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추어진 환경’이 갖는 의미
다들 집 앞에 상가건물 한 골목쯤은 끼고 살 거예요. 편의점, 피아노학원, 공인중개사 등이 주로 입점해 있는. 벽돌이나 타일, 고급스러운 대리석으로도 외관을 처리해요. 그 앞에는 가게마다 간판과 프레임을 덧대어 놓죠. '우리 동네'라고 한다면, 이런 풍경은 빠질 수 없죠. 아파트와 상가, 이 두 곳이 많이들 떠오르실 거예요.
요즘은 어느 마을이든 간에 새로 지은 아파트가 한 자리 차지하는 것 같은데요, 가만 보면은 신축 아파트들은 예전보다 더 스케일이 커서 아예 상가단지를 직접 만들어요. 주로 2~5층 높이에 일렬로 쭉 이어지는 모습이 연상돼요. 지금 자라고 있는 아이들은 그곳에서 학원도 다니고, 친구들이랑 편의점 가서 아이스크림도 사 먹으면서 추억을 쌓을 거예요. 아파트 안팎의 계단과 길목을 드나들면서요.
이 모든 것들은 깔끔히 정리된 흙밭 위에 새롭게 '건설'된 공간의 일부예요. 이 공간이 들어서기 이전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어찌 됐건 우리의 추억은 회사에 의해 치밀하게 짜인 공간 안에서 쌓이고 있어요.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 거주공간이 회사의 결정으로 구성되어 있는 요소는 꽤 많아요. 도어락이 잠기는 소리를 우리가 의식하고 살지는 않지만, 어쨌건 매일 듣는 소리이며, 내 삶을 채우죠. 엘리베이터를 나서서 우리가 밟는 바닥도요. 이처럼, 아파트에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것들이 꽤 많은 것 같아요. 아무래도 사람이 사는 공간을 하나부터 열까지 꾸려놓아야 하니 그렇겠죠? 그만큼 사는데 불편한 문제들이 줄어든다는 건 아파트의 엄청난 강점이예요. 잘 디자인된, 그리고 잘 관리되는 아파트야말로 편리함의 극치이죠.
다른 한편에서는 이질감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 같아요. 내가 사는 지구라는 곳이 이런 느낌뿐만이 아닐 텐데, 하는 느낌이에요. 자연과 점점 멀어지는 느낌. 아파트 단지 안에도 풀이 있고 나무가 있지만, 그것들은 공간을 구성하기 위한 수단이지, 그렇게 자연스럽지 않아요.
아파트는 마치 삼차원의 다이어리 같네요. 한 시기의 삶을 채워나갈 큰 바탕이 되니까요. 때로는 다이어리 속 보조선이 너무 반듯해 보인다는 생각을 이야기해 보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