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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쏘쏘 Jul 17. 2019

에펠탑을 보면서 너가 더 좋아졌어

스물여덟에 갑자기 유럽 8편 - 파리(프랑스)

2019.07.04 파리(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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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벌금 50유로를 냈습니다


베르사유의 장미 때문에 친숙한 베르사유의 궁전을 오전에 가보기로 했다. 교통수단이란 건 국가마다 다르고 도시마다 달라서 어딜 이동할 때마다 이 방향이 맞나, 역을 놓치진 않았나 손에 든 아이폰의 goolgle map을 꼭 쥐고 현위치를 계속 새로고침하면서 초긴장상태가 되는데 이번 기차는 역도 가깝고 목적지도 마지막 정류장이라 마음 편히 기차를 탔다.

나에겐 나쁜 버릇이 있다. 의자에 앉으면 안 그래도 잘 붓는 종아리와 발에 피가 쏠려 엄청나게 땡땡한(?) 얼얼함을 느낀다. 그래서 스탠딩 의자에서조차 어떻게든 아빠다리를 하고 앉곤 한다. 긴장도 풀리고 내 종아리 좀 쉬게 해주려고 앞 좌석에 발을 올렸다.


You have to pay 50 euro.


발을 올린지 거짓말 안하고 10초도 안되서 제복을 입은 경찰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떴다. 표를 보여달란다. 발 올린 벌금 50유로에 표를 기계에 안넣고 입장했기 때문에 1인당 50유로씩 총 200유로의 벌금을 내야 하는데 봐줄테니 발 올린 50유로만 내란다. 50유로라는 수치가 동의가 안되는 나는 발을 올리면 안되는지 몰랐다는 슬픈 변명만 반복했다.


It makes dirty.


알아요. 발 올리면 좌석이 더러워지는 거 아는데 다시는 안 그럴테니까 한번만 봐주시면 안될까요. 나 외국인인데요. 이렇게 쎈 벌금이 있는지 알았다면 절대 안했을거에요. 진짜 몰랐어요. 한시간을 해도 다 못할 나의 변명은 다행히 나의 짧은 영어 덕분에 더 이어지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50유로를, 그것도 난 유로 현금화가 없었기 때문에, 그 아이 아버지의 돈으로 50유로를 냈다.

1) 남자친구, 남자친구 아버지 앞에서 발을 앞 좌석에 올리는 무개념한 행동을 보임.
2) 경찰의 압박적인 행동에 남자친구와 아버지까지 범죄자 취급을 받게함.
3) 50유로라는 어마어마한 벌금을 물음.(스테이크를 6번은 먹을 수 있는 큰 돈)
4) 심지어 잘못한 인간은 유로화가 없어 옆에 남자친구 아버지 돈으로 냄.

너무 강력한 4단 콤보 어택에 사회성까지 잃었다. 땅만 보고 걸어간다. 내 마음도, 세 사람을 둘러싼 공기도 수습이 안된다. 단 10초만에 유럽 판타지아는 무너지고 못난 나 하나만 남아있다. 나는 왜 이렇게 무개념한걸까. 시민의식은 왜 이렇게 떨어져. 다른 사람 앞에서 꼭 이래야 했니. 화살 하나가 꽂히고 나면 쉬지 않고 그 다음 화살이 날라왔다. 아, 내가 정말 싫다.

기차 의자 색깔이 너무 예뻐서 찍었었는데... 발 올려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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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알못이 베르사유 궁전에 가면요


잠깐 커피 좀 마시다 가자.


베르사유 궁전 역에 도착했다. 무개념에 대한 비싼 공부값을 치르고 혼이 쏙 빠져 걸어가는 날 보시다 결국 그 아이의 아버지가 나서셨다.


해외여행하면 원래 별일이 다 생긴단다.


남자친구 아버지의 말씀을 고개를 숙이고 듣다. 옆에 있는 아이가 에끌레어를 한 스푼 떠서 내 입에 쏙 넣어준다. 화살들이 뒤엉켜 한번에 풀릴 마음은 아니다. 그치만 이 두 동행이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니 마음의 무게가 5kg쯤 덜어진다. 잘못은 자가 저질러놓고도 위로까지 받아야 하는, 나는 아직 겉만 스물여덟이지 완전 애기다. 애기를 보살피는 두 어른이 참 따뜻하고 고맙다. 툭, 그 따뜻함에 기대보니 그제서야 나도 이 두 사람과 '동행'이 되었다. 예쁘든 안 예쁘든 끝까지 함께 이 길의 끝까지 갈 사람들, 그 든든한 동행이 나에게 두 사람이나 있다.

세상 아픈 마음을 위로해준 또 한명, 민트색 에끌레어


아름답던 파리를 미워하는 마음이 천천히 걷힐 무렵 베르사유 궁전 입구에 도착한다. 그늘 하나 없는 넓은 마당에 사람들이 개미가 되서 열을 맞추고 있다. 안좋은 예감은 항상 정답, 베르사유 궁전에 들어가는 줄이다. 자외선과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2탄 지루함까지 깨부수고 나서야 베르사유 궁전에 입장할 수 있었다.


별장 하나를 루이 14세가 증축하며 지금 규모의 베르사유 궁전이 생겨나게 됩니다.


한국어를 잘하는 오디오 가이드씨를 따라 방을 이동한다. 어렸을 때부터 느끼는데 내 뇌에 버그가 먹었는지 세계사는 저장이 안된다. 오디오에서 분명 한국어가 나오고 있는데 영어보다 더 못 알아먹겠다. 역사알못은 그래도 3가지 단어를 분간해냈고, 그때부터 손가락이 분주하게 네이버를 독촉한다.

두 역사알못의 베르사유 궁전 방황기


'루이 14세'


루이 14세? 프랑스인들이 그토록 자부심 느끼는 프랑스 혁명과 관련있는 왕 아냐! 한 줄이지만 참 기특하다. 네이버 도움을 받으니 루이 14세가 그 유명한 "짐은 곧 국가다"를 말했던 왕이었다. 미친 자신감은 전쟁을 잘해서 나온 것 같다. 재밌게도 전쟁으로 흥한 자, 전쟁으로 망한다고 결국 전쟁이 재정 결핍을 가져왔고 거기에 절대왕정의 모순이 더해져 보다보다 못한 국민들이 프랑스 혁명을 일으킨다. 바로 그 역사의 인물 루이 14세가 왕궁을 파리에서 베르사유로 옮기며 베르사유 궁전이 탄생했다.

'마리 앙투아네트'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모르겠다. 하하. 네이버를 봐보니 아마 프랑스혁명 때문에 들어봤나보다. 아, 그리고 예쁜 걸로도 유명하셨지 싶다. 루이 16세의 왕비였는데 프랑스혁명 이후 단두대에서 처형된다. 국고를 낭비한 죄로(우리나라에도 단두대 갈 분이 많다). 베르사유 궁전 앞 베르사유 정원에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선물받아 지은 정원이 있는데 거기가 예쁘기로 유명하다.

'나폴레옹'

키가 나랑 똑같은 사람이다. 157cm. 키는 하늘로부터 재야 한다는 단신계 명언을 남긴 사람이다. 전쟁을 잘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네이버를 독파하고 놀랐다. 프랑스 혁명 후 제1통령을 지냈단다. 하지만 다시 황권을 수립해 시대 흐름에 역행했고 다른 나라 원정에 실패하면서 유배당한다. 바로 이 나폴레옹이 프랑스 혁명 이후 방치되었던 베르사유 궁전을 다시 사용한다.

세 사람이 먹고 자고 거닐었을 베르사유 궁전을 걸어본다. 권력 맛만큼 맛있는게 있을까. 갑자기 떠받들어지면 뿅 간다. 나도 미래당 공동대표로 당선되던 날, 페이스북 사진이 좋아요 200개 받은 날, TV에 출연하던 날 흥분해서 잠도 못잤는 걸. 그럴 때 흥분 좀 가라 앉히고 사실 그대로 보면 나를 좀 더 지킬 수 있었을텐데. 나폴레옹이, 루이 14세가 아무리 전쟁을 잘한들 목숨바쳐 싸운 군인들 없인 전장에도 못 나갔을 거고, 매일 새벽같이 천을 짜고 농사 지은 국민들의 땀이 없었다면 마리 앙뚜아네뜨의 그 화려한 다이아몬드 목걸이도 없었을 거란 말이다. 여러 사람 도움으로 이렇게 여행도 하고 글도 쓰고 있는데 그새 감사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내 마음에도 눈치 좀 줘야 겠다.


너무 넓다. 이 궁전을 마무리 지으려 하니 예쁘다는 거울의 방이다. 이거 봤으니 이제 됐다. 제발 좀 탈출하자. 2시간만에 베르사유 궁전을 빠져나온다. 역사알못에게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다만 공부라는 건 언제나 할 땐 힘들지만 하고 나면 뿌듯했던 것 같다.

베르사유 궁전에서 드디어 탈출!



21

에펠탑을 보면서 너가 더 좋아졌어


파리의 하이라이트는 오늘 밤에 달렸다. 온갖 소재로 쓰이는 흔하디 흔한, 하지만 나는 못 본 그 에펠탑을 드디어 본다. 설레는 마음을 터지지 않게 소중히 껴안고 내린 에펠탑 역, 노을이 져 가는 게 7시쯤 됐겠다. 폭염이었던 낮은 완전히 잊고 보내주는 가벼운 바람이 반가워 입이 재잘재잘거리는데 갑자기 뚝 멈춰선다.


헐.


정말 크다. 끝을 보려면 거북목을 몇번이나 뚝뚝 꺾어야 할 만큼, 아이폰 카메라로는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정말 아주 무지 크다. 미디어로 본 에펠탑은 원근법을 잊어 약간 귀여운 느낌이었는데 이건 좀 무섭잖아. 저 에팔탑 위로 올라간 사람은 민들레 홀씨보다 작아졌다.

반짝반짝 에펠탑 앞에서 그림자가 되버리신 두 남자


센느 강까지 한참 걸으니 에펠탑이 친숙하게 작아졌다. 하늘로부터 노을을 뺏어서 세상에 자기만 있는 줄 알고 혼자 빛나고 있다. 그래봐야 고철덩어리인데 저런 곡선을 넣을 생각을 하다니. 누군진 모르지만 참 잘했다. 생긴지 200년도 안됐으면서 이젠 너 없는 파리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니까.

익숙한 사이즈의 에펠탑


진짜 이건 절대적으로 예쁘다.


예쁜건 왜 꼭 나누고 싶을까. 기후 영향이라 원래 그런건지 아니면 내가 갔던 날이 특별히 날씨가 좋았는지 모르겠지만 파리의 하늘이 정말 잡티없이 뽀얗게 맑았다. 그 하늘의 쌍둥이 센느강은 에메랄드빛을 사람들 동공에 선물해주고 있었다. 아, 이건 파리라서 예쁜게 아니다. 내일 떠나야 되서 예쁜게 아니다. 진짜 예쁜거다.

물결까지 예쁜 센느강, 너 정체가 뭐야


센느강을 따라 하늘 높이 솟은 푸릇푸릇한 가로수길 잎사귀들과 눈 맞추면서 걷는다. 파리를 온 몸으로 느끼고 싶어서 입이 기능을 멈췄다. 이 공기에 너도 마음이 움직인 거 같아서 괜히 두 배로 좋다. 그때 한번 더 담고 싶어서 에펠탑을 돌아봤다. 노을빛은 그새 사라지고 밤을 반쯤 입었다. 넌 너무 커서 하늘이 되어버렸구나.

센느강 옆 가로수는 좀 많이 큰 편이다


샹젤리제 거리가 그렇게 예쁘대.


서울에서 파리를 상상하며 어디를 가장 가고 싶냐고 묻는 나한테 너가 그렇게 말했었지. 이 아이가 걷고 싶다던 샹젤리제 거리를 걷는다. 고급호텔의 전광판, 명품샵의 디스플레이 조명, 레스토랑 야외 테이블의 와인잔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밤을 거역하는 거리다. 거기서 이 아이의 동생에게 줄 마카롱 한 박스를 샀다. 마카롱보다 마카롱을 담던 스텝이 소 스윗했다는 걸 이 아이 동생이 봤어야 했는데. 아숩아숩.

파리 마카롱 3대 맛집 중 한 곳의 소 스윗한 스텝님


나와보니 파리가 새까매졌다. 발바닥이 오늘 노동량이 과했다고, 집에 가자고 보챈다. 급 샹젤리제 거리가 길게만 느껴진다. google map이 다 왔다고, 알렉산드르 3세 다리만 건너면 된다고 위로한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발바닥의 징징거림에 자리를 피했던 감성이 갑자기 달려나왔다.

알렉산드르 3세 다리 넘어서 에펠탑이 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렇게 큰 금덩어리는 처음 봤다. 너무 환한 빛에 너무 어두워져버린 밤하늘이 숨막히게 고요해서 이젠 예쁘다는 말도 안나왔다. 밤 11시 즈음 에펠탑과 하늘은 시각따위로 볼 수 있는게 아니었다. 가슴으로 느낄 수 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파리에 와서 너가 더 좋아졌어.


여행하며 그 아이의 숨은 어른스러움을 느껴서인지, 에펠탑의 아름다움 앞에 심장이 멈췄을 때 우연히 너가 옆에 있어서인지, 확실히 그 아이에 대한 마음이 커졌다. 그리고 너, 너에 대한 그 마음, 이 예쁜 에펠탑과 함께있는 지금 이 순간 나는 태어나서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느낀다. 내 능력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데. 그냥 미쳤어.

시각으로 느낄 수 있는 건 아니어서 참고만 하시길
도움이 될진 모르겠으나 유럽여행 상담이 항상 열려있습니다.
(카톡 ID : one1w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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