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을 맞고, 새를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여행을 싫어한다는 것을 깨달은 후, 여행을 떠났다.
"여행이 싫으면, 안 떠나면 되지 않냐."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야 했다.
코로나 시절 충분히 안 떠나고 살아본 결과,
새로운 장소가 주는 자극을 외면하고 살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 붙박이 장롱 속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고릿작 얘기나 쓰고 살겠지.
그렇게 나만 모르고 조금씩 바보가 되어 버릴 수도 있겠단 생각에 불안해졌다.
산책으로 홍제천을 주로 걷던 나는,
그 천변에서 생활하고 있는 새들을 지켜보는 취미가 생겼다.
[버드워칭]하면, 순천 습지다!!
그래서 첫 도시는 순천이 되었다.
숙소를 구하지 않고, 그날 하루만큼만
돌아보는 걸로 정했다.
여행을 싫어하는 나에게는
숙소를 탐색하는 일도 귀찮을뿐더러,
사진과 다른 숙소를 만났을 때,
그 맘 상함은 여행 전체를 망치기에 충분했으므로
여행에 정 떨어질 구석들을 최소로 줄였다.
아침기차를 타고 가서, 저녁 기차를 타고 돌아온다.
순천 시내 안에서는 어떻게 돌아다니지?
대중교통을 알아보니, 배차간격이 너무 띄엄띄엄;;
택시투어를 할까? 그렇게 돌아다닐 곳이 많지 않다.
습지와 정원 박람회면 충분한데... 어쩌지?
그러다가, 코레일앱에서 시티투어 상품을 발견했다.
오전에 선암사를 들렸다가, 순천 정식을 먹고,
습지를 보고, 정원박람회를 가는 루트다.
그래, 이거야!
나는 기차를 예약하며, 바로 같이 예약했다.
그리고... 기차를 놓치는 (앞글 상황) 불상사와 함께 오전스케줄인 선암사 전체가 날아갔다.
다행히 친절하신 코레일 직원분이 습지로 데려다주셔서, 게장정식을 먹고 습지로 입장했다.
들어가자마자 입구부터 작고 큰 탐조대들이 보였다.
넓은 뻘에 푸른 갈대가 가득한 것도 장관이었지만
연결된 데크의 중간중간 탐조대가 눈에 들어왔다.
새로 알게 된 사실은
탐조대라는 게 뭐 대단한 장치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사람이 최대한 안 보이도록 엄폐해 주는 정도가 전부인 것이다.
작게 뚫린 창을 통해
내 생(生) 눈으로 새를 찾아야 한다.
그렇게 멍하니 지평선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
초짜에게는 탐조대라는 것이
그저 원거리 [버드워칭] 일뿐이었다.
탐조대 안에 들어서며 시계를 봤다.
"2시간 후 주차장에서 청록색 버스에 탑승하셔야 합니다. 늦으시면 그냥 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시티투어의 단점은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1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주차장까지는 최소한 10분은 걸어 나가야 하니까,
내가 새를 볼 수 있는 시간은... 하며 타임키핑을 하고, 시간 역산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창 밖으로 먹구름이 밀려오더니 비가 내렸다. 소나기였다.
"어쩐지 새가 코빼기도 안 보이더라."
시티투어 2시간이 단점이 아닌 장점이 되는 순간이었다.
습지를 걸어 나오며, 20년 전에 대학 전공 시절의 IF를 떠올렸다.
"내가 만약 생태학, 동물분류학 같은 것을 했다면, 이렇게 [버드워칭]을 하며 세월을 패고 살았겠지?
그랬다면, 지금보다 행복했을까?"
답도 잘 모르겠는 그 생각이, 비를 맞으며 달리는 그때 왜 들었는지... 지금도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