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는 없는 것이 많다.
아파트에 살다가 주택에 살게 되면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작년에 우리 부부는 지네의 습격을 받았다. 아내는 두 번이나. 모기는 말할 것도 없고, 처음에 이사 왔을 때는 바퀴벌레가 하도 자주 나와서 해충을 해결해주는 업체를 불러본 적도 있었다. 그 외에도 수많은 벌레가 집 근처에 서식한다.
새들의 습격도 생각 외로 불편하다. 아침에 새들 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리는 것은 정말 반가웠는데, 문제는 이 분들이 자신의 배설물을 자주 뿌리고 가신다는 것. 그래서 집 밖을 구경하는 둘째의 팔에 새똥이 묻어 있는 경우가 자주 있다. 처음에는 정말 호들갑 떨었는데 이제는 별 반응 없이 물로 씻기기도 하고 정도가 심하지 않으면 그냥 못 본 척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고양이들의 방문도 문제. 쓰레기를 내놓으면 고양이들이 봉투를 뒤지는 경우가 많다. 요새는 집에서 병아리를 키우고 있는데 가끔 청소를 위해 새장에 아이들을 넣어 내놓으면 고양이가 새장을 습격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해악을 가하지는 못하지만, 병아리들도 놀라고 아이들도 놀란다. 덕분에 아이들이 떠돌이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경우가 사라지기는 했다. 아이들에게 고양이는 주적이다. 주적.
물론 주택에 있어서 좋은 점도 많다. 빨래도 매일 햇볕에 널 수 있고, 주말에 이불도 햇볕에 소독할 수 있다. 여름에는 작은 수영장도 만들어서 놀게 할 수도 있다. 특히 집에 갇혀 있어야 할 때, 아이들은 발코니에서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빗물로 놀이를 하기도 한다. 제주도에 와서 우리 아이들은 비를 맞고 노는 경우가 많아졌다. 감기만 걸리지 않는다면 나쁘지 않다. 온통 비에 젖어도 아이들은 행복해한다. 빗물은 깨끗하고 어차피 조금만 더 크면 조금 젖는 것에도 호들갑 떨 나이가 될 것이다. 난간에 새 모이를 놓아두고 여러 종류의 새를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우리가 생각보다 많은 종류의 새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따금 나무에서 떨어진 제비나 새들을 구제해주기도 한다.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뛰어다녀도 아무도 뭐라고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덤이다.
제주도에는 자연이 있다. 그리고 여유가 있다. 사실, 자연이 있어서 여유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여유가 생겨서 자연을 돌아보게 되는 것인지의 상관관계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제주도는 편의성 측면에서 불친절한 곳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제주도에 없는 것이 있다.
제주도의 하천은 대부분 건천이다. 그래서 어마어마한 집중호우에도 생각보다 피해가 크지 않다. 비는 내리는 데로 지반 아래로 빠져나가고 나가면서 암석 사이에서 정화된다. 비가 내리고 난 후 제주도의 하천은 대부분 물이 없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육지의 계곡처럼 고즈넉한 느낌을 주는 계곡은 찾아보기 힘들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여행을 자주 가지는 못했다. 부모님의 생활은 늘 시간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집 주변을 맴돌기만 했고, 그때는 그런 생활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온 동네를 다니며 놀거리를 찾았고, 구박받기는 했지만 동생은 늘 내 뒤를 따라다녔다. 우리는 특별히 어떤 일을 하지 않고도 시간을 잘 보낼 줄 알았다. 하지만 일 년에 한 번, 여름이면 우리는 홍천강으로 피서를 삼일이나 사일 가기도 했다. 늘 비슷한 장소에서 비슷하게 고기를 굽고 비슷하게 물놀이를 하고 놀았다. 물은 깊지 않았고 지나치게 차갑지도 않아서 동생과 하루 종일 물에서 놀아도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
휴가가 아니어도 서울이나 경기도는 계곡을 찾기 어렵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집 가까이에 있는 계곡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도 많았다. 솔직히 엄청 맑은 물은 아니었고, 많은 물도 아니었지만 여름 한철 하루 혹은 반나절 시간을 보내기에는 충분했다.
그래서 그런지 제주도에서 아무리 계곡을 찾아도 어린 시절 놀던 그런 곳은 찾을 수 없었다. 매년 여름이면 그게 이상하게 서운했다.
가뜩이나 물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내장산 국립공원의 계곡에서 나올 줄을 몰랐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박물관을 갔다가 물놀이를 하고 전주로 출발했어야 하는 일정이었지만 월요일이라 박물관도 물놀이장도 휴관이었다. 우리는 급히 검색을 하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산길을 따라 이동했고, 국립공원 안에 계곡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물을 보자마자 뛰어들었고, 그렇게 투지 넘치게 예정에 없었던 일정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오랜만에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우리는 내장산의 케이블카를 지나 조금 안쪽으로 자리 잡았는데, 계곡은 어둡지 않고 밝은 것이 사람이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푸근하게 안아주는 것 같았다. 계곡물은 저 멀리 안쪽에서 흘러나왔는데, 물이 급하지 않고 완만하게 흘러 아이들은 물에 흐름에 몸을 맡기고도 편안하게 놀 수 있었다. 햇볕은 적당했는데, 우거진 나무가 그나마 가려주는 바람에 아이들은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물은 차가웠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지 않아서 물에서 놀기 편안했고, 계곡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세지 않아서 아이들을 떨게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오래 머물러도 아이들에게 해를 끼칠만한 물이 아니었다. 내가 늘 생각했던 기억 속의 계곡이었다.
적당한 장소에 자리를 잡고 아이들은 물에 뛰어들었다. 큰아이는 무엇인가를 잡기 위해 상류로 하류로 온통 다니고 있었고, 물이 무섭지만 물을 좋아하는 둘째는 내 손을 잡고 물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발을 담그고 서 있기만 했는데 몸은 가만히 있었지만 시선만은 사방을 훑어보고 있었다. 아마도 물, 혹은 물과 함께 있는 풍경을 머릿속에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풍경에 집중하고 있는 아이를 위해 말도 걸지 않고 가만히 손만 잡고 있었다. 기다림. 아내가 알려준 지혜였다.
요즘 큰아이와 대화하는 일은 참 즐거운 일이다. 둘이 외출해서 삼십 분이고 한 시간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데 아이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발상을 하거나 감탄하게 하는 결론을 내주어서 어른과 이야기할 때와는 다른 재미를 준다. 그런데 아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아이와 대화가 되기 전까지 나는 큰아이에게 말을 많이 건 편은 아니었다. 큰아이에게 말을 거는 것은 아주 작은 아기일 때부터 아내의 몫이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그 시절에는 아이와 둘이 있으면 생존에 필요한 이야기 외에 어떤 이야기를 아이와 나누어야 할지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책을 읽어주려고 했다. 책 안에는 내가 해주고 싶은 말과 해야 할 말과 미처 생각하지 못한 말이 들어있었다. 그래서 요령 없는 아빠임을 감춰주는 좋은 도구가 되어 주었다.
둘째 때는 육아에도 좀 더 많이 참여했고, 아이의 성장과정을 온전히 보았기 때문인지 아이에게 말 걸기가 더 쉬웠다. 그런데 문제는 말 걸기가 너무 활성화된 것. 그래서 집중해 있는 아이에게 말을 걸고 못 알아들으면 또 걸어서 아이의 집중력을 무력화시키는 실수를 계속 범했다. 그런 나에게 아내가 알려준 것이 '집중할 때 기다려주는 법'이었다. 방법은 간단하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고 기다려주는 것.
아이는 사색하는 얼굴로 사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기분이 이상하다. 눈이며 코며 귀며 입이 난생처음 본 것처럼 새롭게 다가온다. 엄마를 닮아 희고 부드러운 얼굴이 햇볕을 받아 반짝이고 진한 갈색 눈동자는 내가 아닌 다른 곳을 찾아 조용히 흔들린다. 수영복이며 수영모자는 다른 아이가 입던 것을 물려받았는데, 낡기는 했지만 아이에게 어울린다. 무엇을 보았는지 잠시 후 얼굴에 미소가 한가득. 사색의 시간은 끝나고 이제 광란의 시간이 돌아온 것이다.
아이들은 아주 늦은 오후까지 물놀이를 했다.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간식만 먹였는데, 물에 있는 것이 너무 즐거워 배고픈 줄도 모르는 것 같았다. 양치를 시키고 차에 태운 후에 늦은 점심을 먹이려고 국립공원을 빠져나오는데 아이들은 둘 다 잠이 들어버렸다. 아내와 나는 식사를 미루고 전주를 향해 출발했다. 한 시간 반. 전주에 도착하자 큰아이는 잠에서 깨어났지만 둘째는 아직 꿈나라다. 잘 수 있을 때까지 재우고 저녁을 먹으러 가려고 둘째를 숙소에 눕히고 다른 가족들도 그 둘레에 누웠다. 아직 해는 지지 않았는데 모두 자리에 누워 있으니 사방이 조용하고 마음이 편안했다. 밖에는 무엇인가 팔기 위해 돌아다니는 아저씨의 외침이 들리고 방 안에는 둘째 아이의 숨소리와 어느새 잠든 아내의 숨소리 그리고 큰아이가 보고 있는 텔레비전의 소리가 들려왔다. 전주는 처음이지만 처음이 아닌 곳이어서 그런지 고향에 온 것 같았다.
우리는 전주 한옥 마을 근처의 숙소에서 해가 질 무렵까지 그렇게 쉬고 있었다. 둘째는 아마도 물놀이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자면서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