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놀이가 없는 여름날에는 시원한 실내로 가야 한다.
무엇인가를 '본다'는 행위는 사실 인내심을 요구한다. 무엇인가를 '듣는다'는 행위 또한 생각 이상의 인내심을 요구한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하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은 보통 이상의 인내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우리 아이들이 늘 인내심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어제저녁에는 닭다리 6개를 요리해서 식탁에 올려두었는데, 김치를 꺼내기 위해서 냉장고에 다녀온 사이에 5개가 없어져 버렸다. 큰아이가 3개를 말끔하게 해결했고, 작은 아이는 2개를 불완전하게 해결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을 탓할 수는 없었다. 메인을 마지막에 올리지 않은 나의 잘못이 절반은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냥 웃어주고 돈가스를 에어 프라이기에 돌렸다. 비닐장갑을 끼고 작은 아이가 손댄 요리에서 살을 발라주는 동안, 큰아이는 다시 익어가는 돈가스에 깊은 관심을 표현하고 있었다.
확실히 이럴 때, 우리 아이들에게 인내심은 없다.
하지만 박물관에 가면 큰아이는 정말 달라진다.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으며 그것을 보고 느낀 점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표현할 수 있다. 가끔 내가 어설프게 아이의 감상 방향을 지도해주려고 하지만, 아이는 내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않는다.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중요한 점에 주관을 가지고 집중하는 것은 사실 어른인 나조차도 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박물관이나 혹은 전시회를 자주 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아이들은 늘 아주 오랜 시간을 보는 행위와 감상하는 행위에 투자한다. 예외는 딱 한 번이었는데, 작가의 작품을 움직이는 영상 효과로 표현한 전시회였다. 대중의 평가는 좋았는데 큰아이는 그 공간을 벗어나고 싶어 했다. 그러고 보면 큰아이는 한참 어른인 우리보다 감상 행위의 본질을 잘 파악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전주에서 서울로 출발하기 전 몇 시간 동안 우리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전주박물관을 찾았다. 어린이 박물관이 좋다는 이유에서였는데, 크기도 지나치게 크지 않았고, 무엇보다 전시물들이 대부분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날은 무척 더웠는데, 아이들은 박물관 입구에 있는 '해먹'에서 도무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조금 멀리에 시원한 박물관이 보이는데, 박물관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박물관 입구에서 양산을 대여해주셨지만, 쓸모가 없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우리 아이들 덕분에 양산을 제대로 경험해 볼 수도 있었다.
늦장을 부렸지만, 다행히도 어린이 박물관은 엄청나게 크지 않았다. 적당했고, 잘 관리되어 있었고, 아이들도 많이 않았다. 아이들이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여 관람했음에도 불구하고, 점심시간만 좀 늦어졌을 뿐, 일정에 큰 차질은 없었다. 물론 아이들을 다소 끌어내야 하기는 했었다. 우리는 전라도의 인심이 듬뿍 담긴 점심을 먹고 서울로 출발했다.
어린 시절 명절 때마다 멀리 시골에 다니러 가는 아이들이 제일 부러웠었다. 우리는 할아버지도 경기도에 사셨고, 친인척도 대부분 서울에 살았다. 가장 멀리 사는 이모도 강화도였으니 멀리 다니러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다. 심지어 우리 집이 큰집이고, 외가 식구들도 명절 저녁에 우리 집에서 모였으니, 이쯤 되면 거리가 문제가 아니라 명절에 아예 집 밖에 나갈 수가 없는 환경이었다.
그래서 고속도로에서 시간을 보내고 온 친구들의 경험담을 들으면 그게 부러웠다. 고속도로에서 열 시간을 보낸 것이 부러워할 일은 아니었지만 그때는 그랬다.
서울에 살고 있는 나의 반경은 늘 동네 어귀였다. 학교도 그랬고, 친구들도 그랬고.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학교를 두고, 걸어갈 수 있는 곳에 있는 친구들과 놀았다. 솔직히 말하면, 중학교 때까지 나의 삶은 늘 두세 개의 동구역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먼 곳을 간다는 말은 내게는 늘 매력적으로 들렸다. 먼 곳에는 이곳과는 다른 삶이 있는 것 같았다. 지금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아이들은 고속도로에서 잠이 들었다. 트렁크에는 짐이 잔뜩 실려 있었고, 유명한 빵집에서 산 선물도 소중하게 실려 있었다. 큰아이가 보물처럼 소중히 한, 불빛이 번쩍거리는 풍선도 터지지 않게 잘 두었다. 아이들이 잠들어 있는 동안 최대한 먼 거리를 가야 했으므로 휴게소에 갈 시간은 없었다. 서울 근교까지 세 시간이 걸렸는데, 아이들이 깨어나고 나서야 휴게소에 갈 수 있었다. 사실 둘째는 휴게소가 처음이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사방을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아마 둘째에게는 수많은 간식이 있는 곳이자, 평소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과 차가 있는 곳으로 기억에 남았을 것이다. 우리는 휴게소 구석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아이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잠들었었는데, 푹 자서 그런지 홍조를 띤 얼굴이 예뻐 보였다. 생각해보면, 완도에서 서울까지 매일 상당한 거리를 이동하는데도 아프지도 않고 밥도 잘 먹는 아이들을 예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제 조금만 있으면 할아버지와 할머니 집에 도착할 것이라고 격려했다. 어쩌면 나 스스로에게도.
그리고 우리가 서울 집에 도착한 것은 두 시간 뒤였다.
퇴근시간이었고, 길은 온통 차로 가득했다. 아이들이 디즈니 영화 한 편을 다 볼 때까지도 도착하지 못했다.
장어, 소고기.
예전에 아버지가 큰아이에게 뭐가 먹고 싶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큰아이의 대답이 장어와 소고기였다. 아주 어린 시절이었는데 그 대답에 우리는 웃었지만, 아이의 할아버지는 그 대답을 마음에 새기셨다. 그래서 항상 손주들이 집에 오면 장어와 소고기를 준비하곤 했다. 아이는 딱히 자신의 대답에 대한 자각이 지금은 없는 것 같았는데,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마음에는 그 대답이 각인된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은 어디론가 뛰어가버렸다. 나는 짐을 놓고 곧바로 아버지가 장어를 구우러 올라가신 옥상으로 갔다. 오랜만이지만 마치 어제 본 것처럼, 아버지와 아주 가볍게 안부를 나누고 함께 장어를 구웠다. 아이들은 옥상으로 올라와 부산을 떨더니 할아버지에게 무엇인가를 잔뜩 물어보고 대답도 하기 전에 내려가버렸다.
옥상에는 장어를 굽고 있는 냄새가 가득하고,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도 가득하다. 늘 보던 풍경 속에 아이들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늘 보던 아이들의 배경에 부모님이 있는 것 같은 이상한 혼돈 속에, 아이들도 부모님도 행복하다. 아이들은 늘 바쁘게 성장한다. 매일 아이들을 접하는 나도 문득문득 아이들의 성장에 놀란다. 어르신들은 이상하게 그대로 머물러 있는 듯하다. 지난번에 본모습에서 묘하게 아주 조금 달라진 듯, 마치 틀림 그림 찾기를 하듯 그렇게 부모님을 바라보게 된다. 이런 괴리감에 부모님은 아이들과 만날 때마다 늘 새로워진 아이들에게 새롭게 익숙해져가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늘 그대로인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곁으로 익숙하게 다가간다.
늘 같은 풍경인 듯, 늘 다른 저녁이 저물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