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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쏘쏘 Jul 14. 2019

어서와, 스페인 광장은 처음이지?(세비야)

스물여덟에 갑자기 유럽 6편 - 세비야(스페인), 후와씨엉프헝쓰(프랑스)

2019.07.02 세비야(스페인), 후와씨엉프헝스(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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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와, 스페인 광장은 처음이지?


감당이 안되는 바다보다는 친숙한 강이 좋다. 괴달키비르강이 투박한 석조다리와 다정하게 아침을 맞고 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10시는 더 더워지기전에 마지막으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다. 현실은 일하거나 잠자는 시간이지만.

괴달키비르강따라 있는 산책로가 나름 야무짐


가볍게 아침을 먹고 바삭거리는 걸음으로 google map 리뷰가 가장 많은 츄러스집에 들어섰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츄러스를 초코 퐁듀에 푹, 찍먹하면 뒤통수까지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내 복부의 셀룰라이트도 곧 솟구치겠지.

세비야 츄러스 맛집의 초코퐁듀 츄러스


안되겠다. 신발 사자.


배낭여행에 샌들은 최악의 선택이었다. 키가 작고 다리 짧은 난 통굽의 하얀 샌들로 발목이 얇아보이는 착시현상을 노렸지만 발가락 사이사이 올라온 물집이 잔인하게도 허락하지 않았다. 남자친구 아버지에게 꾸민다고 실속없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까진 살갗이 샌들에 스쳐 비명을 지르는 걸 꾹꾹 누르고 있었다. 그 아이는 살갗의 비명을 들은 걸까. 이렇게 자상하면 내 심장이 좀 곤란한데. 세비야를 닮은 빨간 스트라이프 슬립온을 신자 몸무게가 20kg정도 줄어든 느낌이었다.

배낭여행에는 운동화나 단화가 최고


'어서와, 스페인 광장은 처음이지?'


그렇게 먹다 사다 걷고 걸어 태양의 공격을 받은 정수리가 벌개질 즈음 도착한 스페인 광장은 가로 2cm밖에 안되는 내 두 눈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크기였다. 둥근 요새로 둘러쌓여서는 배를 타고 놀만큼 큰 물길까지 품은 광장은 2017년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모아놔도 남을 만큼 넉넉했다. 나도 쟤처럼 넓어지고 싶어 기지개를 키고 어깨를 펴본다. 시원한 분수 아래서 사람들이 노래에 맞춰 플라밍고를 추고 있다.

카메라에 4분의 1도 안 담긴 스페인 광장


넓은 광장 앞에서 부모님이 급 스쳐지나간다. 부천에서 태어나 화곡동으로, 광명으로, 그 다음은 의정부로, 또 같은 도시 안에서 2년마다 옮기며 어린 시절 유목생활을 했다. 담임선생님이 자기소개를 하라는 순간 30여 명의 레이더가 빠르게 내 존재를 탐색했다. 쫄보인 나는 완전히 쪼그라들어서 '나는 왜 예쁘지 않지?', '엄마아빠가 전학 오자마자 피자 한 판 돌려줬으면', '웃기고 잘 노는 애들 부럽다'며 임한결이 아닌 것들을 절실하게 바랬다. 전학이란 나의 평범함에 대한 공포스러운 자각이었다.

커서 알았다. 그토록 싫었던 어린 시절 나의 유목생활은 젊음이란 필살기 하나만 가지고 전남 강진과 영광에서 올라와선 자기 체급에 안맞는 수도권 집값에 보호구 없이 덤볐던 아빠와 엄마의 링 위의 치열한 싸움이었다는 걸. 우리 가족 4명 살 몇 십평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오신 두 분이 눈 앞에 펼쳐진 이 스페인 광장의 여유를 맛보며 가슴 한번 쫙 펴보셨으면. 부모님 모시고 다시 한번 더 와야겠다.

엄마아빠 생각에 급연락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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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선 뭘 가져올래?


'3일, 짧았지만 첫사랑만큼 오래 기억할게.'


스페인과 인사하고는 파리 가는 비행기를 탄다. 마드리드, 그라나다, 세비야랑은 다르다. 전 도시들은 이름만 들어본 처음 본 애들이었다면 파리는 내 최애랄까. 마치 하늘의 은총으로 당첨된 팬미팅이 3시간 후에 열리는 기분이다. 실물을 영접하다니 현실감없다. 머리카락 한 올까지 눈에 다 담아올거다. 대신 몸값이 좀 비싸서 오늘은 공항 근처 '후와씨엉푸헝스'에서 자야 하지만 다 잘나간다는 증거다.


옆에서 졸고 있는, 식도락을 목표로 유럽에 온 이 애도 이 여행의 후원자인 부모님도 너의 여행의 컨셉이 뭐냐 물어왔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다. 어떻게 과일을 사먹나, 어떤 걸 먹나, 많이 가는 핫플레이스는 어디고, 어떤 역사를 소중히 여기나. 그중 좋아보이는 건 좀 챙겨올 생각이었다.
 

'프랑스에서는 뭘 가져올래?'


대학시험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같은 문제가 나오는 나라, 종로의 독립영화관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예술영화의 나라, 전통있는 엘리트 가문 출신의 아우라. 프랑스에 와본 적도 없이 환상만 가득했다. 원래 거리가 좀 있는 관계일 때 아름다울 수 있다고 문득 떠나온 대한민국한테 미안했다. 역사가 참 깊은 곳인데 그 깊이를 몰라줬다. 프랑스를 이미 단어 자체부터 글러먹은 '선진국'의 표상으로 보고 있었구나. 숨어있던 서양 중심의 세계관이 고개를 빼꼼히 드러낼 때쯤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했다고 기장이 말한다.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길과 예쁜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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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하는 여행이 힘들어질 때


유럽 배낭여행을 하다보면 도시 간에 이동하는 일이 만만치 않아서 밥 때를 놓치기 쉽다. 행동기준의 1순위가 그 목적지를 경험하기 가장 적합한 시간에 맞춰 이동하는 것, 2순위는 그에 맞춘 가장 값싼 이동수단을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흘러가다 이게 점심인지 저녁인지 모르고 그냥 살기 위해 먹는 일이 더 많다.

어중간한 때 프랑스로 넘어와 어중간한 곳에 위치한 숙소로 도착했을 때는 저녁 8시, 그 애의 아버지는 쉬신다고 했고 그 애와 나는 밥을 먹겠다 했다. 근처 식당이 다 문을 닫았다. 옆 숙소에 자리잡은 프랑스인으로 추측되는 학생들이 시킨 피자와 햄버거가 눈에 들어왔고 그 순간 이후로 반드시 그것을 우린 먹어야만 했다. 호스텔 스텝의 친절한 도움으로 기어코 피자를 쟁취했다.


나 힘든 것 같아.


피자상자를 뜯자마자 피자를 먹고 싶어하는 그 아이의 기대와 다르게 난 둘만 있는 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긴급구조를 요청했다. 고작 3일 여행하고 녹다운됐다. 여행인지 시험인지 헷갈리고 있었다. 그 애의 아버지 앞에서 나는 임한결이 아닌 체하고 있었다.

'다음 목적지까지 가는 방법 알아보고, 다음 숙소 예약하고, 저녁 먹을 맛집 찾고, 물과 과일 사다 놓고, 그러면서도 아버님과 대화를 놓치지 않습니다. 씻는 거, 글쓰는 거, 폰하는 거는 항상 공공의 일보다 늦게 해야 하며...'

절대 이렇게 산 적이 없는,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하는 진짜 임한결은 잠자는 시간이 되면 나타났고 결국 잠이 부족했던 나는 새빨간 눈의 좀비가 되어버렸다. 큰일났다. 잘만 하던 억지웃음도 안나오고 괜찮은 척도 안된다.


쉬어야 돼.
다른 생각말고 내일 오전까지 무조건 쉬어.


그 아이가 먹던 피자를 내려놓고 세상 진지하게 내 눈을 바라본다. 자리를 정리하더니 내 손을 숙소로 이끈다. 인간의 감정은 사람 귀찮게 날뛰어대는데 따뜻함 앞에서는 힘을 못 쓰고 금방 고분고분해진다. 내가 아버지께 잘 보이고 싶어서 애쓰고 있는, 너를 좋아하는 이 예쁜 내 마음을 너가 한번 알아주면, 나는 수백번 더 애쓸 수 있을 만큼 충전된다.

좋아서 여행한다. 하지만 끝까지 좋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같이 하는 여행은 원하지 않아도 쌩얼을 드러내야 한다. 또한 준비한 사람은 진행하느라 애쓰고 기대한 사람은 실망을 감추느라 24시간을 애쓴다. 이때 자기 애씀 속에 갇혀버릴지 상대 애씀까지 헤아릴지는 나에게 달렸다. 이 여행의 결과를 아직 알 수는 없다. 다만 나는 이 애의 아버지에게 잘 보이는 것보다 중요한 건 이 여행을 스물여덟에 만들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여행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새 전제로부터 다시 출발할 뿐이다.

딸같이 잘해주셨는데도 잘보이고 싶은 내 욕심ㅜㅜ
도움이 될진 모르겠으나 유럽여행 상담이 항상 열려있습니다.
(카톡 ID : one1w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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