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째 여행일기, 투어.

by 지승유 아빠

나는 쉬는 것이 참 좋다.


아무 생각할 필요가 없고 신경 쓸 것이 아무것도 없는 공간, 그리고 아주 흥미위주의 책 몇 권. 내가 가장 좋아하는 휴가의 모습이다. 그래서 아내와의 여행에도 딱히 관광지를 목표로 삼지는 않았다. 그냥 늦잠 자고, 산책하고 식사하고 하는 평범하지만 절대 평소에는 차분하게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관광을 할 때도 서두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을 계획할 때, 추천 관광코스를 받아보고는 숨이 막힐 것 같은 기분이 된 적이 있었다. 하루에 여러 군데를 폭풍처럼 돌아다니는 추천 코스였는데, 그 코스의 거리와 시간을 보는 것만으로도 더 이상의 추천을 받아보고 싶지 않았다. 하루에 수많은 곳을 다닌 들, 그곳들이 다 기억에 남을 리는 없고, 차에서 내려 사진만 찍는 관광이라면 그 많은 이동거리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우리 집에 살고 있는 두 아이는 조금 특이한 아이들이다.

숲에다가 풀어놓으면 몇 시간이고 땅을 파면서 노는 아이들이고, 다른 사람들은 삼십 분 만에 경기하듯 주파하는 천지연 폭포도 몇 시간이나 걸려 돌아보는 아이들이다. 폭포입구에서부터 지체가 시작되는데, 폭포에 사는 오리 먹이를 무엇을 사야 할지 고르는 것부터 한참이다. 오리 먹이를 주고, 한참 관찰한 다음, 입구에 있는 작은 풀밭을 뛰어다니면 삼십 분은 훌쩍 지나가버린다.

그렇게 한참을 놀아야 비로소 개찰구에 진입할 수 있다. 길가에 보도블록 위로 뛰어오르고, 징검다리도 몇 차례 왕복하고, 길가에 핀 꽃이며 처음 보는 나무들의 이름을 다 체크하고 나면, 폭포에 도착할 수 있다. 폭포 곁에 있는 바위 위에 앉아서 한참 구경을 하고, 식수대에서 장난도 치고 그렇게 관광객들이 몇 차례나 바뀔 때까지도 그 공간을 온통 즐기는 아이들이다. 그래서 여행 계획을 짤 때, 우리는 원칙을 정했다. 관광지는 하루에 1~2개, 반드시 둘째 낮잠, 그리고 충분한 시간. 모처럼 여행을 가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우선할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는 아이들이 그 공간을 충분히 그리고 천천히 즐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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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계획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첫날부터였다.

우리가 원래 계획했던 케이블카, 악어농장, 과일농장, 폭포, 독수리 광장 그리고 맹그로브 투어를 4박 5일의 일정 동안 모두 하려면 최소한 하루에 두 가지는 해야만 했다.

하지만 첫날, 큰아이는 숙소 수영장에서 나오지 않았다. 작은 아이가 낮잠에서 깨어나 수영장에 산책 올 때까지. 우리는 그날 맹그로브 투어를 예약하고 체낭 비치에 가서 장을 봐야 했지만 아이들이 너무 즐거워했기 때문에 아이들을 수영장에서 끌어낼 수가 없었다.

둘째 날 아침에도 아이들은 아침을 먹기도 전에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수영장으로 뛰어들어갔다. 수영을 할 줄 모르는 나는 안전요원으로 강제 입수했는데, 이날 아침 아이들을 보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아이들은 어떤 관광지보다, 관광지에서 사진을 찍는 것보다 수영장에서 노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여행은 분명 누군가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고, 그 대상이 우리 아이들이라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맹그로브 투어를 위해서는 하루 전날 예약했어야 했고, 그 마지막 찬스가 여행 둘째 날이었지만, 이날은 벌금을 내러 먼 길을 다녀와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 날도 숙소 근처에서 보냈다. 이때쯤, 나의 마음속에 투어는 많이 멀어져 있었는데 아이들이 좋아한다면 그냥 수영장과 바다에서 종일 노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투어 예약에 좀 소극적이 되었고, 그러는 사이 우리는 맹그로브 투어를 갈 수 없는 3일 차에 접어들었다.


일주일 간의 신혼여행 때, 우리는 오직 하루만 관광을 했다. 사원도 가보고, 신전도 가보고, 기가 막힌 경치도 구경하고 유명한 맛집에서 식사도 했다. 차를 오래 타야 해서 아내는 힘들어했지만 몹시 즐거워했었다. 태국 피피섬에 갔을 때도 아내는 그 작은 섬을 종일 돌아다녔는데 정말 덥고 힘들었지만 즐거워 보였다. 그래서 나는 솔직히 시원한 곳에서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앉아 있고 싶었지만 아내의 뒤를 따라다녔다. 아내의 뒷모습이 너무 즐거워 보였고, 천진해 보였다. 사실 그때 아내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챙이 큰 모자를 쓰고, 원피스를 입었는데 즐거워하는 모습이 다 커버린 어린아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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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투어를 갈 수 없을 것 같다고 이야기를 건넨 것은 푸드트럭에서 식사를 하고 온 직후였다. 아이들은 숙소 근처에 도마뱀들이 모여있는 곳을 구경하고 들어온 길이었고, 아내는 아이들을 씻길 준비를 막 마친 길이었다. 아내는 쉽게 긍정했는데 순간적으로 서운했던 얼굴이 계속 신경 쓰였다.


나 사실은 투어 많이 기대했었어.


늦은 저녁 아내가 그렇게 이야기했을 때, 얼핏 지나쳤던 서운함의 정체를 알아버렸다. 그리고 즐거움의 대상을 두 아이들로 한정해 버린 나의 무심함을 떠올렸다. 우리 가족 여행에서 즐거움을 느껴야 하는 대상은 아이들만이 아닌 것을 잊었던 것이다. 아내도 나도 여행의 대상이란 것을 떠올렸다.


그리하여 그다음 날 아침 아이들은 수영장 입수를 금지당했다. 아이들은 몹시 슬퍼했지만, 원래 떼를 쓰는 아이들도 아니고, 케이블카를 타게 해 준다는 말에 혹해서 금세 즐거워졌다. 그리고 기상 후, 아침 식사 그리고 바로 차량 탑승이라는 우리 가족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엄청난 속도의 준비가 이루어졌다.


원래의 계획은 그랬다. 우리가 있는 텡아 비치에서 북쪽으로 올라가서 케이블카를 타고 관광을 한 후, 탄중루비치에 가서 바다를 구경하고, 유명한 맛집에서 식사를 한 후, 돌아오는 길에 폭포에 들러서 물에 발을 담그고 오는 일정이었다. 이번 여행 신념에 맞지는 않지만, 오늘은 아내를 중심으로 하는 여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짠 계획이었다. 원래 아내가 원했던 맹그로브 숲 투어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걸 대신할 수 있는 관광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조수석에 탄 순간부터 즐거웠고, 아이들은 엄마가 즐거웠으므로 즐거웠다. 큰아이는 차를 오래 타야 하는 일이 불만이었지만 노래를 부르고 동생과 장난을 치면서 즐거워 보였다. 그리고 나는 운전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떨쳐버린 상태였고 가족 모두가 즐거웠기 때문에 몹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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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계획대로 오리엔탈 빌리지에 도착해 케이블카에 탑승했다. 관광객들이 꽤나 있었지만 줄을 많이 서지는 않아도 되었고, 호주에서 만들었다는 케이블카는 생각보다 정말 높이 올라갔다. 아내는 긴장했지만 아이들은 신이 나서 내가 말릴 때까지 바람에 흔들리는 케이블카 안에서 몸을 흔들었다. 말레이시아 랑카위가 사방에 있었다. 미세먼지도, 황사도 없었고, 큰 건물도 하나 없이 온통 섬과 바다뿐이었다. 아이들도 그런 먼바다를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그렇게 케이블카 탑승은 무사히 끝났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케이블카를 타고 바로 탄중루비치로 이동해야 하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침을 부실하게 먹었고 우리도 그랬다. 그래서 우리는 내려오자마자 눈에 보이는 식당에 들어갔고, 눈에 보이는 메뉴를 아내가 주문했으며 우리는 아내가 시켜주는 대로 음식을 먹었다. 음식 냄새를 맡고 원숭이 몇 마리가 야외 식당 천장을 방문했고, 주인이 원숭이를 쫓는 과정에서 원숭이가 소변을 뿌리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다. 음식에는 소변이 들어가지 않았고, 아이들과 아내도 무사했다.

단지 내 얼굴에만 원숭이 소변이 떨어졌을 뿐이었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식사를 하는 동안, 아내가 케이블카 입장권에 바로 옆에 있는 트릭아트 미술관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알아버린 것이었다. 우리 아이들의 특성상 한 번 들어가면 결코 단시간에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아내가 탄중루에 있는 맛집을 여러 번 이야기한 것이 떠올랐기 때문에 나는 혼자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맛집 대신, 아이들의 즐거움을 선택했다. 아이들은 트릭아트 미술관에서 수 백장의 사진을 찍었고, 오리엔탈 빌리지를 전역을 탐색했으며, 물고기 먹이를 주었고, 곁에 있는 슈퍼맨과 배트맨 그림과도 한참 놀았다. 폭포라도 가야 한다는 간절함에 아이들을 설득했지만 아이들은 요지부동. 겨우 아이들을 달래서 차에 탑승했을 때는 이미 작은 아이가 낮잠을 자야 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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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내를 위한 일정을 포기할 수 없었다. 잠든 아이를 태우고 테 머룬 폭포에 도착. 잠든 아이를 안고 폭포 가는 길에 진입했지만, 건기여서 그런지 폭포에 물이 말라버린 상태였다. 우리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사진을 한 장 찍고 길을 막는 원숭이를 물리치며 숙소로 돌아왔다.


제대로 관광하지 못해서 어떡하지?


둘째를 눕히고 아내에게 말을 건네었는데 아내는 활짝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정말 행복하게 활짝 웃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아주 오래전, 종로에서 귀걸이를 하나 선물한 적이 있었다. 비싼 것도 아니었고, 미리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길을 걸어가다가 문득 아내에게 어울릴 것 같아 즉석에서 선물했는데, 그때 아내의 표정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잠든 둘째 곁에 누워 괜찮다고 말하는 아내의 얼굴이 마치 그때의 얼굴 같아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내는 그랬다. 내가 의미를 부여한답시고 사주었던 싼 시계도, 신혼 때 정말 맛도 없고 볼품도 없었던 저녁 상도, 누구나 한 번쯤 올라가 보는 남산타워도 아내는 늘 고마워했는데. 항상 자신의 위치에서 착하게 만족해주었던 아내는 지금은 자신의 바람과 엄마로서의 마음 사이에서 적당한 교차점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전에 아내는 자기 자신을 몹시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아마 아이들이 성장하면 아내는 다시 스스로를 사랑하고 싶어 질지도 모른다. 아니 사랑하고 싶어 질 것이다. 그때 아내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잊지 않도록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 스스로를 사랑했던 눈부시게 밝던 아내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나 밖에 없으므로.


큰아이는 사정없이 물에 뛰어들었다. 나는 허겁지겁 구명조끼를 들고 물로 들어갔다. 우리 겁 없는 큰아이도 언젠가는 성장할 것이고 언젠가는 엄마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까지 원 없이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게 해 주는 것도 나의 역할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한 것은 스스로를 사랑했던 아내의 곁에 있는 우리 아이들은 분명 스스로와 현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족들 모두의 행복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지금 그들이 가진 행복이 무너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수는 있다는 것이다.


해는 뜨거웠고, 물은 시원했다. 그리고 큰아이와 아내의 얼굴은 날이 갈수록 닮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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