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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와 하수

by 제이


1.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한국의 조성진군이 우승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그런데 심사위원 중 한 명인 필리프 앙트르몽(아래사진, Philippe Entremont)은 성진군에게 전체 경연자들이 받은 점수 중 최저점인 10점 만점에 1점을 주었다. 조성진 외에 다른 어떤 참가자도 앙트르몽에게 1점을 받은 사람이 없었고, 앙트르몽을 제외한 나머지 심사위원들은 모두 만점에 가까운 높은 점수를 주어 결국 1등은 성진군에게 돌아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Yes/No로 결정하는 예선에서도 이 심사위원만 두 번이나 조성진에게 No를 주었다고 한다. 이 사람의 귀에 성진군의 연주가 정말로 1점짜리 연주로 들렸다면, 나머지 모든 심사위원들의 평가가 틀렸다는 얘기가 되고, 만약 고의로 성진군을 떨어뜨리기 위해 그랬다면 인성이 매우 고약한 고집쟁이 영감탱이임에 틀림없다.

성진군의 당시 스승인 미셸 베로프교수가 파리고등음악원 소속이고 앙트르몽도 그 학교에 재직하고 있는데 두 사람이 서로 라이벌 관계에 있다는 얘기도 돌았다. 평생 음악 밖에 모르고 살아온 편협한 노친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성진군의 반응은 쿨했다. "모든 사람은 각자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그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라고 말했다.

2. 일본 삿포로에서 열렸던 동계아시안게임 쇼트트랙 500미터 결승에서 한국의 심석희 선수가 아깝게 금메달을 놓쳤다. 결승전에는 심석희 선수와 일본선수 1명, 중국선수 2명이 참가했는데, 결승선을 얼마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2위로 달리던 심석희가 1위로 치고 나오는 순간 물귀신 신공을 펼친 중국의 판커신이 심석희의 무릎을 잡아채는 반칙을 저질렀고, 결국 어이없게도 두 선수 모두 실격을 당했다.

금메달은 어부지리로 다른 중국선수가 차지했고 일본 선수가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판커신은 자신이 장렬하게 산화하는 대신 동료에게 금메달을 걸어준 살신성인을 이루었다.

다음날, 1000미터 준결승에서 심석희는 또 한 번 판커신을 만났다. 심석희는 이렇게 말했다: “판커신을 만나면 최대한 몸싸움이 일어나지 않도록 레이스를 펼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상대방의 반칙에 대비하지 못한 것도 나의 실수다.” 심석희는 출발부터 결승점까지 단 한번도 선두를 놓치지 않으며 아예 반칙의 빈틈을 보여주지 않은 채 1위로 테이프를 끊었고 판커신은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 결국 심석희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3. 싸이 7집 앨범에 수록된 “좋은 날이 올거야”라는 노래 가사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사실 반칙과 오심도 게임의 일부.” 하수는 어떤 이유로든 자신이 하는 일이 잘 안 풀리게 될 때 반드시 남을 탓한다. 이기적인 동료 때문에 기회를 잃었다, 나쁜 상사 때문에 일을 망쳤다, 뭐든 잘못 되면 조상 탓을 한다. 그리고 그 핑계를 오래오래 사골 우러내듯 우려먹는다.

하지만 고수는 다르다. 뭐든 내 탓이고, 내가 월등하게 실력으로 앞서 버리면 하수의 어떠한 방해공작도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충분히 그럴 능력을 갖추고 있다. 내가 고수라는 말이 아니고, 우리 모두 고수가 돼야한다는 말도 아니다. 고수의 생각과 하수의 생각은 그만큼 다르다는 얘기다. 따라올테면 따라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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