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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쏘쏘 Jul 10. 2019

첫 여행지는 첫사랑을 닮았다

스물여덟에 갑자기 유럽 3편 - 마드리드(스페인)

2019.06.29 마드리드(스페인)


7

몰라도 너무 몰랐던 스페인


저희 항공은 약 40분 후 마드리드에 도착할 예정이오니 승객분들은...


13시간의 비행이 끝나간다. 스페인은 어떤 나라일까. 스페인에 대한 나의 지식은 아주 작고 귀여웠다.

1) 축구 대박 잘하는 나라(2002년 월드컵의 자랑스럽던 승부차기)
2) 한때 이곳저곳 점령해 스페인어 쓰는 국가가 상당히 많음
3) 해적과 무적함대의 나라
4) 토마토축제
5) 포데모스

급하게 아이패드로 스페인을 검색한다. 스페인과 연관있는 줄 몰랐던 놀라운 연관검색어들이 뿅뿅 들어왔다.

6) 돈키호테
7) 피카소
8) 콜럼버스
9) 알함브라 궁전

세상에, 제대로 아는게 없다. 네이버 지식백과의 긴급수혈에 따르면

10) 북아프리카에서 올라온 이슬람계 무어족의 지배를 장기간 받아 로마+르네상스+이슬람 양식이 결합된 문화가 건축, 예술 등의 분야에서 발견됨.
11) 39년 장기 독재 이후 입헌군주제가 이어지고 있음. 이 과정에서 피카소가 프랑코 장군에 항거하여 망명함. 평화적 정권교체가 1983년도에 이루어짐.(우리나라 김대중 대통령 당선이 첫 평화적 정권교체이니 14년정도 앞섬)

비행기에서 바라본 스페인



8

첫 여행지는 첫 사랑을 닮았다


관심가는 몇가지 지식만 주어담고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 첫발을 내딛었다. 41도의 후끈함에 익숙해질 때쯤 날 여기까지 올 용기를 가져다 준 그 애가 보인다. 6월 5일에 출국했으니 24일만이었다. 오랜 여행에 힘든 상태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쌩쌩해보였다. 그 하얀 피부와 동그란 눈도 그대로였다.


어색하다, 오랜만에 보니까.


하도 늦게 나와서 어디 다른데로 잘못 갔을까봐 걱정했다는 이 아이. 그 애에겐 수화물이 너무 늦게 나왔다했지만 사실 수화물뿐만 아니라 13시간 비행에 얼굴이 땡땡 부어서 붓기빼고 너 보겠다고 얼굴 마사지를 하느라 늦게 나왔다.


그 애를 만나고 여기가 서울인지 마드리드인지 그다지 모르겠다가 마드리드의 핫플 '솔 광장'에 내리니 실감이 났다. 실사판으로 처음 만난 유럽식 건물과 바글바글한 유럽인들이 마음 속 사진기에 찰칵 담겼다. 내 첫 배낭여행지 스페인 마드리드는 말하자면 '좀 놀 줄 아는 덩치있는 유쾌한 30대'였다. 뱃살과 상관없이 남녀노소 입은 크롭탑 패션에서 느껴지는 자유분방함과 널찍널찍한 건물 사이즈에서 자신감이 보인다. 온동네에 넘쳐 흐르고 있다.

그 동네와 참 안 어울리는 두사람은 그 많은 카페를 지나치며 무리수를 두지 않고 던킨도너츠에 들어갔다.


아이스 카페라떼, 스몰 사이즈, 투


처음으로 스페인 사람과 대화를 했다. ET의 마음이 이랬을까. 소통에 성공한 게 뭐라고 기쁘다. 마스터카드 무늬가 찍힌 KB은행 체크카드가 유럽에서도 힘을 발휘한다.


유럽엔 섬머타임제가 있어.


"그게 뭐야?"
"지금같은 특정 여름기간엔 시간이 1시간 댕겨져. 지금 저녁 9시지만 섬머타임제로는 8시인거지."


모든게 생소해 정신없는 나에게 스페인을 소개하는 저 아이. 고작 이틀 먼저 왔을 뿐인데 이렇게 믿음직스러울 수가 없다.

'오길 잘했지?'


처음이라는 사기 필터를 장착하고선 마드리드가 내게 말한다. 대답대신 나는 두근대는 가슴을 마음껏 뛰놀라고 목줄까지 풀어주었다. 밤 9시의 대낮같은 이 밝은 이 광장이 첫사랑처럼 오래오래 기억되기를 바라면서.

국내 던킨도너츠보다 더 국내스러운 마드리드 던킨도너츠 솔광장점



9

가로등 하나로 영화가 되는


잊지 못할 유럽과의 첫날밤을 보낼 '아르떼'란 마을은 사람들마저 물들일 만큼 꽉찬 안정감을 뿜고 있다. 주황색 지붕과 하얀 벽을 가진 서로 닮은 집들이 사이좋게 까만 이불을 덮고 잠에 드려하는 중이다. 아직 정신없는 나 때문에 깰까봐 최대한 조심스럽게 걷는다. 어두운 타지가 두렵다는 여행객은 열심히 걸음마다 따뜻한 주황빛을 내려주는 낮은 키의 가로등들의 성의에 어쩔 수 없이 걱정을 내려두기로 한다.

주말 밤인데 40분 가량 걷는 동안 빨간 코로 꽥꽥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비틀비틀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한산한 동네 가게 위로 중고딩 때 엄마, 아빠, 오빠랑 자주 가던 우리집 아파트 앞 치킨집의 빨간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가 겹쳐보인다. 예쁜 유럽거리조차 그 정겨움의 빈자리는 메울 수 없나보다.


아빠가 과일 사오래.


국내 할인마트랑 다를 바 없는 친근함 가득한 동네할인마트에서 과일을 깐깐하게 살펴보지만 이게 싼 건지 비싼 건지 감이 안 온다. 한국에선 딱 보면 맛있고 싼게 보이던데 출국하면서 눈썰미는 똑 두고 왔나보다. 자신없게 사과 4개, 노란 복숭아 4개, 체리 반 상자를 들었다.


올해 1월에 갔던 인도에서 하도 사기를 많이 당해 트라우마가 생겼는지 나도 모르게 가격 표시판에 더해지는 숫자들을 꼼꼼히 살핀다. 일하면서 우연하게 벌어진 일을 고의로 했다고 의심받은 날이 기억난다. 그 때 정말 서운했는데. 좀만 생각해보면 의심할만한 사람이라 의심하는 경우보다 그냥 잘 모르니까 일단 의심하는 일이 훨씬 많은 것 같다. 나도 그렇다. 캐셔는 아무 잘못이 없다. 아직 상처가 있는 그날의 나도, 그날의 그 사람도.

'멍때리기엔 아까운 곳이야.'


그새 적응해서 아무 생각없이 걷고 있는 내가 안타까웠는지 가로등들이 소곤소곤 말해준다. 건물마다 튀어나온 테라스 옆에 짤막히 뻗어있는 작은 가로등들은 꼭 중세시대 유품같이 생겨가지고는 이 거리를 비현실적으로 아름답게 만들어버린다. 이 상점 간판과 카페 인테리어의 소박한 유로풍의 감성들은이 땅에 살던 이들이 긴 역사를 통해 아들딸에게 물려준 유산이겠지.


영화 같지 않아?


양손 가득 과일이 담긴 봉투를 들고 터벅터벅 두 그림자가 걸어간다. 영화 같지 않냐는 말에 한 그림자가 포근하게 손을 잡아준다. 말보다 더 만족스러운 대답을 들은 그림자가 예상치 못한 두근거림에 순간 멈칫하가 다시 가던 길을 걸어간다. 오늘 꼭 그날 같다. 영화를 보자던 그 애의 말을 들었던 3월 21일, 그날 말이다.

다시 썸관계로 돌아가게 해준 유럽의 예쁜 가로등길
도움이 될진 모르겠으나 유럽여행 상담이 열려있습니다.
(카톡 ID : one1w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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