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교환일기.

by 지승유 아빠

오늘은 독감 예방접종을 했다.

독한 건데, 정말 일도 안 아픈데, 엄마가 아프다고 엄살을 부렸다.

그래서 내가, "안 아프지롱, 안 아프지롱!" 하고 놀리니까

엄마가 "어우, 약 올라!"하고 말했다.

ㅋㅋ 엄마 약 올리기 대성공!

유야, 이제야 솔직히 말하지만 너는 아빠를 많이 닮은 것 같아. 엄마 닮은 외모지만 말이야.

사실 아빠는 다른 사람 놀리기를 잘하는 편이란다. 특히 안 놀리는 것처럼 놀리는 데는 선수지. 그래서 엄마를 처음 만났을 때도 아빠는 잘 놀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어. 그래서 엄마가 약 올라하는 노래를 반복해서 부르기도 하고, 은근히 모르는 척 약 올리기도 많이 했는데, 사실 아빠로서도 엄마를 놀리는 일은 쉽지 않을 일이었단다.


엄마를 처음 만났을 때, 엄마는 정말 낙천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단다. 우린 어린 나이도 아니었는데 그랬어. 그래서 유야 엄마는 놀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단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리지 않은 나이까지 낙천적이고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그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 같았거든. 그래서 조금 거리를 두고 바라보았단다. 물론 아빠 말고 다른 사람들이 엄마를 놀리는 경우도 있었어. 사실은 조금 많이 약 올랐지. 엄마는 놀리면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거든. 하지만 그 재미 이상으로 엄마에게는 무엇인가 상처 주고 싶지 않게 하는 방어막 같은 게 있는 것 같았어.


아마, 그걸 느낀 사람이 아빠니까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거겠지.


아빠는 정말 오랜만에 주사를 맞았단다. 아무렇지 않다고 큰소리쳤지만, 그리고 사실 병원에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큰소리 칠 수밖에 없었지만, 아빠는 조금 긴장하고 있었어. 독감주사는 처음이었거든. 너희는 매년 데려가서 주사를 맞게 하면서도 아빠랑 엄마는 독감주사가 처음이었단다. 그리고 사실 병원에 가서 청진기를 마주하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기도 했고.


아빠 아주 어렸을 때, 간염주사를 맞으러 갈 때였어. 아빠는 어릴 때는 좀 많이 약하고, 많이 아파서 병원도 자주 가고 해열 주사도 자주 맞는 편이었거든. 그래서 엉덩이에 맞는 주사는 조금도 무섭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팔에 주사를 맞는다는 어머니(그러니까 서울 할머니)의 말이 너무 두렵게 들렸어. 그래서 나도 모르게 대문을 붙잡고 안 가겠다고 엉엉 울어버렸어. 용감한 유야 남매와는 다르게 말이야. 사실 생각하고 한 행동은 아니었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대문을 부여잡고 있었고, 서울 할머니의 눈에서는 분노의 기운이 꿈틀대고 있었으니까.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건소에 도착했는데, 생각보다 주사가 아프지 않아서, 주사 맞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서 의사 선생님이 입에 물려주신 사탕이 달콤해서 기분이 좋아졌지. 그리고 그때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어.


집에 가서 보자.


정말 사람의 기분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나빠졌다가, 좋아지고, 다시 나빠지기도 하는 것이니까. 그 이후로 아빠는 교훈을 얻었단다. 놀이동산에서 놀이기구를 타고 싶지 않다고 하는 유야에게 아빠가 한 말.

미리 두려워하지 않기.


막상 경험해보면 생각보다 두렵지 않은 일이 많거든. 세상에는.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지만 말이야.

그래서 아빠는 우리 아이들의 망설이지 않는 용기가 늘 자랑스럽단다. 아무리 사람이 많은 곳에서도 손을 번쩍 들고 할 말을 하는 용기가 말이야. 누구나 알고 있지만 쉽게 할 수 없는 그 일을 정말 아무렇지 않게 하는 너희가 아빠는 꽤 자주 자랑스러워.


하지만, 그래도, 엄마 너무 많이 놀리지는 마. 알았지? 아빠는 엄마를 만난 후 지금까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난 동안 엄마 놀리는 일을 꾹 참고, 미래로 미루고 미루고 미루어온 사람이니까 말이야.

독감 주사 맞고도 아무렇지 않게 명랑한 남매! 건강해서 늘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