맵시[명사] 아름답고 보기 좋은 모양새.
다들 하는 이야기겠지만, 나도 왕년에는 균형 잡힌 몸매의 소유자였다.
요새 친구들끼리 하는 이야기로 점점 '거미'와 같은 몸매가 되고 있긴 하지만.
고등학교 때까지 나의 주요 패션은 교복이었다. 평일에는 교복을 입었고, 주말에도 학교를 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교복을 입었다. 물론 셔츠 대신 티셔츠를 입는 등 나름 소심한 일탈을 해보았지만, 주말에 아무도 심지어는 선생님조차 나의 패션에 아무런 관심이 없으셨다. 물론 가끔 사복을 입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내가 아무리 정성껏 사복을 입어도 다른 사람들을 교복을 입는 것과 크게 다르게 봐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다음부터는 늘 청바지에 그냥 아무티가 내 패션이었다. 그래도 나이가 무기라고, 예전 사진을 보면 나름 괜찮았다. 물론 3cm의 빡빡머리에 아주 먼 산골에서 엄청 구르다가 온 아이처럼 시커먼 얼굴을 빼면 그랬다. 심지어 그때까지 서울 경기도를 벗어나 본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대학교에 입학한 후에야 비로소 당시 유행에 편승했는데, 그 유행은 아주 폭이 넓은 바지였다. 폭만 넓은 게 아니고 길이도 엄청 길어서 운동화 아래로 바지가 끌릴 정도였는데 오래 입으면 바지 아래가 닳아서 너덜너덜해지곤 했다. 그렇게 바지가 너덜너덜해지도록 입어도 바지를 버리지 않고 결국 허벅지 부분이 닳아서 찢어질 때까지 입었다. 군대를 다녀온 다음부터는 넓이도 좀 조절되고 길이도 좀 짧아지긴 했지만 그 뒤로 거의 20년 동안 나는 폭이 좀 넓은 바지를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바지 구입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폭이 좁은 즉, 스키니 한 바지가 유행이 된 것.
평균보다 신장이 크기 때문인지 인터넷에서 주문한 바지는 너무 짧아서 입을 수가 없었고, 매장을 방문해서 바지를 구입하려고 하니 달라붙는 바지만 판매하고 있었다. 가능한 넓은 바지를 찾아 구입했는데, 결국 서서히 현실과 타협을 시작해서 스키니 한 바지를 입게 되었다. 패션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옷을 구입하는데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지 않는 터라 방법이 없었다. 한 벌을 사서 찢어질 때까지 입고, 또 한 벌을 사서 입는 동안 나도 모르게 현실과 타협하고 있었던 것.
그리고 솔직히 그렇게 입고 생활하니 주변에서 젊어 보인다고 이야기해주기도 하고, 가끔~~~ 아주 가~~~~ 끔 나이보다 젊게 봐주는 경우도 있으니 점차 바지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홈쇼핑에서 폭이 넓은 아주 편해 보이는 바지를 발견했고, 아내 것과 내 것을 충동적으로 구입했다. 바지가 도착하고 착용했는데, 아내의 표정이 미묘했다. 무슨 표정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스타일이, 맵시가 모양이 엉망이었던 것. 하지만 바지를 입는 순간 그 익숙한 편안함 때문에 나는 바지를 반송할 수 없었다. 아주 오래전에 느껴졌던 편안함 앞에서 맵시 따위 상관없었다.
내가 뭐 미혼도 아니고. 밖에서 잘 보일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과감하게 맵시를 버리니 편안함이 찾아왔다. 내가 입으니 아저씨 바지 같은 건지 아저씨 바지라서 내가 아저씨처럼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확실히 아저씨고 두 아이의 아빠다. 지금도 책상 아래로 다리를 흔들면서 편안함을 만끽하고 있는 중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맵시를 지키면서 편안함과 익숙함까지 추구하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할 듯싶다. 어설프게 젊은 트렌드를 따르는 것보다 편안함을 지키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인 듯싶다. 물론 가끔은 스키니 한 바지를 입겠지만 그래서 적어도 여름만은 몸과 마음의 평화를 지키고 싶다.
썩 내키지 않는 눈빛을 했던 아내의 관심도 이내 아이들에게 돌아갔다. 돌아갔다기보다는 '네가 편안하니 그걸로 되었다'정도랄까. 아저씨처럼 입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 아내도 나의 맵시를 포기했다. 아이들은 애초에 아빠가 뭘 입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아이들에게 물어봐도 무조건 OK이다. 아마 앞으로의 삶에서 맵시를 포기하는 경우가 더 늘어나지 않을까? 노년에도 품위를 지키는 분들이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마음의 맵시만 포기하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옷차림은 다소 편안해도 마음의 여유와 너그러움을 갖춘 중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맵시를 포기한 오후에 책상 아래로 다리를 흔들며 늘어놓은 상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