐거운 행위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아이들이 공부를 잘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실 학원도 다니지 않고, 주구장창 책만 읽어대는 큰아이를 보고 어떻게 그런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나는 아이들이 공부를 '못'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전분야에 골고루 능력을 가져야 하고, 하기 싫은 것도 참고할 수 있는 인내심과 끈기,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재능들은 아이들이 지니기에는 너무 과도한 것처럼 보인다.
어린 시절 나에게 공부는 나를 귀찮게 하는 것들로부터 나를 방어하는 수단이었다. 나를 비난하거나 질책하거나하는 것들로부터 나를 보호해주었다. 성적 자체나 미래를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비겁했고, 겁이 많았다. 필요한 만큼만 노력했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은 노력하지 않았다. 필요한 만큼 방어막을 쳐놓고 내 공간에서 나만 아는 일을 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다른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고, 즐겁게 어울리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하는 일 자체에 최선을 다하는 아이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딱 한 분야라 할지라도 잘하는 분야가 있었으면 좋겠다. 다른 것은 모르겠다.
학습을 도구삼아 살아가는 일은 즐겁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자신이 잘하는 분야에서 즐겁고, 못하는 분야에서의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문자나 글자가 주는 내용보다는 그 내면에 무엇인가를 읽는 아이들이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과학관을 나가지 않았다. 몇 차례 다른 한국 아이들이 지나갔다. 아이들이 폭풍처럼 여러 시설들을 스치고 지나가도 우리 아이들은 거북이처럼 한 곳에 오래 머물렀다. 오전 내내, 그리고 점심시간까지도 아이들은 시설을 떠날 생각하지 않았다. 결국 배고픔을 이기지 못한 우리는 아이들을 밖으로 몰아낼 수밖에 없었다. 배고픈 아이들은 점심을 맛있게 먹고, 다시 신나 졌고 둘째는 낮잠을 큰아이는 수영장에 가기 위해 숙소로 돌아왔다. 창밖의 풍경을 보며 엄마와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즐거워졌다.
만약 교육 열기가 색이 있다면 우리의 교육 열은 작은 아이가 좋아하는 분홍색이 아닐까.
교육의 열기 때문에 서로가 싫어지지 않을 만큼. 딱 그만큼 아름다운 색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