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째 여행일기, 격정의 하루 3.

by 지승유 아빠

사실 랑카위에서 운전하는 것 정말 무서웠어.


아내는 진심으로 놀라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말했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고.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언제나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시키니까.


남자들도, 아니 남자들은 두려움을 느낀다. 남자나 여자나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이겠지만, 두려움을 표출하는 방법은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성장한 대부분의 남자들은 두려움이나 슬픔과 같은 감정을 표현하지 않도록 배운다. 어린 시절부터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무서워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인 것처럼 교육받는다. 이런 교육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 결과로 우리나라의 남자들은 대게 다른 사람에게 감정을 보이는 것을 낯설어한다. 언젠가의 심리 상담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지금의 기분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 왜 그렇게 어려웠던 것일까.


아내와의 결혼생활이 10년째가 되면서 가장 좋아진 것은, 나의 두려움이나 슬픔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다. 내가 감정표현을 하지 않아도,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아도 어떤 때는 나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에도 아내는 나의 감정을 많은 순간 알아버리곤 한다. 처음에는 무엇인가 들켰다는 마음에 쑥스럽기도 했는데, 둘째 아이를 낳고부터는 점차 편하게 나의 기분을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오히려 든든한 기분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번에 '두렵다'라는 말을 꺼내기가 늘 힘들다. 그래도 마음이 든든한 것은 아내가 부여하는 많은 미션 중 대부분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내의 권유대로 이사를 하고, 직장을 옮기고,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글을 쓰고, 인스턴트커피를 줄이고, 저염식을 즐기며, 샐러드를 즐겨먹고, 금연에 성공했다.

그리고 낯선 곳에서 운전을 하라는 아내의 말을 듣고는 다시 두려움에 떨며 준비를 했다. 하지만 벌금을 납부하기 위해 말레이시아 랑카위섬의 쿠아 타운을 다녀와, 다시 텡아 비치까지 돌아올 때는 노래를 부르며 주변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을 정도로 운전을 즐기게 되었다. 결국 아내의 권유는 늘 옳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며, 이렇듯 아내의 권유대로 살면서 나는 삶의 두려움을 하나씩 극복해가고 있었다.

우리는 그날 즐거운 저녁을 먹고 싶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외식을 하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의 가장 어려운 점은 다른 테이블에 폐가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아주 아기인 시절에는 아기가 먹을 음식을 준비해서 나가는 것만으로도 힘들었고, 밥을 먹기 위해서는 아이를 번갈아가면서 돌봐야 했다. 물론 아이에게 동영상을 잠시 보여주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겠지만, 그것은 아내가 추구하는 방향이 아니었고, 그래서 늘 우리는 방이 따로 있는 곳에서 외식을 하거나 포장을 해서 집으로 오는 길을 선택했다. 우아한 식당에서 우아한 옷차림과 행복한 표정으로 교양 있게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는 풍경에는 아이들이 없었다. 그러니 아이들과 즐겁게 식사하기 위해서는 그런 교양이 가득한 식사를 포기해야 했다.


여행을 온 후, 공항에서 먹은 조식도, 랑카위에서 먹은 현지식도 아이들의 영향에 힘입어 무엇을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힘들었다. 딱 한 번 여유 있고 즐거웠던 식사는 숙소에서 포장해온 음식을 먹은 날이었다.

하지만 쿠아 타운에서 돌아온 후, 우리는 아이들이 노는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고, 즐거운 저녁을 먹고 싶었다.

우리는 체낭 비치에 가서 바다를 구경하고, 모래놀이를 하고, 해지는 것을 구경하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화려한 각국의 식당을 뒤로하고 푸드트럭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어마어마하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는 자유로웠고, 아이들을 위협하는 차도 없었다. 아이들은 제각각 흩어져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골랐고, 우리는 큰아이가 먹고 싶다는 수제 햄버거 집 앞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망고주스와 야자열매를 사 오자 아이들은 너무 즐거워졌고, 나는 사테(satay)를 사러 몇 차례 길 아래까지 다녀와야 했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음식을 흘린다고 혼낼 사람도 없었고, 어른들보다 먼저 음식을 먹고 길거리에서 사람 구경을 하고, 국적이 다른 아이들과 대화를 시도해도 위험하다고 혼내는 사람도 없었다. 이미 소란스러운 거리에는 우리 아이들이 큰소리로 떠들어도 시끄럽다고 할 사람이 없었다.

우리는 배가 터지게 먹고, 마음껏 열대과일을 마시고, 서로 간질거리며 장난을 치다가 늦은 시간에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온 길에 우리는 과일가게에 들러 망고를 몇 kg을 샀다. 그리고 아이들은 씻으러 가기 전에 마음껏 얼굴에 망고즙을 바르며 맛있게 망고를 먹었다. 아이들은 내일도 수영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진심으로 놀라고 행복한 얼굴을 하며 씻었다.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는 내내 시끌벅적했고, 샤워를 끝내고 알몸으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잡으러 돌아다녀야 했지만 여행 온 지 3박 만에 우리는 진심으로 행복했다.

아니, 사실 우리 부부가 그랬다. 아이들은 고맙게도 늘 행복하고 즐거웠으므로.


우리는 신혼여행을 발리로 다녀왔다. 둘 다 처음 가는 해외여행이었고, 지금도 그렇지만 영어도 한국 평균에 못 미칠 정도로 못했다. 하지만 그때는 20대였던 아내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사방을 살폈고, 아이처럼 사방에 있는 것들 하나하나에 놀라고 감탄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그런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때의 우리는 하루 종일 걸어 다녀도 피곤하지 않았고, 여행지 어디에든 마음껏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시푸드를 먹으며 현지인이 부르는 '내 사랑 내 곁에'를 들으며 감탄했었고, 걱정할 일이 많았음에도 걱정이 없었다. 늘 감사했었다.

큰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정말 없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태국에 다녀왔는데, 우리는 아직도 피피섬에서 보냈던 며칠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래서 우리는 늘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함께 이곳들을 찾아가자고 이야기하곤 했다. 정말 그곳이 어떤 곳인지를 떠나서 그곳은 나에게 그리고 특히 아내에게 아득히 먼 행복의 장소였고, 소중한 아이들과 다시 가고픈 장소였으니까.

하지만 내가 쿠아 타운으로 출발하기 직전, 아내는 다시는 랑카위에 오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여행은 초반이었지만 아내는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늘 피곤했고, 자신이 가진 경제원칙을 지키기 위해 철저했으며, 그럼에도 여행이 즐겁지 않을까 봐 조급했다. 그리고 내가 체낭 비치를 왕복하고 있을 때, 그런 스트레스는 극에 달해 있었다. 여행은 반드시 즐거움과 행복함만을 주지는 않는다. 아이들은 즐거웠지만 아내는 즐겁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도 그랬다.


하지만 내가 최악이라고 생각했었던, 경찰서를 찾아 헤매던 그 시간, 아내는 자신의 행복에 대해 그리고 여행에 목적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그리고 드디어 즐거워야 하는 마음이 아니라, 즐겁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여행 초반부터 늘 피곤해있던 아내는 드디어 저녁 내내 즐거워질 수 있었다. 아내는 쿠아 타운에서 돌아온 나를 진심으로 반겨주었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가는 화려한 식당 대신에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곳을 선택했다.

저녁 내내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즐거워 보였고, 마침내 아내와 나는 진심으로 여행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다 씻고 나서 양치를 마치고 나서도 아이들의 흥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아이들을 다독여 거실에 눕혔을 때, 아이들은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지만 나와 아내는 손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아이들은 굴러다니다가 잠들었고, 나는 아마도 아이들보다 먼저 잠들어버렸다. 아이들의 이불을 덮어주기 위해 새벽에 눈을 떴을 때, 아이들은 내 곁으로 모여 잠들어 있었다. 에어컨을 틀지 않았지만 새벽 공기는 의외로 차가웠고, 아이들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사방은 조용하고 벌레 우는 소리만 들렸다. 아이들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바라보고 앉아 있었는데, 너무 바쁘고 격정적이었던 하루가 꿈처럼 느껴졌다. 다시 아이들 곁에 눕자 곁에 바짝 다가와 누운 아이들의 체온 덕분에 온 몸이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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