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이 넘는 우리 고립에 역사
고립[명사] 다른 사람과 어울리어 사귀지 아니하거나 도움을 받지 못하여 외톨이로 됨.
시작은 2020년 코로나와 함께였다.
작년 1월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말레이시아 여행을 다녀왔다. 둘째는 24개월쯤이었는데 곧잘 우리를 따라다녔고, 수영장에서 둘째가 물에 빠지는 사고가 있기는 했지만 별 일 없이 잘 먹고, 잘 자고, 즐겁게 일정을 마쳤다. 그때만 해도 코로나에 대한 기사는 중국에 대한 이야기 정도로 알고만 있었으므로 우리는 아무 경각심 없이 여행을 다녀오고, 다음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며 김치볶음밥으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구정에 서울과 대구를 다녀왔다. 서울에 있을 때만 해도 대공원도 가고, 동물원도 가고, 성당도 가고 자유로웠고,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대구로 이동했다. 기차 안에서 아무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지 않았는데, 유난히 발달한 아내의 육감은 위험을 감지했었던 것 같다. 마스크가 필요하겠다며 기차에 탑승하는 것을 불안해했다. 대구에 가서는 주로 집에만 있었는데 서울 지역에서 코로나가 빠른 속도로 퍼지기 시작한 즈음이었다. 대구는 아직 심각한 때는 아니었지만 주변 마트에 가서 마스크를 틈틈이 구입해놓고, 다시 제주로 돌아올 때는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들어왔다.
그게 우리의 섬 밖 외출의 마지막이었다.
제주는 봄과 가을이 좋다. 예전에는 여름에 관광객이 집중적으로 몰려서 특히 겨울에는 한산했는데, 요즘에는 사계절 가리지 않고 관광객들이 들어오니 공항이며 관광지는 늘 북적이기 마련이다. 특히 대형 마트에 가면 계절을 요일을 가리지 않고 렌터카들이 줄 지어 주차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봄에 제주는 아직 습하지 않아서 좋다. 해는 멀리서 길게 내리쬐는데 아침에 창문을 열면 관광지에서의 향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고, 멀리 바다에 수평선이 선명한 날은 아침 공기를 듬뿍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좋다. 주말에는 아침을 먹여서 주로 사람이 없는 곳으로 산책을 나가는데,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관광지로 나가는 경우도 있고, 사람을 피해 멀리 바다를 산책하는 경우도 있다. 관광객들은 잘 모르는 오름이나 숲으로 소풍 가거나, 그냥 아무 곳도 아닌 돌담 사이 동네 길을 걸으러 가는 경우도 있다. 원래 제주도는 특히 서귀포는 길에 사람이 많지 않기에 올레길이 아니라면 한 시간을 걸어도 동네 분들 몇 밖에 만나지 못한다. 아이들은 마스크를 목에 걸고 다니면서 이따금 마스크를 벗고 숨을 크게 쉬는데, 봄에 꽃냄새며 풀냄새며 감귤꽃 냄새가 품 안으로 가득 들어오면 아이들은 간질간질한 표정으로 키득대곤 한다. 그러면 그 모습이 예쁘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해서 한참을 바라보게 된다.
예전 같으면 늦은 봄이나 초여름에도 실내 수영장도 가고, 바다에도 마음껏 나갈 텐데 아이들은 불만이 많다. 사람이 없는 곳으로만 다니려고 하니 당연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곳은 피할 수밖에 없고 아이들은 매번 풀과 나무하고만 놀아야 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십자매나 거북이나 물고기를 키우자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렇게라도 아이들의 마음이 달래 지길 빌 뿐. 요즘 큰아이는 궁금한 것이 생겼다. 왜 육지 사람들은 이리 내려오는데 우리는 서울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못 만나고, 대구에도 못 가느냐고. 생각해보면 좀 억울하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는 그래도 바다도 가고, 숲도 가지만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갈 데가 없으니 이렇게 제주도라도 다녀야 하지 않겠냐고 위로한다. 그리고 조금만 참으면 될 거라고 늘 조심스럽게 이르곤 한다.
그래서 요즘 아내와 아이들은 조금 답답한 중이다. 그전에 워낙 많이 돌아다닌 덕에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별 수 없다. 지킬 수밖에. 부모님 얼굴을 못 본 지 일 년 하고도 반이 되어 간다. 뵙고 싶은 이기심에 잠깐이라도 다녀올 수 있겠지만, 혹시나 아이들의 학교나 어린이집에, 직장에 심각한 위협을 가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매일 안부 전화로 대신하고 있다.
부모님이 1차 예방접종을 하셨다. 혹시나 손주들에게 피해가 될까 봐 2차 접종을 마쳐야 제주도를 오겠다는 두 분의 말을 들으며 어쩌면 이제 조금씩 우리의 고립이 끝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조심스럽게 생각했다.
어제는 비가 많이 내렸는데, 온 가족이 비옷을 입고 수목에 갔다. 비를 잔뜩 맞으러. 나무며 꽃들이며 온통 비에 촉촉하게 젖어 있었는데, 아내는 나의 잔소리를 연신 막으며 아이들이 마음껏 젖으며 놀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비가 내려 사람은 거의 없었는데, 온통 젖은 놀이터에서 아내와 아이들은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이들은 속옷까지 젖었지만 밥도 잘 먹고 일찍 잠이 들었다. 우리의 고립은 사실 고립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외톨이가 아니고 함께니까. 그래서 아직까지는 함께 웃고 울고 잠들고 맛있는 것도 사이좋게 나누고 있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이 성장하면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나기 시작하면, 지금 서귀포에서의 우리의 고립이 많이 생각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