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시계

by 지승유 아빠

아마 아버지는 기억하지 못하시는 것 같지만, 내가 아버지에게 받은 선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손목시계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였는데,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나가자고만 하시고는 앞장서셨고, 나는 아무 말 없이 아버지를 뒤를 따랐다. 중학교 때도 그런 적이 있었는데, 토요일에 학교를 마치고 회사 앞으로 나오라는 별 부연 설명이 없는 아버지의 말에 나도 별 의문 없이 나간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회사 앞에서 닭곰탕을 먹이고는 극장에 데려가서는 브루스 윌리스가 주인공인 영화를 보여주셨다. 영화 보는 내내 별 말은 없었지만 그냥 아주 좋았었다. 손목시계를 선물 받은 날도 그랬다. 별 부연 설명 없이 아버지는 앞장서셨는데, 별로 멀리 가지 않고 대부님이 운영하시는 금은방에 금세 도착했다. 국산 브랜드 손목시계였는데, 별 장식은 없었고 요일이나 날짜를 표시하지도 않았지만 시간만은 아주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이었다. 회색 바탕에 검은 테두리를 하고 가죽 줄이었는데, 중학교를 마칠 때까지 그 시계를 차고 다녔다. 이따금 배터리가 떨어지면 대부님 가게에 들러 교체하면 그만이었다.


고등학교까지, 그러니까 아버지가 명예퇴직하시기 전까지 아버지는 늘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셨다. 당시 회사원들이 그랬던 것처럼 양복을 갖춰 입고, 셔츠를 깔끔하게 다리고, 시계를 차고 아침 이른 시간 해가 뜨기도 전에 아버지는 집을 나섰다. 당시 가정환경조사서에 아버지 직업란은 늘 '회사원'이란 단어로 채워졌고, 동생은 실제 아버지가 회사에서 업무를 보는 줄 알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회사 임원들의 차를 몰고 다닌 다는 것을. 주말에는 이따금 골프장까지 그들을 데리고 길고 긴 시간을 차에 앉아 있어야 했고, 저녁에는 술집 혹은 식당 앞에서 그들의 회식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정이 다 된 시간에야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별 상관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본 아버지는 늘 비굴하지 않았고, 당당했으며 성실했으므로. 그래서 중학교 때, 아버지에게 손목시계를 선물 받은 후로는 나도 교복을 깔끔하게 입고 손목시계를 차고 늘 학교로 갔다. 그리고 가능하면 비굴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 뒤로 손목시계가 몇 번 바뀌기는 했지만 나는 여전히 손목시계를 차고 다닌다. 아무리 해도 휴대전화를 꺼내어 시간을 확인하는 것에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용돈을 모아서 산 손목시계를 분실하기도 하고, 상금으로 받은 돈으로 시계를 사서 정말 산산조각이 날 때까지 차고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시계가 바뀌어도 처음 선물 받은 그 시계를 잊지는 않고 있다. 아니 잊을 수가 없다.


큰아이는 휴대전화가 있어도 잘 챙기지를 못한다. 다른 아이들은 동영상이다 게임이다 전화기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고 하는데 큰아이는 휴대전화가 어디에 있는지 잊는 경우가 너무 많다. 충전에 되지 않고 가방에서 며칠이나 쉬고 있는 경우도 있고, 학교에 제출하고 잊어버리고 집에 오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시간도 잘 지키지 못한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시간에 대한 개념이 없다고 할까.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늘 잊어버리고, 지금이 점심인지 늦은 오후 인지도 잘 모른다. 자기가 좋아하고 집중하는 것은 절대 잊지 않으면서 그 밖에 것들은 잘 잊어버린다. 그래서 오늘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손목시계 사줄까?

그래.

아마 큰 아이는 몰랐을 테지만 나는 늘 아이들에게 손목시계를 사주고 싶었다. 코로나 때문에 2년이 넘도록 못 보고 있는 아버지를 내가 가끔 떠올리듯 훗날 우연히 나를 떠올릴 것을 주고 싶었다. 그게 꼭 손목시계가 아니더라도. 하지만 나도 극히 평범한 사람인지라 배운 것을 벗어나는 생각을 쉽게 할 수는 없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애착을 가질만한 일이 없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추억하는 할아버지는 평범하지 않다. 그래서 아버지의 기억을 조금 나누다 보면 할아버지는 늘 부정적인 조각들만 남는다. 그래서 아버지는 어린 시절 나에게 특별한 이야기나 놀이를 나눌 줄 몰랐다. 아버지도 자신이 배우지 않은 것을 만들어내기 어려웠을 것이리라. 그래서 가끔 영화를 보고, 무협지를 나눠 보는 것으로, 손목시계를 사주는 것으로 자신이 가진 최대한의 표현을 한 것이리라. 사실 나는 요새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낸다. 아침을 해서 먹이고, 방과 후 수업에 데려다주고, 또 점심을 먹고, 놀이터에 가고, 산책도 하고 책도 함께 읽고 잠도 함께 잔다. 그래도 우리 아이들이 나를 추억할 만한 무엇인가를 가졌으면 싶다. 나에게 손목시계가 그런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