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시선

by 지승유 아빠

시선[명사] 1. 눈이 가는 길. 또는 눈의 방향.

2. 주의 또는 관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아주 오래된 카메라가 있다.


요즘은 보기 힘든 필름 카메라인데, 망원렌즈에 삼각대까지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1970년대 생산된 카메라이다. 요즘 카메라와는 다르게 구조도 단순해서 큰 고장 없이 작동되었고, 잔 고장도 종로에 가서 금방 고쳐지던 터라 대학생이 된 해부터 한참 동안 나는 그 카메라를 들고 어디든 다녔다. 흑백 필름을 넣기도 하고, 무광으로 현상하기도 하고, 한참을 찍고 찍고 찍었다. 나중에는 중고 DSLR을 구해 들고 다녔는데, 필름이 없어도 된다는 편리함에 수만 장씩 사진을 찍도 돌아다녔다.

많이 찍는다고 실력이 많이 느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늘 결과물은 불만족스러웠다. 물론 필름 카메라와 디지털카메라의 간격도 있었던 듯싶다. 사진이 주는 느낌도 달랐고, 표현의 자유로움도 그랬다. 물론 편집을 사용하면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겠지만, 필름 카메라는 편집을 하지 않아도 내가 의도하는 느낌을 심을 수 있었다.


요새 내가 주로 사용하는 카메라는 휴대전화이다. 필름 카메라는 구석에 곱게 모셔져 있고, 이제 골동품이 된 DSLR은 아이들의 장난감이 된 지 오래이다. 아이들에게는 조금 무거울 수 있지만 아이들은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보며 찍는걸 무척이나 즐거워하는 눈치이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말도 안 되는 사진을 대량 생산해 낸다. 가끔 그럴듯한 결과물이 나오기도 한다. 아이들이 찍은 결과물은 모두 외장형 하드에 보관했다. 나중에 아이들이 더 이상 이상한 사진을 찍지 않는 경지에 이르면 아내와 함께 아이들 몰래 관람할 예정이다.


요새 나의 촬영 목적은 기록이다.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아이들이 태어난 후부터 모든 부모가 그렇겠지만 갤러리의 사진 99%는 아이들 사진이다. 예전처럼 사진을 현상해 앨범으로 만들어 두지는 않지만 엄청난 용량의 사진과 동영상이 차곡차곡 저장되고 있다. 아이들은 늘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아이들의 성장을 기록하려면 엄청난 순발력이 있어야 한다. 느낌 따위는 사치. 요새는 아이들의 얼굴을 똑 바르게 찍는 것도 벅차다. 아이들은 슈퍼 히어로처럼 움직인다. 그래서 점점 아이들의 얼굴보다 풍경에 녹아든 아이들의 사진이 늘어난다. 예전 아이들의 함박웃음보다, 먼 풍경 안에 아이들이 담겨 있다. 때로는 그래서 더 아름답다.

그런데 한참 사진을 찍다 보면 사진을 찍기 싫어지는 때가 있다. 비가 오는 날 공원에서 그랬다. 비가 많이 오는 공원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우산을 든 몇 명만 멀리서 오고 갈 뿐. 우리는 비옷을 입고 비를 맞이하러 공원을 향했다. 걱정되는 마음에 지급한 우산은 이미 모두 내 손이 들려있고, 아이들은 모두 비에 흠뻑 젖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비를 맞으며 노는 모습을 바라보고 앉아 있으니 도무지 사진을 찍을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내의 독촉에 몇 장을 찍어놓고 가만히 앉아서 나의 가족들을 바라본다. 사진과 현실을 비교해보니 사진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현실과의 간격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에 미끄러지면서 웃고, 다시 일어나고 멀리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가족들의 즐거움이 사진보다 내 눈 안에서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수 없이 많은 사진을 찍고 보니 그랬다. 한 번씩은 카메라를 내려놓고 가만히 앉아 풍경을 눈에 담고 싶었다. 풍경이 주는 느낌을 마음에 깊이 찍어 놓고 싶었다. 그래서 사진을 찍기 싫을 때가 있었다. 한몇 년을 카메라를 구석에 넣어 놓았다.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에 열중해서 지금 현재를 제대로 마음에 담고 있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진은 남아 있는데 그때의 내 마음의 인상은 사라져 버린 느낌. 그래서 카메라 없이 온전히 눈으로 풍경을 사람을 담고 싶었다.

처음에는 마음에 이야기를 표현하기 위해 일기를 썼다. 그리고 글을 썼다. 그런데 아주 가끔 어느 순간에 글을 쓰기 위해 일상을 사는 것 같은 때가 있다. 그리고 글 안에 나의 시선이 묘하게 왜곡되어 있는 것이 느껴지는 때도 있다. 사진 속의 일상과 사진 밖의 일상이 다른 것처럼, 글 안의 시선과 글 밖의 시선이 주는 묘한 괴리감 때문에 한동안 무엇이라도 쓰기가 주저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면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다른 사람의 모습을 관찰하고 멀리 바다를 바라본다. 그냥 의식하지 않는 생활을 살아가고 의식하지 않는 새벽을 맞이하고, 의식함이 없이 잠든다.


내게는 두 개의 시선들이 있다. 그리고 두 개의 시선 모두 나의 시선이다. 사진으로 보는 시선은 아마도 내가 기록하게 되는 현실들이다. 그 기록들이 모두 나의 마음에 담기지는 않는다. 시인들의 수많은 시가 모두 마음에 와닿지는 않는 것처럼. 현실에서의 나의 시선은 조금 더 자유로운 현실들이다. 내 마음에 저장되기도 하고 그냥 무심히 흘러가기도 한다. 마음에 저장되는 것은 저장되는 데로 흘러가는 것은 흘러가는 데로 의미가 있다. 예전에는 그냥 무심히 흘러가는 것이 아깝고 아쉬웠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기록하고 찍고 적었다. 하지만 그냥 흘러가는 것은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면서 아주 작은 조각이 마음에 담기고, 그것이 모여서 결국 내가 되어간다는 것을 몰랐다.

글 안에 나의 시선은 조금은 더 정제되고 정돈되어 있다. 늘 어떤 결론에 이르기 위해 마음속에 있던 무엇인가를 긁어내어 위에 덧바르고 꾸며내야 한다. 그러면 그 시선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고 생명을 가진 다른 무엇인가가 되는 것 같다. 때로는 결론마저도 내 의도와 다르게 흘러가 버리고는 아주 뻔뻔하게 완결되어 더 이상 손을 댈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하는 것처럼. 글 밖에 나의 시선은 조금은 더 산만하고 두서가 없다. 하지만 글 밖에서 아이들과 웃고 잔소리하고 밥을 먹는 동안 나도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다시 마음에 쌓여 간다. 결국 안과 밖의 나는 서로 반대이지만 서로 돕는 관계이다. 글 안의 내가 내가 아닌 것처럼, 글 밖의 나만으로는 나를 만들 수 없을 것 같다.


일찍 일어난 큰아이가 소파에 누워 책을 보고 있다. 작은 아이는 누나 곁에 잠시 머물다가 엄마를 찾아 비틀거리며 잠이 덜 깬 걸음으로 사라졌다. 나는 이제 독립된 생명체처럼 제 멋대로 결론을 내 버린 상념을 마무리하고 평범한 일요일 일정을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