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스럽게도 바닥에서 잠들기로 결정했다.
요사이 내 곁에서 잠드는 것은 둘째 아이이다. 아빠가 좋아서라기보다는 더위를 많이 타는 내가 머무는 곳이 시원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 누나와 함께 답답하게 있는 것보다는 내 곁에서 시원하게 잠드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내가 큰 덩치임에도 불구하고 잠드는 데 아주 좁은 공간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우리 집에 함께 살고 있는 가족들은 모두 자면서 구르거나 돌거나 하는 돌발 행동을 하는 편이다. 그래서 아내와 딸아이가 잠들어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상당히 재미가 있는 일이다. 나는 별로 많이 움직이지 않고 자는 편이고, 잠이 든 후에는 나도 모르게 곁에 있는 사람을 피해 이동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면 나는 침대 구석에 밀려가 있고, 아들은 침대 한가운데서 편안하게 자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화를 낼 수는 없다. 화를 내기에는 잠들어 있는 아이의 얼굴이 너무 나랑 닮았기 때문이다.
숙소에는 퀸사이즈 침대가 있는 방이 2개나 있어서 우리는 잠시 어디에서 잘까 고민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떨어질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나는 불안해졌고, 실제로 국제공항에서 첫날은 아이들이 떨어질까 봐 불안해서 제대로 잠들지 못했으므로, 랑카위에서의 밤은 바닥에 이불을 깔고 보내기로 했다. 아이들은 넓은 공간을 마구 굴러다닌다는 기쁨에 한참을 구르다가 잠들어 버렸고, 나는 그런 아이들보다 먼저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내만 혼자 침대에서 우아하게 잠들어 있었고, 나는 맨바닥에서, 아이들은 각각 이불 한가운데서 잠들어 있었다.
드디어 그날의 시작이었다.
아침 산책과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우리가 결정해야 하는 일은 환전이냐 주유냐 였다. 전날 나를 몹시 혼란스럽게 한 주유 경고등 때문에 나는 몹시 불안한 상태였지만 우리는 돈이 넉넉하지 않았고, 랑카위에서 신용카드는 별 소용이 없는 곳이 많았다. 그래서 우리는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환전을 하기 위해, 체낭 비치로 이동했다.
정말 아무도 없이 우리가 온통 해변을 차지했던 텡아 비치와는 다르게, 체낭 비치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로 가득했고, 우리는 쇼핑몰에 주차를 하고 환전소를 찾았다. 그리고 아내의 신중한 본능이 발현되기 시작했다.
아내는 무엇이든 한 번에 결정하지 않는다. 신중하게 그리고 아주 천천히 비교하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내의 결정은 무척이나 오래 걸리지만 그 시간만 참아낼 수 있다면 그 결정은 믿을 수 있다.
아내는 환전 액수를 생각했다. 공항은 환전이 좋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공항에서 최소한의 비용만 환전했고, 쇼핑몰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은 순간 돈은 모두 바닥나 버렸다. 우리는 주유도 해야 했고, 식사도 해야 했기 때문에 당장 환전을 해야만 했다. 나는 당연히 쇼핑몰에 있는 은행에서 환전하자고 했다. 그리고 바로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내의 생각은 달랐다. 구글에서 환전소를 검색한 후에 각 환전소의 금액을 비교해보자고 했다. 당연히 방법은 직접 가보는 것.
바로 내가.
나는 더위에 참 약한 사람이다. 더위는 생활의 의욕을 저하시키며, 삶의 의미를 회고하게 한다. 하지만 아무리 더위에 약하다 하더라도 적도의 더위 속에 아내와 아이들을 노출시킬 수는 없었다. 아내에게 자신 있게 말했다.
내가 다녀올 테니 아이들과 시원한 곳에 있으라고.
그리고 나는 적도의 더위로 뛰어들었다. 별다른 기억은 없었다. 환전소에 도착하면 액수를 묻고, 다시 걷고, 다시 액수를 묻고, 다시 걸었을 뿐이다. 그렇게 체낭 비치를 두 번 왕복했다. 금액을 정리해서 아내에게 보고하자 아내는 결정했다.
쇼핑몰에 있는 은행에서 환전하자고.
아이들은 시원한 곳에서 즐거워했고, 우리는 가장 많은 액수를 받을 수 있는 장소에서 환전했으니, 나도 행복했다. 그때는 그랬다.
우리가 볼 일을 마치고 차에 탔을 때,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숙소로 돌아가 아이를 재우고 주유를 하러 나오는 것과, 주유를 하고 아이를 차에서 재워서 속소로 돌아가는 것. 그리고 나는 매우 지쳐있었고, 땀을 무척 많이 흘리고 있었다. 남은 휘발유의 양을 짐작할 수 없었고, 낯선 곳에서 차가 멈추는 사태에 대해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었다. 그래서 주유를 하러 가기로 결정했다. 기름을 아끼기 위해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주유소 방향으로 출발했다. 주유소까지는 10분 남짓.
이상하게 시골길 한가운데서 차가 막힐 때, 우리는 눈치챘어야 했다. 아마 한국에서였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알게 되었겠지만 나는 더위에 지쳐있었다. 그리고 경찰관이 무엇인가를 단속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안전벨트에 손을 댔을 때, 열린 운전석 창문 쪽에서 그분이 웃고 계셨다. 안전벨트 미착용. 현지 법으로 벌금 300링깃. 우리나라 돈으로 10만 원가량이었다. 불쌍한 얼굴로 사정해보기도 했지만, 억울하다고 말하기에는 우리 뒤에 있는 현지인들도 적발되고 있었고, 심지어 인도계 남자는 차에서 내려 경찰관과 말다툼까지 하고 있었다. 순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비리를 저지르고자 하는 욕망이 꿈틀거렸다. 주머니에는 환전한 돈이 들어있었고, 나의 손은 연신 주머니를 들락거리며 마음의 갈등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보고 있었다. 아마 아이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를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행위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므로.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냥 인정해버렸다. 면허증을 주고 벌금고지서를 받고, 휘발유가 없으니 빨리 끝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경찰서에 와서 벌금을 내라는 말을 뒤로하고 주유소를 향했다.
벌금 내고 나면, 마음이 편해질 거야.
차 안에서 아무 말도 없는 아내와 나에게 큰아이가 말했다. 아이의 시선은 창밖에 고정되어 있었는데, 아이의 목소리가 똑똑하게 들려서 아내와 나는 깜짝 놀라버리고 말았다. 주유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경찰들은 철수 준비를 하는 듯했다. 아내는 아이를 재우고 왔으면이라며 후회했지만 나는 큰아이의 말을 곱씹고 있었다. 둘째 아이를 재우고 나는 혼자 섬을 삼분의 일을 돌아야 하는 쿠아 타운을 향했다. 큰아이의 말이 계속 귓가를 맴돌았다.
구글 지도는 친절했지만 생각보다 자세하지는 않았고, 나는 처음 와본 타국의 섬에서 처음 운전을 하며 경찰서를 찾아가고 있었다. 한참을 헤맨 끝에, 말레이시아 말로 경찰이 'polis'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내가 경찰서를 빙빙 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너무 어렵게 목적지에 도착해서인지 엉뚱하게도 여행 시간을 낭비하고 벌금을 내야 한다는 감정보다,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기쁜 감정이 먼저 느껴졌다.
차에서 내리면서 기분 좋게 벌금을 내고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딸아이의 말이 맞을 것 같았다.
경찰서에는 아까 우리를 단속한 그분이 있었다. 나는 웃으면서 들어갔고, 다들 웃으면서 나를 맞이해 주었다. 나는 아주 사람 좋은 얼굴로 벌금을 냈고, 영수증을 발행하는 동안 한국에 대해서, 서로의 아이들에 대해서, 날씨에 대해서 말레이시아와 랑카위에 대해 이야기했고, 물도 한 잔 얻어 마셨다. 영수증을 받고 서로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를 주고받으며 문을 열고 나오는데 큰아이의 이야기대로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래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기분이 아주 좋더라고, 그러자 아내가 이야기했다.
내가 경찰서를 향하는 동안 아내는 혼자 고민했다. 아이와 남편에서 너무 인색했던 것은 아닌가, 생활의 습관을 너무 가족들에게 강요한 것은 아닌가, 더 편안하고 즐겁게 여행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로서는 아내가 그런 생활의 습관을 갖게 된 것에 대해, 그리고 여행지에서도 그런 습관을 유지하게 된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이제 아내는 여행기간 동안이라도 편안하게 있고 싶다고 이야기했고, 나는 그러라고 답해 주었다. 그리고 빨리 운전해서 숙소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내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그리고 슬기로운 말을 하는 현명한 딸아이와 막 낮잠에서 깨어났을 것인 멍한 아들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신기하게도 타국에서 혼자 있었던 시간은 겨우 두 시간이었지만, 나는 가족과 아주 많이 떨어져 있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힘차게 시동을 걸었다.
다급하게 경찰 한 명이 뛰어나온 것은 시동을 건 순간이었다.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나는 다시 경찰서로 들어갔고, 웃으며 영수증을 다시 돌려달라는 말에 어리둥절하며 여권과 영수증을 다시 넘겨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당신은 좋은 사람이란 말과 함께, 다른 죄명의 벌금고지서와 영수증을 받을 수 있었다. 죄명은 말레이시아어로 적혀있어서 알 수 없었지만 벌금은 절반으로 줄어 있었다. 좋은 여행되라는 말과 함께 나는 절반의 현금을 다시 돌려받았다. 새로운 영수증과 함께.
랑카위에서의 운전을 정말 최악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두 시간 전이었다. 그런데 두 시간 동안 나는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었고, 큰아이의 현명함을 느낄 수 있었으며, 아내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서야 비로소 랑카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낄 수 있었고, 도로를 오고 가는 사람들의 밝은 표정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서 아주 밝은 얼굴로 나를 맞이해주는 아내와 아이들을 진심으로 안아줄 수 있었다.
총 4박 5일의 랑카위 일정 동안 2일이 지나고 나서야 진정으로 랑카위를 좋아하게 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