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있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지금 부모님이 살고 있는 집은 나름 놀이공원 옆이다. 지금 새로운 롤러코스터가 생기기 전에는 옥상에 설치한 평상에 앉아 있으면 롤러코스터가 최고점에 도달하는 풍경을 정말 가까이에서 볼 수가 있었다. 사람들의 긴장된 표정과 그 표정 이후에 즐거워하는 것까지도, 그리고 그 이후에 파도처럼 들려오는 비명소리까지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었다. 5월, 한창 벚꽃이 필 무렵부터 이 소리는 항상 나에게 대리만족을 주곤 했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 집은 놀이공원 옆이었다. 처음에 살던 곳은 바로 옆은 아니었는데, 마음만 먹으면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었고, 성당이며 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늘 그 곁은 지나가야 했으므로 사실 바로 곁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대형 놀이동산과 비교하면 형편없이 모자란 곳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린 시절 나에게는 그 정도로도 늘 충분한 곳이었다.
바이킹은 다른 놀이동산의 그것만큼 높이 오르지 않았는데, 너무 높지 않고 너무 크지 않아서 늘 좋았다. 너무 높이까지 오르는 다른 바이킹은 필요 이상으로 어지러웠고, 내리고 나서 아쉽지 않았다. 충분히 높이 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내린 후에 아쉬움이 느껴졌고, 아쉬움 때문에 늘 바이킹에 타고 싶었다.
롤러코스터나, 다람쥐통이라는 놀이기구는 회전할 때마다 '삐걱'하는 마찰음을 냈다. 그래서 놀이기구의 난이도와 별개로 몹시 낡은 것을 타고 있다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낡은 것이 무서웠지만 실제로 기구가 잘못되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가끔 혼자 대관람차에 타기도 했는데, 사실은 나만 빼고는 아주 오래전부터 아무도 대관람차를 타지 않아서 그냥 상징물처럼 세워져 있었다. 바람에 조심스럽게 흔들리는 관람차에 앉아 있으면 멀리 학교도 보이고, 늘 다니는 길도 보였다. 아래는 온통 소란스러운 상춘객의 무리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는데 내가 머물고 있는 공간은 아무도 없고 아무 소리도 없어, 혼자 앉아 있는 시간은 짧았지만 길게 느껴졌고, 그래서 대관람차에 혼자 앉아 있는 게 좋았다.
어린 시절 이것들은 모두 새것이거나 많이 오래되지 않은 것들이었는데, 시간이 흐르자 모든 것들처럼 낡아 버렸다. 그리고 나는 점점 성장해서 오래되고 낡은 놀이동산에 가지 않게 되었고, 그냥 그 앞을 아무렇지 않게 늘 지나가기만 했다.
지금은 나도 그때의 모습보다 오래되어 버렸다. 조금씩 낡아가고 아주 조금씩 몸과 마음에 녹이 생겨가는 듯할 때도 있다. 오래도록 고민해야 단어가, 기억이, 방법이 생각날 때도 많아졌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나의 손은 확실히 그 옛날의 손이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변해버릴 무렵 나는 다시 놀이동산을 찾게 되었다.
지금은 바이킹도 예전의 것이 아니다. 더 크고 높이 올라가는 것으로 바뀌었고, 낡은 롤러코스터도 새로운 것으로 바뀌었다. 대관람차도 다람쥐 통도 사라지고 새로운 것들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것들이 들어선 공간에 나를 닮은 아이들이 새롭게 뛰어놀고 있다.
아내는 놀이기구를 잘 타지 않는다. 타지 못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연애할 때, 어마어마한 롤러코스터를 강제로 타게 했는데 그 원망이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 걸 보면. 그래서 놀이동산에 큰아이를 데려가는 것은 내 몫이다. 딱 5개만 탈 수 있는 티켓을 발권하고 우리는 놀이기구를 이용하지만, 큰아이는 딱 5개에서 끝난 적이 없다. 특히 키 제한에 걸리지 않은 이후부터. 그래서 나는 내 몫의 5개를 타고나면 울타리 밖에서 놀이기구를 타는 큰아이를 바라본다. 놀이기구가 빙글빙글 돌아서 제자리에 올 때마다 아이는 나에게 손을 흔들고, 어디로 멀리 떠나는 것도 아닌데 나도 아이에게 반갑게 손을 흔든다.
곁에 두고 볼 때는 몰랐는데, 아이의 표정은 다른 아이보다 밝고, 미소는 환하다. 손을 흔드는 모습에서 아무것도 꾸미지 않는 진솔한 애정이 전해져 와서, 가슴이 찡하기도 하다. 그런 애정을 받아도 될까.
요새 큰아이는 내 편을 많이 들어준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아내에게 혼날 일이 있으면 큰아이 곁으로 가서 동의를 구한다. 분명, 보살핌을 받던 아이였는데, 나를 보살펴주기 시작했다. 밤이 잠이 들 때도 곁에 누우면 손을 꼭 잡아준다.
모든 아이가 그랬겠지만, 큰아이의 손은 아주 작았다. 처음 태어났을 때 큰아이는 정말 작은 아이였다. 조금만 실수해도 아이가 다칠까 봐 아이를 받아 들어도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아이를 안고서도 꼭 안으면 숨이 막힐까 걱정이었고, 곁에서 잠들 때도 아이를 다치게 할까 봐 편히 잠들 수 없었다. 그랬던 아이가 지금은 초등학교를 다니고 일기를 쓰고, 나와 같은 책을 읽고 있다. 손은 여전히 크지 않지만 손과 손으로 맞잡을만하고, 아주 따뜻하다. 따뜻한 아이의 손을 잡고 있으면 마음의 위안이 느껴진다. 다섯 살 무렵에는 손잡고 걸어가기를 싫어했다. 그때는 자신의 힘으로 걷고 자신의 힘으로 경험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부쩍 성장해서 자신의 따뜻함으로 가족을 위로해준다. 한참 손을 잡고 있다가 슬그머니 손을 놓으며 이제 편히 자라고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공원에 소풍을 갔다가 길을 잃은 적이 있다. 주일학교에서 간 소풍이었는데, 일요일 공원에 사람은 정말 많았고, 날은 더웠다. 아직 키가 작았던 나에게 주변 풍경은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의 모습만 보였는데 무작정 앞으로 가다 보니 공원을 관통해서 후문에 도착해 있었다. 당시에는 거기가 후문인지 정문인지 알 수 없었고, 단지 낯선 곳에 도착했다는 것만 알았는데 공중전화로 아무리 집에 전화를 해도 아무도 받지 않아서 공중전화 앞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때,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었고, 그래서 한 없이 넓게만 느껴졌다. 그대로 집에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에 아무 곳에도 갈 수 없었는데, 그때의 막연한 불안감을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도 잊을 수가 없었다.
저녁을 먹고, 아이들과 동물을 보러 나오는 길은 예전에 내가 헤매고 다녔던 그 길이었다. 아이들은 동물을 보러 당당하게 앞서 걸어갔는데, 잘못된 길을 가면서도 걸음이 당당했다. 한 번도 길을 잃고 두려워해 본 적인 없는 사람의 발걸음. 나는 서둘러 다가가 아이들을 동물원이 있는 방향으로 돌려놓았다. 아이들은 방향이 수정되었다는 자각조차 없이 재잘대고 키득대며 동물원을 향해 또 한참 앞서 가 버린다. 아마 아이들은 틀림없이 길을 잃을 터이지만, 불암감과 두려움은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늘 오래 아이들 곁에 머무르고 싶다. 뒤에 서서 살며시 손을 잡아 이끌어 주는 그림자처럼.
서울의 더위는 습기를 덜 머금고 있지만, 바람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아이들은 멀리에서 불어오는 인공의 바람에 잠들었고, 나는 오래도록 잠들지 못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에어컨을 끄고, 물을 마시고 자리에 누웠다. 큰아이의 손을 잡아보니 아주 따뜻하고 부드러워서 마음이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