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후에 아빠랑 1시간 동안 잘 놀았다.
이렇게 말하면서 말이다.
"당신의 불행이, 나의 행복!!!" ㅎㅎ!!!
그건 장난.
아빠가 동생에게 놀아주면, 참 웃겼다.
유야, 일단 놀아준 사례금을 주어서 고마워.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술 사 먹으라고 사례금을, 그것도 봉투까지 만들어서 말이야. 아빠가 일단 사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잘 두었어. 안에 들어있는 돈보다도 봉투에 적혀있는 유야 글씨랑 유야 마음이 아까워서 바로 술사 먹을 수가 없지 뭐야.
그리고 원래 일기 내용은 '1시간 동안 아빠를 후두려패서' 였었다면서?
엄마가 그러더라 너무 과격해서 고치라고 했다고.
가끔 아들만 있는 아빠 동료들이 딸이 있는 걸 부러워할 때가 있어. 아들들은 너무 과격하게 논다고 딸은 안 그렇지 않냐고 말이야. 그럴 때마다 아빠는 그렇다고, 우리 딸은 과격하게 놀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단다.
너에게도 이미지라는 게 있으니까 말이야.
너도 알다시피 아빠에게는 남동생만 있어. 사촌도 대부분 남자 형제라서, 어릴 적부터 제사나 어디를 가도 남자아이들 밖에 없었단다. 그래서 늘 전형적인 남자아이들의 놀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어. 동네 친구들도 모두 남자아이들 뿐이라서 여자아이들과 어떻게 놀아야 할지 알지도 못했고. 아주 어릴 적에는 친구의 여동생들이 겨우 아는 여자아이들의 전부였고, 그것도 어느 정도 철이 들고나서는 길이나 학교에서 봐도 아는 척하지 않는 관계가 되었거든. 물론 성당 주일학교에는 여학생들이 있었지. 하지만 아빠 어릴 적에는 서로 막 어울리는 모습을 보기는 어려웠어. 아빠는 그 아이들 중 좀 소심한 편에 속했고, 먼저 가서 말을 걸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놀리거나 여자아이들에게 장난치는 축에 들지도 못했단다. 그냥 늘 어울리는 남자아이들과 놀았어. 지금도 아빠와 연락하는 그 삼촌들 말이야.
그래서 아빠에게 딸이란 미지의 존재였단다. 솔직히 말하면 네가 태어났을 때, 너무 행복했지만 좀 막막했거든. 어떤 아빠가 되어야 할지, 어떤 책임을 져야 할지 준비는 되어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막막했어.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거든. 그냥 막연하게 좋은 아빠가 되어야 한다고만 말해주었지. 하지만 좋은 아빠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단다. 아마 엄마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아이를 기르는 기술은 전해주었지만, 아이를 기르는 마음은 아무도 보듬어주지 않았어.
처음에는 힘들어도 참으라고 다 그런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이 진실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몸이나 마음이 힘들 때, 힘들어하는 나를 아니면 엄마를 다독여야 한다고 생각했어. 특히 아빠 자신을. 그래서 아픈 마음을 누르고, 참고, 표현하지 않고 가만히 마음을 접어 두었단다. 멀리 보이지 않는 곳에.
엄마나 아빠가 너희가 울거나 힘들어할 때, 울지 말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그냥 안아주는 건, 마음을 접어두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깨달았기 때문이야. 그때 아빠는 정말 어리석었거든.
레슬링, 싸움놀이, 공룡놀이로 아빠를 괴롭히는 유야. 그리고 작은 유야. 솔직히 어제는 너무 아팠단다. 목에 매달리고, 아빠 몸 위로 뛰고, 주먹으로 때리고. 신나게 몸으로 받아주는데 어깨며 목이며 여기저기가 아파왔어. 그래서 도저히 못하겠다고 하니까 너희가 아빠를 엎드리게 하고 안마해주고 지압해주었잖아. 안마해주는 힘은 비록 크지 않았지만, 아빠의 마음은 뿌듯했단다. 등을 두드려주는 진동이 마음까지 전해져 왔거든. 너희 손길에 아빠 마음이 간질간질했어.
그래서 당분간은 몸으로 계속 놀아줘야 할 것 같아. 유야도 중학생이 되고 엄마만큼 커지면 아빠와 몸으로 놀아주지 않을 거 아냐. 그때는 친구들과 영화도 보러 간다고 하고, 약속도 잡겠지. 그리고 그때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 너희들의 괴롭힘을 마음껏 즐길게. 참, 그리고 아빠 동료들에게는 유야의 폭력성을 비밀로 할게. 아까 말했듯이 우리 유야의 이미지가 있잖아.
지금은 어렴풋하게 알 것 같아. 아들이나 딸은 중요한 일이 아니란 걸. 그냥 친하게 지내고, 키득거리며 함께 웃을 수 있고, 늘 서로 곁에 머물러 있는 그런 안정적인 '우리'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그리고 그렇게 늘 친하게 지내는 너희들과 아빠의 관계가 나중에 정말 필요할 때, 우리의 힘이 되어줄 것이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
유야, 근데 그런데 말이야...... 발차기는 좀 살살해주면 안 되겠니?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