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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병 J (병장)

by 제이

198X년 3월 팀스피리트 훈련때였다.

한미연합사 작전처에서 운전병 겸 통역병으로 근무하던 나는 주한미특전사령관님을 모시고 경부고속 판교인터체인지 우측에 있는 지하기지 벙커에서 훈련 브리핑에 참여하고 있었다.

상황실 한쪽 벽에 전지 3장을 이어붙여 만든 상황도를 보면서 한국육군 작전장교 정소령님이 현재 상황을 열심히 설명하셨다.

거기에는 20명 이상의 한미 고위장교들이 참석하고 있었고 장성급만 해도 5명이나 있었다.

작전장교의 충분한 상황 설명이 끝나자 모두들 내용에 만족해하며 상황실을 떠났다.

그 순간, 한미연합사 작전참모차장인 이모 소장(★★)님이 브리핑 자료가 마음에 드셨던지 상황실 담당 작전장교인 김대위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이 김대위, 그 벽에 붙은 지도, 오늘 저녁 우리 부서 브리핑에도 사용하고 싶으니 1 장 복사해서 오후 3시까지 내 사무실로 가지고 와”.

그리고는 대답도 듣지않고 떠나버렸다.

4명의 작전병이 꼬박 밤새워 작성한 상황실 지도를 몇 시간안에 다시 그려서 가져오라니!

그 말을 들은 김대위의 얼굴은 백짓장처럼 하얗게 변했고, 이 난제를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몰라 갈팡질팡하였다.

그 시간 작전실에서 근무하는 상황병 3명을 아무리 다그쳐봐도 몇 시간 내에 저것과 똑같은 지도를 처음부터 다시 그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투스타에게 그 지도는 다시 그릴 수가 없으니 죄송하지만 지도없이 브리핑을 하시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 때, 상황실 일병이 머리를 짜내어 말했다. “다음 달에 제대하는 J병장이 옆 방에서 자고 있는데, 혹시 모르니 제가 한번 물어볼까요?”

육사를 졸업하고 나름 군생활도 꽤 경험했다고 자부하는 대위도 아무런 대책이 생각나지 않는 상황에 말년병장이라고 뭐 별다른 뾰족한 수가 있을까해서 전혀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옆방에서 곤히 낮잠을 자고있던 J병장을 깨웠다.

주황색 추리닝 바람에 머리는 떡이 되어 나타난 J병장은 상황 설명을 듣더니 눈꼽을 떼어내며 말했다.

“뭐 그딴 같잖은 일로 자는 사람을 깨우고 그러냐? 난 한잠 더 잘테니 걱정말고 2시에 다시 깨워라”

2시까지 안절부절 못하며 지도를 그렸다 지웠다 하던 작전병들은 마감시간 1시간 전에 다시 J병장을 깨웠다.

그제서야 눈을 부비며 나타난 J병장은 이렇게 말했다. “일단, 저 벽에 붙은 지도들 다 떼내서 바닥에 깔아봐”

“야, 김일병 넌 새 전지 3장 가져와서 그 위에 덮고, 이 일병, 넌 압침 가져와서 모서리 단단히 고정시켜”

J병장은 원본지도 위에 새 종이를 덮고 거기에 비치는 선을 따라 그대로 슥슥 선을 긋는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지도를 트레이싱하니까 작은 지도를 보고 확대해서 그리는데 5시간 걸리던 것을 30분 만에 다 복사할 수 있었다.

작전장교는 J병장의 기지에 내심 감탄을 했고, 그 지도를 받은 이 소장님도 브리핑을 잘 하실 수 있었다는 후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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