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방서에서 주최하는 안전 체험 행사에 갔다.
내가 가자고 했는데 정말 후회된다. 슬프다.
나는 소방관들에게 존경하고 있고, 늘 감사하고 있다고 인사했다.
소방관 한 분이 나에게 '다른 분들도 다 힘들게 자기 일을 하고 계셔서요'라고 대답했다.
남편이 소방관 체험을 했다. 소방관들이 들고 메는 장비만큼의 무거운 조끼를 입고,
호스 무게만큼을 끌고, 다른 장비만큼을 들고 계단을 오르고 걷는 내용이었다.
다 마치고 나서 조끼를 벗고 남편이 쓰러졌다.
내가 두 눈으로 보고 있는 중에 남편의 몸이 막대기처럼 기울더니 내 발로부터 한발짝 앞에 남편의 머리가 떨어졌다. 나는 순간 무슨 영상에 오류가 난 것처럼 현실인식이 안 됐다. 이게 뭐지? 왜? 이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주위에서 사람들이 몰려와서 남편을 살폈다. 남편은 일어나 앉았는데 얼굴 전체에 피가 났지만 특히 입에서 심하게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나는 남편의 이름을 부르면서 어떡하지! 하고 소리를 지르고만 있고 손만 떠는 채로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다.
주변에 소방관들이 많았고 행사장 구급대원들도 있었기에 그들이 바로 달려와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 남편은 바닥에 앉아 있었고 그 얼굴에서 흐른 피가 옷과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충격적이었다.
남편은 '이가 깨진 것 같아요'라고 했다. 입이 완전히 피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가 몇 개나 깨졌을지 너무 놀라고 걱정됐다. 피로 젖은 얼굴이 너무 무서워서 남편의 얼굴의 피를 닦아주려 했다. 옆에서 소방관인지 구급대원들이 나를 말렸다. 다친 곳을 만지면 안 된다고 했다.
남편이 구급대원들과 함께 구급차를 타러 가는 동안... 사실 어떻게 된 건지 잘 기억이 안 난다.
너무 떨리는 와중에도 나는 '정신과 몸의 힘을 더 길러야겠다.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내가 너무 심하게 약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여튼 남편을 따라가려다가 남편이 쓰러졌던 자리를 다시 살폈다. 핏자국 사이에 하얗게 빛나는 남편의 치아 조각을 찾았다. 찾은 건 기억나는데 그걸 내가 주웠는지 주위에 있던 구급대원이 주웠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난다. 나는 완전히 얼이 나간 채로 '이거 어떻게 해야 해요?' 하고 소리쳤고 주변에서 누군가가(아마 구급대원) 생리식염수가 있다, 잘 담아 주겠다고 했다. '믿어도 되나? 내가 직접 해야 하지 않나? 하지만 나는 생리식염수도 없고?' 하는 사이에 구급대원이 젖은 거즈를 담은 위생비닐봉투를 나에게 주었다. 어떤 구급대원은 어느새 편의점에서 우유를 사와서 나에게 주었다. 거기에 치아를 담으라는 것이었다.
생리식염수면 충분하다고 해서 나는 정신없이 그 치아가 담긴 봉투를 들고 남편을 찾았다. 누군가가 구급차를 타러 저쪽으로 갔다고 알려줘서 그곳으로 갔다.
곧 구급차가 와서 남편은 구급차 안 침대에 눕고 나는 보조석에 앉았다. 구급대원들이 나에게 '일요일이라서 치과 응급실이 별로 없다, 전화로 알아보는 중이다'라고 하더니, 사고 상황으로부터 2시간 후에 여는 병원이 그나마 가능하겠다며 거기로 가겠다고 했다. 나는 별 수 없이 알겠다고 했다. 구급대원이 남편과 나의 신상과 정확히 어떻게 된 일인지를 물어서 내가 대답했다. 구급대원이 남편의 입안을 살펴 앞니 하나가 깨진 걸 확인했다. 나는 당연히 너무나 속상했지만 그래도 하나라니, 다행스럽기도 했다. 남편은 생리식염수에 적신 거즈를 입에 물고 있었다. 거즈는 모두 피로 젖었다.
나는 겨우 힘을 쥐어짜내서 '이만하길 다행이죠'라고 했다. 남편도 그렇다고 했는데 내 마음은 아주 안 좋았다.
병원에 도착했고 한시간 40분 후에야 응급실이 시작된다고 했다. 구급대원들은 병원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뭔가 인계를 하는 듯하더니 가야 한다고 해서 갔다. 그렇지 또 다른 응급상황에 대처하러 가야겠지. 하지만 이해하면서도 나는 얼굴로 바닥에 쓰러진 남편이 뇌진탕이나 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을지, 이렇게 치과 응급실에 나랑 둘만 있어도 될지 무척 걱정됐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약간 진정이 되어서 행사장 측에 전화를 걸어 보험에 대해 물었다. 사고접수같은 걸 전혀 생각도 하지 못하고 병원으로 왔기 때문에 걱정이 됐다. 다행히 대인 보험 접수를 해 두었다는 대답을 들었다.
남편은 입에 거즈를 물기도 했지만 놀라서 더 말이 없어진 것 같았다. 내가 훨씬 더 안절부절 못하고 괴로워하며 텅 빈 병원 안을 왔다갔다했다. 오늘 행사에 가자고 한 게 나였기 때문에 너무나 미안하고,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사고가 나기 전의 모든 선택들이 다 후회가 됐다.
다른 체험을 할 걸! 애초에 가지 말 걸! 내가 남편이 쓰러질 때 받아줄 수 없었을까?(전혀 없었다) 저 거즈 안에 치아 조각은 들어 있는 걸까?
'치아 파절 시간'을 검색해보니 1시간 내에 치료해야 치아를 살릴 수 있다고 나와서 좌절했다. 남편은 이미 치아는 살리기 어려울 거라고 포기하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다른 치과 응급실로 갈까, 더 빨리 진료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가달라고 할 걸 그랬나, 아니면 여기가 최선이기 때문에 다 알아봐서 여기로 데려다 준 걸까? 그런 거겠지? 머릿속에서 후회와 괴로움이 돌고 돌았다.
아무리 시계를 봐도 의사가 오겠다는 시간은 되지 않고 깨진 치아는 생리식염수에 적신 거즈에 싸인 채 봉지에 담겨 대기실 의자 위에 놓여 있었다. 이 온도 괜찮은 걸까? 안 괜찮다 해도 다른 수도 없었다.
더 심하게 다치지 않은 게 다행인 거야, 치아 하나잖아, 라고 생각하고 조금 진정하려 해도 잘 되지 않았다.
드디어 응급실 시작시간이 되고, 2분이 더 지나서 의사가 나타났다. 의사는 내가 건넨 치아 조각 봉지를 받아들고 말했다. '변색이 되었으면 쓸 수 없고, 크라운을 하는 게 더 났다. 일단 보겠다'고 하고 먼저 남편의 치아 엑스레이를 찍었다. 다행히 다른 치아는 괜찮았고, 깨지지 않은 앞니 하나는 두드려보면 아프니 다음에 다른 치과에서 검진을 받아보라고 했다.
남편과 의사와 깨진 치아가 응급실로 들어갔다.
견디기 어려운 이 시간 동안 119에 전화를 걸었다. 이러이러하게 다쳤는데 쓰러진 것 자체와 관련해서 심전도나, 머리를 부딪힌 것과 관련해 엑스레이를 찍지 않아도 되는지 물어봤다. 119 측에서는 구토 등 머릿속을 다친 증상이 있는지 살펴 보고 증상이 나타나면 응급실에 가라고 했다. 의정갈등이 심해서 응급실에 가도 진료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주말에는 더 몸을 조심해야겠구나 싶고 무척 후회되고 괴로웠다.
전에 긴장이 풀리면서 공황발작이 온 적이 있어서,
쓰러지거나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심호흡, 물마시기 등.
남편과 의사는 1시간 45분이나 지나서 나왔다. 너무 오래 걸려서, '치아를 살리긴 실패인가보다' 하고 체념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치아를 붙일 수 있었다고 했다. 입술 안팎이 찢어져서 그걸 봉합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렸고, 마취 주사가 견디기 힘들정도로 아팠다고 했다. 더 괴로운 건 의사의 말이었다. 치아를 본드로 붙여놓은 셈이기 때문에 '평생'(의사가 강조했다) 조심해야 하고, 결국 나중에는 다른 치료를 해야 할 거라고 했다.
남편은 나에게 치아 조각을 잘 챙겨줘서 고맙다고 했다. 불행 중 다행인가. 나는 그냥 미안하기만 했다.
나는 다른 응급실에 가보자고 했지만 남편은 괜찮을 것 같다며 끝내 거절했다.
16만원 가량 수납하고, 한참을 걸어 주말에도 여는 약국에 갔다. 걸어가는 동안도 나는 남편이 다시 쓰러지면 어쩌나 걱정됐다. 약국에서 항생제와 진통제를 처방받고 집으로 오는 버스에서 드디어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겼는지 이런 말을 나누었다.
'이렇게 힘든 일을 소방관들이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네요.'
그리고 곧 우리에게 소방체험을 시켜주었던 소방관에게서 전화가 왔다. 119 구급대원이 내 번호를 전달한 모양이었다. 잘 치료받으시고, 보험이 될 테니 걱정 마시고 오늘은 푹 쉬시라, 무척 죄송하다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우유를 사다 주신 분에게 감사인사 전해달라고 했다.
그 분 잘못은 아니지만 사실 원망스럽기도 했다. 행사 주최측에서 정한대로 체험하고 나서 쓰러진 거기 때문에. 남편도 이가 부러져서 너무 아깝다고 했다. 이는 평생 써야 하는 건데 이 부러진 이는 아마 계속 말썽이 생기겠지... 결국 크라운, 그 다음은 임플란트를 해야 할 거다. 그때마다 미안하고 속상할 거고.
보험은? 어디까지 커버가 될까. 오늘 낸 병원비만 받는다면 속상할 것 같았다. 치아를 다친 건 진짜 속상하다.
남편은 집에 와서 편의점에서 산 죽을 먹고 자고 있다. 오늘 너무 후회되는 하루였다. 이 기분을 어떻게 다스려야할지 모르겠다.
마치 내가 다친 듯 괴롭고 또 무서웠다. 현실적으로 이 사람이 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했다. 나의 경제적 무능력도 너무 큰 위험요소라는 사실도.
남편의 얼굴에 흐른 피를 닦고 싶었던 마음이 너무 강력해서 참기 힘들었다. 누가 뒤에서 나를 쿡쿡 찌르거나 떠밀듯이 팔이 앞으로 나가 피를 닦아줄뻔했다. 비이성적이고, 안전상 안 좋고 주위에서도 만류했기 때문에 겨우 참았지만 평소와 다르게 무섭게 되어 있는 모습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아마 주변 사람이나 내가 아프면 그 모습이 변하는 것 또한 괴로움의 큰 몫을 차지하리라 싶었다. 누군가 보통과 다른 사람을 무서워하고 꺼리는 건 정말 본능적인 일인가보다 싶었다. 인간으로 교육받고 예의와 참을성을 배워서 그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